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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가톨릭철학계간지(American Catholic Philosophical Quarterly 90. 2016)에 네 논문이 게재되었더구나. ACPQ는 80년 전통을 가진 미국가톨릭학회 저널이라면서? 유수 철학저널에 게재된 것이 5회나 되네. 장하다.강의하랴 논문 쓰랴 눈코 뜰 사이 없겠다. 남의 나라 말로 강의하고 논문 쓰기가 오죽이나 힘들까! 계속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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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운신문
2016.03.0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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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 따라 처음 가본 넓은 바다꼬막 캐고 파래 뜯은 고향바다 그리워라애석타, 간석지 막아 갯벌 옥답 간데없네.다도해 서해 섬에 쌓여 드는 쓰레기한강에서 흘러들고 중국에서 밀려들고맙소사, 오염된 어폐류가 밥상에 되오르네.올해도 고향바다 적조로 신음하고해저에는 사막이 허옇게 덮여가도水球야, 네 어머니 중병은 어느 누가 보살피나?태안반도 유류오염 어제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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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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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대학을 졸업하던 해의 겨울방학 며칠을 충무에서 지냈다. 4년의 규율생활 동안 주말 외출에는 조방(조선방직)앞 철길가의 빈대떡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거나 낙동강 하단(下端)의 에덴공원, 혹은 을숙도 갈꽃 밭에서 가을의 밤이슬에 함께 젖던 동기생 다섯 명이었다. 지금은 통영시로 통합되어 있지만, 시와 군이 분리되어 있던 당시에는 충무시와 통영군이 따로따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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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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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IMO사무총장을 배출하다니!21세기 해양시대에, 한국이 세계해양대통령 IMO(국제해사기구)사무총장을 배출하다니! 30년 전으로 돌아가서 보면 기적이다. 1982년 12월 20일 해운항만청 선원선박국장으로 발령되어 사무실을 둘러봤다. 포장된 채 서류가 캐비넷에 쌓여있었다. IMO문서였다. 해양오염이 심각해 선진국에서 항만국통제(PSC)가 실시되던 때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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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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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콘서트TV 리모컨을 눌렀다.여자 바이올린 주자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고 있었다.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이었다. 진홍색 드레스를 바닥까지 늘어뜨리고 바이올린을 자유자제로 켜는 자태가 현란했다.집시풍의 애잔한 선율에 숨을 죽였다. 활대로 현을 애무하듯 살금살금 터치하다 불현듯 활대를 치켜세워 현을 내려쳤다. 불꽃이 튀듯 질주가 폭발적이었다. 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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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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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야 해“혜인아, 네가 대학생이라니! 꿈만 같다.아침 출근길에 너를 만나려 산부인과에 갔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지 서너 시간쯤 되었을까? 꼬마 인형처럼 앙증스런 네가 나를 빤히 보던 그 눈망울이 지금도 선하다. 이렇게 너와 내가 첫 대면을 했다. 19년 전에.할머니가 널 강보(襁褓)에 싸 집으로 데려왔다. 젖 달라고 응애응애, 기저귀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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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3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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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면하소서!나는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비록 퇴락한 집안이지만 조부모와 부모, 형 둘과 누나 셋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해서, 사랑은 받는 걸로만 알았지 주는 건 몰랐다. 사랑이 넘쳐 그 존귀함을 몰랐다.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많이 울었다. 슬프고 무서워서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무덤덤했다. 아버지께 애틋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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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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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가셨어도그분은 대학선배에다 직장상관이었다.공무원 30년에 많은 상관을 모셨지만 그분은 내 인생의 사표였다. 2013년 10월 18일 향년 89세로 떠나신 영전에 '세상을 올곧게 사시느라 얼마나 고달팠습니까?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영면하시옵소서'라며 분향재배했다.임종을 상상해봤다.연민에 찬 눈빛으로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오"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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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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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메리스’라는 역병 때문에 온 국민들의 나들이가 자유롭지 못하여 심각한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했고, 경기침체와 더불어 관광 등 여러 분야에 직격탄을 날려버렸다.산과 들엔 짙푸른 신록이 펼쳐내는 생명의 빛깔로 향기로우며, 흰 파도와 함께 넘실거리는 여름바다 또한 시원하다. 오랜 가뭄 끝에 6월의 장마가 시작됐다. 아마도 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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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3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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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초등학교 교문으로 들어가려는데 동급생 여자 네댓이 조잘거리며 교문을 나온다. 홍당무가 된 나는 교문으로 못 들어가고 그대로 걷는다. 한참 걷다가 되돌아보니 여자애 하나가 뒤따라온다. 내가 빠르게 가면 빠르게, 느리게 가면 느리게 따라온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내가 멈춰서 “왜 자꾸 따라와!”라며 쏘아봤다. 대꾸 않고 빙그레 웃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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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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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철들었는가 봐동네 길을 걷는데 경찰관이 다가와 “어르신, 안녕하세요”란다.