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클레이튼 IHS Maritime and Trade 수석 애널리스트

▲ 리차드 클레이튼 애널리스트
에너지 산업에 새로운 표어가 등장했다. 이른바 산업의 존재 이유는 ‘가격이 적당한(affordable)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끔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그 뜻이 그리 명확하지는 않다. 선진국이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라는 것이지, 여러 신흥국에게는 한낱 꿈같은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규칙이 모두에게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할 때 오는 12월 경제성장을 유해 배출물 감축과 연결시켜 논의해야 하는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모든 나라를 만족하게 할 방안을 과연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제21회 총회를 앞두고 각국 대표들은 외교적 수완을 갈고 닦기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저마다 다른 입장'이 바로 필자가 지난 4월 말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IHS 세라위크(IHS CERA Week)1)에서 느낀 점이다. 이 컨퍼런스에 참석한 최고 경영자들과 임원진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이들이 하는 말 한마디에 따라 기업의 주가가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 대부분은 마치 사전에 작성되고 검증된 것 같았다.

간단히 말해, 미국의 주요 석유 기업들은 현재 낮은 유가, 원유 공급과잉, 그리고 대중의 반발을 우려해 정치적으로 금지된 미국의 원유 수출 등의 이유로 생존 경쟁에 내몰린 상황이다. 석유는 석탄보다 환경을 훨씬 덜 오염시키면서 가스보다는 가격이 싸다는 이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선진국은 천연가스를 이용한 전력 생산에 투자할 것을 격려할 것이고 개발도상국은 석유를 고집하며, 급격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신흥국은 값싼 석탄에 계속 의존하게 될 것이다.

세라위크에서 한 청중이 석탄의 장래성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자, 스타토일(Statoil) 신임 최고경영자 엘다 사트르(Eldar Sætre)는 이를 가볍게 웃어넘기며 석탄에서 가스로 전환하는 것만이 길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의 강소국에서 온 임원이란 점에서 그의 대답을 수긍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균형 잡힌 세계관이 요구되는 에너지 산업에 종사하는 임원으로서 그의 발언은 적절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제성장 신화는 천연가스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 친환경적 연료로의 전환은 석탄 화력발전에서 발생하는 공해물질이 국민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최근의 결정이다. 마찬가지로 인도의 경제성장 역시 가스보다는 석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하지만 인도의 경우,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인도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품질이 낮고, 석탄 운반 인프라는 낙후되어 있으며, 화력발전소의 전력 예비량은 제한적이다. 또한, 노동생산성은 노동자 1인 혹은 1교대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 호주 대비 10분의 1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도 인구의 절반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없는데, 이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여러 나라와 비슷한 상황이다.

해운 업계는 한 나라의 에너지 선택이 에너지의 세 가지 요소, 즉 감당할 수 있는 가격, 안정된 공급, 친환경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진국은 가스 운송관이나 선박을 이용해 기존의 에너지 원천을 천연가스로 전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이들에게 천연가스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가격이고, 원활한 공급 또한 보장되며, 화석 연료 중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에너지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값싼 원유나 정제유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고품질 석탄 제품의 사용이 배제되지도 않을 것이다. 해운 업계는 발전소, 배전망, 항만/터미널 건설과 같은 대형 기반시설 사업과 마찬가지로 이 분야에서도 사업 기회를 지속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어떠한 합의가 이루어지든 (실제로 결정이 나기라도 한다면), 부유한 나라들이 신흥국들을 춥고 어두운 곳에 내버려두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세라위크 참석자들은 에너지를 발전소로 운송하는 수단이 송유관, 철도, 하천용 바지선(brown-water barges)만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필자는 석탄, 석유, LNG 등을 전 세계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심해 선박이 앞으로 수십 년간 에너지 운송에서 충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해운 업계는 건화물선(dry bulker), 유조선(tanker), 가스선(gas carrier)이 보다 에너지 효율적인 연료추진(propulsion) 체계 및 선박 설계를 적용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COP21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해양산업의 기여가 절실하다.


1) IHS CERAWeek : IHS가 매년 주최하는 글로벌 컨퍼런스로, 석유, 가스, 석탄, 발전 등 에너지 산업 관련 기업들이 대다수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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