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김종길
물처럼 살라했다

참 오래 살았다. 팔순이 다가왔으니.

누군가가 99, 88, 23이라 기염을 토했다.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다 죽겠다고? 오만이다. 물처럼 겸손하게 살라했는데…

‘큰 곡간에 먹을 것을 가득 채워놓고 먹고 마시며 즐기자’란 오만에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영혼을 데려가면 어쩌려고?’란 경고가 따끔하다.

허리가 휘어진 할머니가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갔다. 손수레에 폐지와 폐품이 실렸다. 고물상에 팔아 몇 푼이나 받았을까? 바닥으로 떨어진 극빈계층이 저 할머니뿐이랴? 절망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세계 최강국 미국도 빈곤문제가 심각한가 보다. 한국 일간지 특파원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조지타운대학에서 빈곤 극복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대통령이 참가했다. 대통령 좌석이 따로 없다. 꼭 같은 의자 4개가 연단에 나란히 놓였다. 그 중 하나가 오바마 의자였다. 그 옆으로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하버드대학 교수, 보수성향의 미국기업연구소 회장이 앉았다.

오바마가 발언했다. "25명의 헤지펀드 운영자의 연봉을 합치면 미국 유치원 교사 모두의 연봉보다 많다. 과거엔 인종차별이었는데 현재는 계층차별이 문제다"라고. 대통령들이 금기시해왔던 인종문제도 오바마가 거론했다. 자신이 아버지 없이 자라며 겪었던 서러움을 토로했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가 가난한 사람을 벌레 보듯 묘사했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메모 한 장 없이 세계적인 석학과 싱크탱크들과 토론하는 오바마의 능변이 백미였다. 그의 국정철학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부유층을 옹호하는 정치인에 대한 일갈이 빈곤층에게 삶의 의욕을 북돋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미국이 이러할 진데 후진국 빈곤층의 삶은 어떠하랴.

2500년 전 老子가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 인생을 물처럼 살면 최선(最先)이란 뜻이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 구정물까지 받아드리는 포용, 높지도 낮지도 않는 평형. 이것이 물이다.
가진 자가 오만하지 않고, 갖지 못한 자가 주눅 들지 않는 물 같은 세상이었더라면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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