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피아노를 위해 그 먼 뒤안길을…

피아노 독주회에 초대받았다.

가을비가 내리는 저녁에 예술의 전당에 갔다. 매표소 앞에서 가족들을 만나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객석이 텅 비었다. 주제넘게 걱정을 했다.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연주자 안희숙 선생이 지도해 중앙일간지 주최의 콩쿠르에 입상했기 때문이다.

안 선생은 이화경향, KBS,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콩쿠르를 휩쓸고 5‧16 민족상을 수상했다. 천재적 소질을 인정받았다.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떠난 후 소식이 깜깜했다.

뜻밖에, 그의 연주 실황이 인터넷에 떴다. 당장 이메일로 독일거주를 확인했다. 한참을 지나 귀국했다. 35여년 만에 우리 가족과 만났다. 그는 딸을 보는 순간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야단치고 다독거렸던 초등학생이 지금 딸 둘과 남편과 함께 나타났으니… 자리를 잡고 지난 날들을 이야기했다.

그는 베를린에서 국립음악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칼스루에 국립음대 최고연주과정을 수료하고 왕성한 연주활동을 했다.

2005년에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초청의 F. Schiller 서거 2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프로그램 감독으로 선발됐고, 그 축제기간에 그의 피아노 독주회가 최대 관객을 동원했다. 2009년에는 잠시 귀국해 예술의 전당에서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을 KBS교향악단과 협연했다.

2012년에 200년 동안 알려지지 않던 베토벤의 스승 C. G. Neefe의 소나타 전집과 판타지를 독일국영방송사 초청으로 세계초연을 했다. 또한 방송사 협찬으로 음반이 출반됐다. 초청 녹음이 10회 이상인데 이는 현지 음악인들도 드문 기록이었다. 고난과 외로움을 이겨낸 각고면려(刻苦勉勵)의 영광이리라.

공연시간이 됐다. 뒤를 돌아다보니 객석이 꽉 차 안심했다.

연주자 홀로 무대에 오른다. 화려한 무대의상이 아니다. 수수한 가정주부 모습이다. 곡목은 모차르트 두 곡, 슈베르트 한 곡, 리스트 한 곡이다.

악보도 없이 피아노 앞에 앉는다. 잠깐 묵상을 한다. 건반에 손을 올려놓는다. 엄마가 갓난애를 어루만지듯 건반을 잔잔하게 터치한다. 두 손을 뻔쩍 들어 매몰차게 건반을 내려친다. 우는 아이를 달래듯 건반을 다독거린다.

머리를 뒤로 젖혔다 앞으로 숙인다. 상체를 좌우로 흔든다. 팔을 높이 들어 두 손을 휘젓는다. 엉덩이를 들썩인다.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의 온 힘을 다해 피아노를 휘어잡는다. 사력을 다해 숨 가쁘게 노를 젓는 카누선수다. 신이 내린 무녀처럼 무아의 경지다.

마지막 곡, 리스트의 소나타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연주시간이 30분의 대작이다. 리스트 작품 중에 가장 예술성이 풍부하여 서정적이면서 긴장감이 넘쳐 관중들이 숨을 멈춘다. 안희숙과 피아노와 관중이 하나가 되어 음악 속에 묻힌다.

끝났다. 박수갈채와 환호성으로 열광한다. 앙코르 두 곡을 연주하고서야 관중이 공연장을 빠져나가 회랑으로 모인다. 피아노계 정진우 원로를 비롯하여 음악인들의 박수와 포옹과 꽃다발증정으로 회랑이 뜨겁다.
안 선생은 말한다. “젊을 때는 내 자신을 들어내려고 피아노를 했으나 지금은 작곡가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꾸준히 노력합니다”라고.

나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생각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피아노를 위해 그 먼 젊음의 뒤안길을 돌아온 누님 같은 모습에서 한 송이 국화꽃처럼 그윽한 향기가 풍겨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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