엉겁결에 “예”라 답한다. ‘예’가 안녕하다는 동의인지, 아니면 왜 묻느냐는 반문인지! 말꼬리가 내려가면 동의고, 올라가면 반문이다. 내 ‘예’는 말꼬리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으니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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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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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살라했다耕 海 김 종 길참 오래 살았다. 팔순이 다가왔으니.누군가가 99, 88, 23이라 기염을 토했다.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다 죽겠다고? 오만이다. 물처럼 겸손하게 살라했는데…‘큰 곡간에 먹을 것을 가득 채워놓고 먹고 마시며 즐기자’란 오만에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영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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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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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누구의 편일까이집트 왕 파라오가 조산원에게 히브리 남자 영아(嬰兒)들을 죽이라 명했다.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모세를 광주리에 담아 나일강에 띄워두었다. 공주가 나일강에 나가 모세를 발견하고 양자로 삼아 양육했다. 범람하는 나일강을 관리하는 이집트는 기하학, 건축학, 천문학이 발달된 문명국이었다. 모세는 명문교육을 받아 지식과 교양이 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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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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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가요무대가 진주에서 방영됐다. 사회자가 고도(古都) 진주를 역사 문화 교육 도시라 했다. 덧붙여 예향(藝鄕)이라 했다. 예향이란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진주기생은 가무(歌舞) 서화(書畵) 시문(詩文)을 익힌 예기(藝妓)이었다. 진주기생은 순박하고 정절이 두터워 궁중연회에 초청됐다. 하여, 北은 평양, 南은 진주라 할 만큼 진주기생은 조선 8도에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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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운신문
2015.04.2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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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먼 곳을 그리워하는가? 먼 곳은 그리움을 빚어내는 매혹의 공간이다. 그리우면 떠나야 한다. 굳이 뭘 찾아야 하는가? 모든 세상에 끝에 우리가 찾는 '심연'은 없다. 몸을 움직여 떠났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행동이다.여행은 떠남과 돌아옴의 반복이다. 멀리 떠난 자들은 다시 떠나온 곳이 그리워 다시 돌아온다. 이 세상이 아무리 부조리하고 무의미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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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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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그때와는 세상이 많이도 바뀌었다.그때는 식구들이 모두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다. 안방이나 대청마루에 밥상을 차렸다. 한여름에는 마당에 덕석을 펴고 저녁상을 차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보름달이 떠있다. 처마 끝에 전깃불이 매달렸다. 마당 귀퉁이에 모깃불을 피웠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매캐한 모깃불 냄새가 마당을 꽉 메웠다. 뒤뜰 대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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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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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두렵다耕海 김 종 길수필공부를 한지 여섯 해다.처음엔 겁도 없이 마구 써댔다. 주제에서 벗어나고, 사물을 제대로 파악치 않고, 사리에 어긋나고, 간결해야 할 문장을 메어치고 둘러쳐 엿가래처럼 길게 늘어뜨렸다. 지도교수나 문우들이 얼마나 지루하고 역겨웠을까?그럼에도 지도교수가 가끔 용기를 북돋워 주려고 ‘잘 썼다’하면 덕담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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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운신문
2015.03.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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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란 한 마디그가 나에게 말 했다.「그러니까, 50년쯤 됐다. 지방 소도시였다. 3․1절 행사를 기관단체와 학교가 공동으로 치렀다. 행사가 끝나고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분과 다방에 갔다. 여자가 뒤따라왔다. 자리에 앉지를 않고 엉거주춤 서 있는 그녀를 자기 직원이라 소개했다.단발머리에 흰 블라우스와 검정색 스커트를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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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운신문
2015.03.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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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나들이 하기는 지난 칠십 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당시 대한해운공사의 영업과장이던, 서른두 살 때였다. 일본의 모 해운회사를 찾아가서 그들과의 공동배선 문제를 협의하려는 출장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공산품을 싣고 미국으로 갔다가 곡물이나 원목 등을 싣고 돌아오는 항로에 두 회사의 선박을 적정 간격으로 띄우면서 왕복의 적재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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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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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골래집안에 경조사(慶弔事)가 있으면 당골래가 오리걸음으로 아장거리며 집에 왔다. 당골래는 길흉화복을 점치고 제물을 차려놓고 가무와 의식으로 신에게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무당이다.70년쯤 전일까? 내 생일에 당골래가 왔다. 생일상을 차렸다. 팥찰밥, 미역국, 떡, 전, 나물, 과일로 빼곡했다. 퇴락된 집안이라 가난했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생일상에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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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운신문
2015.02.23 1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