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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8월 초. 오슬로대학 기숙사에 여장을 풀었다. 시차적응이 안 돼 잠이 오지 않았다. 밤12시인데도 하늘이 희부옇다. 이를 백야라 한다. 그러다 추분을 지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밤은 길어지고 낮은 짧아졌다. 동지쯤엔 노르웨이의 북극권은 밤이 계속된다. 최남단에 위치한 오슬로도 진눈깨비가 내리면 대낮인데도 가로등이 거리를 밝혀주었다. 그들의 조상은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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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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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슬프다 이렇게 마음이 허전할 수가사라지는 그대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렸다그도 그럴 것이, 우리 둘이서 정을 나눈 지 10년이 넘었으니내 몸처럼 그대를 씻고 닦았다뙤약볕에 그을세라 눈비를 맞을세라 정성들여 돌봤다그대가 다칠까봐 조심조심하고어디 탈이 나지 않을까 자주자주 데려가 점검했다 그래선지 그대는 날 한 번도 애먹이지 않았다서울로 이사하고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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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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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누구시오?"대답이 없다. '내가 꿈을 꾸었나!' 중얼거리며 잠을 청하는데, '찰싹 찰싹' 봉창을 두드렸다. 할머니는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영철이올시다."숨죽여 말했다."아니, 네가 이 밤중에!""이것 좀 맡아 주십시오.'"무언데?""폭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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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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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작품이 태어났다. 1967년 11월 12일이다. 명동 성모병원에서 첫 대면을 했다. 수정처럼 맑은 눈망울이 “아빠! 예쁜 이름지어주세요”란다. “그래, 네 이름을 10년 전에 지어두었단다”라 답했다.1957년에 바닷가 수도원처럼 사회와 격리된 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의 자유와 낭만을 모르는 채 혹독한 훈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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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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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곡시는 내 고향 사곡면(舍谷面)이 원산지인 감의 품종명이다. 토종의 떫은 감으로 조생종이어서 연시(軟柿)나 곶감보다는 침시(沈柿)에 더 적합하다. 예천의 고종시나 상주의 둥시와 같은 원추형이 아니라 청도의 반시를 닮은 편원형(扁圓形)의 감이다. 그러나 횡단면이 반시의 방형(方形)과는 구별되는 원형이다.다른 품종들이 아직도 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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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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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간다 하면서 늦어졌다. 몸이 개운치 않은데도 출발했다. 가을 정취가 향기로워 몸과 마음이 상쾌해졌다. 아름다운 풍광 위로 서글픈 옛 기억들이 겹치며 떠오른다. 내가 네댓 살이었을까.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에 업히거나 손을 붙잡고 성묘를 다녔다. 첫째형님은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고, 둘째형님은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뉴기니 전쟁에 참전했다. 대가 꺾일 상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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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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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손바닥만 한 쪽지에 무언가를 적어두었다가 읽으며 날더러 들어보란다. 한 두 번도 아니고 간간히 그렇게 한다. 귀찮아 그만 두라고 퇴박했다간 토라지면 득 될 것 없어 그저 듣는다. 가만히 들어보면 순간순간 생각난 것을 낙서한 것들이다. 글이 짧고 제법 운율이 있는 것으로 봐 산문은 아니고 시다. ‘이 여자가 갑자기 시인이 되려고 이러나!&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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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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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처럼 혹독한 더위가 또 있었을까? 찜통 같은 열대야에 잠 못 이뤄 뒤척이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던 고향집 여름밤이 생각난다.헛간 초가지붕에 박 넝쿨이 무성했다. 대낮엔 뙤약볕에 박꽃들이 시들시들했다가도 해가 지면 하얀 꽃들이 밤하늘 달을 쳐다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여름밤, 나는 할아버지랑 마당에 덕석을 펴고 나란히 누었다. 매콤한 모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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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3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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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둘째 금요일, 옛 직장동료들이 명동성당에 모인다. 얼굴들에는 젊은 날의 애련한 추억이 서려있다. 고락을 함께했던 동료인데다 신앙이 같아서인지 흉허물이 없다. 모두들 나이가 예순을 넘어 일흔들이다. 공직생활이 몸에 배어 스스로 품위를 지키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들이라 제 잘랐다고 티격태격하지 않는다. 여니 노인들 모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런 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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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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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픈 다슬아!네가 보고플 땐 너의 이메일을 읽는다. 너는 영어로, 할아버지는 한글로 이메일을 매일 했다. 너와 내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프린트하여 둔 파일북이 여섯 권 째다. 읽고 베껴 쓴다. 왤까?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소복이 담겨있는 네 이메일을 읽고 베껴 쓰면 즐겁고 기운이 나기 때문이다.다슬아! 