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아지매

우리 집에 한 주에 한 번 오는 도우미가 있다.

나는 그를 ‘아줌마’라 하지 않고 ‘아주머니’라 부른다. 나이깨나 먹은 내가 아줌마라 부르면 내 스스로가 경박한 것 같아서, 또한 상대를 홀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간혹 불쑥 아줌마라 불렀다가도 고쳐 부른다. 물론 사람마다 어휘에 대한 감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는 아줌마가 보편화 되었지만.

내 고향 사투리 ‘아지매’는 정감어린 호칭이다.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아지매가 있었다. 아지매는 할머니 친정 편으로 조카뻘이었다. 오고가며 우리 집에 들러 할머니 어깨와 팔다리를 만져드리고 동네소식을 알려드렸다. 바깥나들이가 불편한 할머니의 눈과 귀가 되고 말동무이었다.

내가 밖에서 놀다가 할머니께로 다가가면 아지매가 “아이고, 우리 귀염둥이! 어디 갔다 왔는고?”라며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다독거렸다. 내가 아지매 집에 가면 반가워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먹거리를 챙겨주며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장에서 얻어먹는 여자가 애기를 낳았어. 할머니가 이 소식을 듣고 집에서 쌀과 간장을 챙기고는 시장에서 미역을 사 움막으로 가셨어. 애기를 받아 안고서 ‘잘 키우시게’라며 산모를 다독거려셨지. 참 인정이 많으신 할머니시지”

어릴 때 아지매와 지금의 아주머니의 모습이 가끔 겹쳐 떠오른다. 얼굴, 머리, 옷매무새 등 외모는 딴판인데도. 아지매는 무명 치마저고리에 쪽을 찐 봉건시대 아녀자였다. 아주머니는 파마머리에 캐주얼차림의 현대여성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나에게는 엇비슷하다. 왤까? 외모는 확연히 다르지만 마음씨가 닮았다. 두 분이 마음 씀씀이에서 사람냄새가 풍긴다.

아주머니가 주방기구를 깔끔하게 씻고, 마른 걸레로 벽을 닦는다. 손이 닫기 어려운 구석구석을 손질을 한다. 서랍장을 말끔하게 정리한다. 시간을 대충대충 때우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숨이 막히는 한여름에 가냘픈 몸으로 어쩌면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할 수 있을까!

일이 끝난 뒤, 침실이나 서재나 화장실에 들어가면 기분이 상쾌하다. 고마운 생각이 절로 울어난다. 설과 추석에 깨끗한 지폐를 골라 깨끗한 봉투에 넣고는『수고했습니다. 명절 잘 쇠세요』라고 써 보너스를 주면 사양한다. “성의를 거절하시면 안 되지요”라고 말하면 마지못해 받는다.

병원에서 우연히 아주머니를 만났다. “어디 아프세요?”라고 물었더니 시어미를 모시고 왔단다. 친정어머니도 병원에 모시고 와야 한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어려운 처지에 두 어른을 모시는 효심이 갸륵하다.
동네 이웃들과 계를 모아 월남 관광을 다녀왔단다. 재미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월남에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애기를 안고 구걸하는 엄마에게, 물건을 사달라고 애원하는 어린이에게 주는 돈이 아깝지 않았단다. 자신도 어려운데도.

꿈을 꿨다. 옛 고향집 안방이다. 할머니와 아지매가 마주앉아 있고 그 옆에 아주머니가 서있다. 세 사람이 무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으나 그 모습들은 역력했다.

시대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 세 분이 시공(時空)을 초월해 한 자리에 모였다. 참 희한한 꿈이다. 세 분 모두 사람냄새 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한 자리에 모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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