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클레이튼 IHS Maritime and Trade 수석 애널리스트

▲ 리차드 클레이튼 애널리스트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안전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 사고로 여러 문제가 드러났지만, 특히 안전장비에 대한 지나친 비용절감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인명 구조 장비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점유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우려스러운 일이다. 중국 업체가 안전장비 시장에서 영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는 대부분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점유율을 늘려왔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낮은 제품 가격, 해양법상 승인 용이성, 그리고 자국제품 이용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지 덕분이었다.

중국 업체를 포함한 모든 국제 해상운송기업은 안전보안상 잘못이 적발되었을 때 처벌받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값싼 안전장비를 들이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오히려 신규 선박제조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영세 금융기관이 현대식 디자인이나 최신 표준 부품 적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선박제조 지원 금융사의 규모가 클수록 고급 재료와 전문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시인했다.

몇몇 중국 업체의 경우,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원가를 낮추는 것이다.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원가를 낮추게 될 경우 이는 결국 선박 구매 고객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장비로는 팽창식 구명조끼, 바다에 던져 사용하는 팽창식 구명보트(throw-over inflatable life rafts), 자동으로 펼쳐지는 캐노피가 장착되어 있고 대빗(davit)을 이용해 펼치는 일반형 팽창식 구명정(davit-launching inflatable life rafts with self-erecting canopies) 등이 있다.

매우 놀라운 점은 중국 국내 운송안전기준이 아직도 국제 무역안전기준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선주와 선박 운영사가 인명 구조 장비를 선택할 때, 장비가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는지보다 비용을 중요시하는 것 역시 우려되는 사안이다.

국제구명설비(life-saving appliance, LSA)의 역할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양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승객과 승무원이 선박에 탑재된 구명조끼를 입고 구명정에 올랐음에도 생명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사후 조사에서 장비에 결함이 있었고 또 최적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이 밝혀진다면 선주와 선박운영회사 책임자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아시아는 해상 안전과 관련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 중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분향소를 찾았을 때 희생자 유가족들은 박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했다. 국무총리 역시 안산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를 방문했을 때에도 유가족들의 반발로 조문하지 못했다.

희생자 유가족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변화를 약속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또 세월호 승객 구조 실패 원인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박근혜 정부가 보장하고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성명에서 박 대통령이 참사의 책임을 제도적 장치의 실패가 아닌 ‘사람들의 안전불감증’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년 대국민 발표에서 “이제 세월호의 고통을 딛고 그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길에 나설 때”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년간 겪었던 슬픔에 좌절하며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중국에서 저렴하고 낮은 수준의 인명 구조 장비 판매를 정당화하려는 업체가 있다면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상황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안전불감증으로 비난을 받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것은 없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뒤에는 ‘부실’이라는 단어가 종종 따라다닌다.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부 사업도 이런 평가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낮은 기준의 안전장비 사용을 용인하는 것은 바로 안전불감증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 해상에서의 안전은 문자 그대로 무엇이건, 어디에서건, 모두를 위한 안전을 뜻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이를 꼭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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