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런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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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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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정부와 국제해사안전기구(IMO)가 해사안전에 관한 세미나를 흑해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공동으로 개최했다. 1983년 9월 2일이었다. 당시 한국은 소련과 미수교국일뿐더러 적성국이었다.회의장에는 참가 국가들의 국기가 게양됐다. 태극기가 없었다. 문서담당 다이아나에게 물었더니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소련 해운성 샤베리에프 국장에게 물었다. IMO에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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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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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를『구러개』라 했다. 동네 초입에 주막이 있었고, 주막 옆에 수백 년 된 정자나무가 수문장처럼 지금도 동네를 지킨다. 정자나무 밑에 널따란 바위가 있어 길손이 쉬어가고 농사꾼들이 참을 먹고는 오수를 즐겼다. 정자나무 주위를 들판이 둘러싸고, 그 들판을 올망졸망한 산들이 에워싸고 있다. 다만, 동쪽은 대문처럼 열려있는데 그 끝자락에 섬진강이 흐른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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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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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할 즈음에 수원으로 이사했다. 수원 도심에서 서남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산골이다. 연고가 없어 고도(孤島)에 나 홀로 버려진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병풍처럼 감싸주는 뒷산 칠보산이 있어 마음은 편하다. 공기가 신선하고 소음도 없어 고요하다.칠보산이 친구가 되어준다. 갈증이 나고 외로울 때면 산으로 간다. 이름 모를 나무들과 풀들, 바위들과 새들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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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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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회의 참가 차 영국에 간 김에 아들 학교의 강의실과 기숙사를 돌아봤다. 기숙사가 너무 허름하여 ‘세상에, 대영제국의 대학기숙사가 이럴 수가!’라며 난감했다. 기숙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났다. 여름방학 동안 한국에 돌아가 쉬어가라고 권했다. “우리보다 잘 사는 미국 독일 일본 학생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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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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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가 왔다 수줍은 듯 얼굴을 살포시 내 민다한겨울 혹한 견뎌내고봄 안개에 실려 왔나너는 봄이면 오는데내 임은 아니 오신다그때도 진달래가 피었으니, 1959년 이맘때였다. 그녀가 나에게로 왔다. 여고생티를 채 못 벗어나 앳됐다. 한란(寒蘭)처럼 청초했다. 하늘이 주신 선물인양 감격했다. 캠퍼스를 안내했다. 주말이라 여기저기 삼삼오오로 망중한을 즐기던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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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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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 대학입학시험을 보러 떠나는데 어머니께서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 보름달빛에 바늘귀를 꿰여 만들었다”라며 하얀 가제손수건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노안(老眼)이라 대낮에도 어려운데 달빛에 바늘귀를 꿰었다니! 합격을 애원하는 정성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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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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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고향이 그리워 필 닐니리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필 닐니리⋯ 시인 한하운은 문둥이의 서러움을 피맺히게 토해낸다. 오그라진 손, 비뚤어진 입, 코 빠진 문둥이들의 가면극에서 ‘병신 된 이 몸이 양반인들 무엇 하며, 재산인들 무엇 하랴’란 사설(辭說)이 서럽다.애 간을 먹으면 문둥병이 낫다는 구전(口傳)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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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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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 형,거문도(巨文島)로 왔습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남짓 항해한 유역이 여수시 삼산면(三山面)에 속한다고 합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몇 구획 중 최남단의 구획입니다.봄을 만나러 왔습니다. 어쩌면 바다를 보러 왔습니다. 반도 중허리의 길고 메마른 삼동(三冬)에 질식할 것만 같아서, 삼월이 열리자마자 만단을 제처 두고 달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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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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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전, 1983년 8월 29일 오후 4시 김포공항 JAL데스크. 여권과 항공권을 보고는 놀란 눈빛으로 “소련에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여기저기에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기관원들이 이리떼처럼 몰려왔다. 옥신각신하다가 제일 힘센 기관원이 나를 데려갔다. 출장목적을 꼬치꼬치 묻고는 어디엔가 전화를 한 뒤 나를 놓아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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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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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식구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들 모두가 보고 싶었다. 그중, 나의 보물인 장손녀 다슬이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했다. 손자가 없어 다슬이를 장손으로 생각하고 끔찍이 아꼈다. 다슬이도 나를 잘 따랐다. 식전기도를 하기에 “무슨 기도했어?”하면 “하느님! 우리 할아버지 땅속에 들어가지 말고 오래 오래 살게 해 주세요&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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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9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