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양창호 교수

▲ 양창호 인천대 교수
지난해 말 싱가포르의 파시르 판장(Pasir Panjang) 터미널은 3단계 및 4단계 자동화 터미널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자동화 야드 크레인(ARMG)을 10선석 분량, 총 130대 중 72대를 발주하였다. 동시에 자동화 야드 크레인을 제어할 제어시스템 구축업체도 선정하였는데, 스웨덴의 ABB사와 일본의 도시바, 미스비시와 미국의 GE사의 합작사인 TMEIC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인 서호전기가 입찰에 응했다. 그동안 전 세계 크레인의 70% 이상을 수주한 중국의 ZPMC사는 주로 ABB사 등의 자동제어시스템을 이용해 왔었지만, 결과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인 서호전기가 낙찰을 받았다.

이 낙찰로 서호전기는 싱가포르 파시르 판장 터미널 자동화 야드 제어시스템 구축에 중국의 ZPMC사와 약 5천만 달러(560억원) 규모의 크레인 제어시스템(Electric control system for Cranes) 하도급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액은 동사의 최근 연 매출액 273억 원의 약 2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번 싱가포르의 야드크레인 발주물량 72대는 세계 최대 규모였고, 게다가 나머지 58대 분의 야드 크레인 자동화 시스템도 금년까지 옵션으로 행사할 수 있어 총 9000만 달러(약 1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외국기업을 제치고 기술수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해양수산부 등 정부의 기술개발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1998년 12월에 1999-~2003년 5년간 1조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투자해 추진할 32개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선정하였는데, ‘첨단항만 핵심 기술개발사업’이 해양수산부와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국가중점 연구개발과제’로 선정되었고, 주관은 현대중공업이 추진했지만, 자동화 제어시스템은 서호전기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후 5년간 기술개발을 하면서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아시아 최초의 자동화 터미널을 광양항 3단계에 개발하는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2003년에 광양항 자동화 부두 건설이 보류 되면서, 이 기술은 대신 광양항 철송장에 자동화 야드크레인(ATC)을 제작하는데 활용되었고, 또한 2004년에 부산 신선대 부두 4번 선석 장치장 자동화에 적용되었다. 야드 크레인 제작은 연구사업에 참여했던 현재중공업이, 그리고 크레인 자동화 제어시스템은 역시 기술개발에 참여했던 서호전기가 맡아 2005년에 완공했다.

네덜란드의 ECT나 독일의 CTA 터미널이 자동화 터미널이지만 야드가 안벽에 수직으로 배치된 수직배치 터미널이라면, 부산의 신선대터미널은 야드가 기존터미널처럼 수평으로 배치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동화를 구현한 세계 최초의 터미널이다. 특히 야드 크레인 주행로 밖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형태(캔틸레버 타입)로는 세계적인 자동화시스템이어서 외국에서도 많이 견학을 오는 곳이다.

이후 자동화 크레인 제어시스템 기술의 개량과 고도화에 많은 기술개발 자금이 필요했으나, 후속적인 연구개발 지원이 없어 자체 자금과 노력으로 기술개발을 완성해 나갔다. 최근에는 현대상선의 현대 부산신항만 터미널(HPNT)의 38대의 트윈 캔틸레버 타입의 ATC에 대한 드라이브 및 자동화시스템을 공급하였다. 10년이라는 기술개발 노력 끝에 2014년 말에 크레인 자동화 제어시스템은 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ABB사 등을 체치고 막대한 규모의 기술수출을 하게 된 것이다. 서호전기의 김승남 사장은 이 기술수출이 싱가포르 항만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 한다. 향후 컨테이너선의 초대형화에 부응하기 위해 세계 주요 항만들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을 건설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기술수출이 이 모든 터미널의 자동화 제어시스템 기술 수출의 교두보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이와 같은 기술력 확보와 기술수출의 이면을 살펴보면 연구개발 지원에서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점을 살펴볼 수 있다. 동사는 세계 주요 항만 터미널에서는 안벽크레인 자동화 시스템, 자동화 RMG 등 다양한 형태의 크레인 자동화 제어를 요구받았지만, 중소기업으로 기술개발을 위한 인력과 자금의 어려움으로 기술개발을 전부 추진할 수는 없었다. 몇 번 정부의 기술개발자금 수혜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선정되지 못하곤 했다. 기술개발업체 선정에서 기술개발력을 갖고 있는지 여부가 정확히 판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동사가 개발한 기술을 국내외에 판매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것은 부산항 신선대 터미널에 이 기술을 구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잠재 구매자에게 보여줄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신선대 터미널이 이 기술을 적용한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정부의 어떠한 인센티브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도 적용해 보지 않은 신기술 시스템에 투자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호주 등 외국에서는 신기술을 적용할 경우 투자비의 150~200%까지 세제감면을 해주고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신기술 적용 시 세제감면 등의 지원책이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이 기술을 신선대에 도입한 책임자는 초기 생산성 문제로 책임을 지고 터미널을 떠나야만 했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을 했다 해도 이를 국내에 적용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최근 보도를 보면 우리 국가 R&D 사업의 성공률은 2012년 기준 82%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지만, 국가 R&D 기술이 사업화로 이어지는 비율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한다. 미국·영국의 70%에 크게 뒤진다는 것이다. 세금 지원을 받은 연구 과제에 실패하면 다음번 연구비를 타기 어렵기 때문에 사업화 가능성을 따지지 않은 채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과제만 고르기 때문이라 한다. 이러다 보니 항만과 같은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중요하고 핵심적인 기술개발은 개발 및 사업화의 리스크로 외면당하기가 일수다.

R&D로 지출한 예산과 그 연구 결과인 기술로 벌어들인 수입의 비율을 의미한 연구 기관의 R&D 생산성은 1.80%로 미국(10.83%)의 6분의 1 수준이라 한다. 서호전기를 포함한 10여개 업체 기관에게 투자된 기술개발자금이 5년간 총 50여억원으로, 이번 기술수출만 보더라도 첨단항만 기술개발 R&D 생산성은 2,000% 정도가 된다.

해양수산부는 해운, 항만, 해양, 수산 등 여러 분야에서 기술개발에 주력하는 기술부처로 그 격을 높여가야 한다. 이번 서호전기 R&D 성공담을 보면서, 정부의 기술개발은 기술개발력을 보유한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많은 개발 기술이 사장되고 있는데, 테스트 베드 투자를 늘리는 등 실용화에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점, 또한 개발 위험이 크지만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기술개발이 이루어지도록 선정기준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기술개발의 효과가 적어도 10년 후에 나타날 수 있다는 점 등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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