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정동국제 서동희 대표변호사

▲ 서동희 변호사
우리나라 해상보험업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선박보험은 대부분 런던보험자협회가 제정한 Institute Time Clause–Hull(협회기간보험약관(선박))약관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선박보험약관에는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있고, 이러한 준거법 조항은 우리나라에서 유효하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미 인정되고 있는데, 이러한 경우 우리나라의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규제법”) 제3조에 규정된 설명의무가 적용될 것인지가 항상 문제가 돼 왔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줄곧 그 설명의무가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었는데, 이번에 내려진 대법원은 2015. 3. 20. 선고 2012다118846, 2012다118853(반소) 판결(이하 “제1인성호 판결”) 에서 이러한 기존의 입장과 상반되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 사건에서 원고 메리츠화재해상보험가 보험계약자 겸 피보험자인 피고 인성실업에 대해 선박보험 및 적하보험 아래에서 보험금 지급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고, 피고 인성실업은 동 원고를 상대로 해 보험금 청구의 반소를 제기했다. 문제의 보험은 “제1 인성호”에 대한 ITC(Hull, 1/10/83) 및 적하보험약관에 의한 것이며, 문제가 된 약관은 선박보험에 포함된 약관Institute Warranty와 적하보험에 포함된 약관 Institute Frozen Food Clauses(C), Special Fishing Product Clauses(A)이었다.

대법원은 선박보험에 대해 준거법이 영국법이므로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판결 이유는 “국제사법 제 27조 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준거법 지정과 관련해 소비자계약에 관한 강행규정을 별도로 마련해 두고 있는 점이나 약관규제법의 입법 목적을 고려하면,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해 체결된 모든 계약에 관해 당연히 약관규제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0. 8. 26. 선고 2010다28185 판결 등 참조).

원심은, 이 사건 선박보험에 적용되는 협회기간약관[Institute Time Clauses (Hull-1/10/83)]에서 이 보험은 영국의 법률 및 관례에 준거한다고 정하고 있고, 제3조 에서 계속담보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과 통지 등에 관해 규정하고 있으며, 협회담보약관에는 앞서 본 바와 같은 워런티 조항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원고가 영국법상 워런티 조항의 내용과 효력, 그 위반의 효과 등에 관해 설명하지 아니했으므로 약관규제법 제3조 에 의해 협회담보약관이 이 사건 선박보험에 편입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해, 이 사건 선박보험에서 해상보험업계의 일반적 관행에 따라 영국법 준거약관을 사용하고 있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공익이나 공서양속에 반한다거나 피고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선박보험과 관련된 모든 법률관계의 준거법은 영국법이고 달리 약관규제법을 적용해야 할 사정이 없어, 이 사건 선박보험에는 약관규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피고의 위 주장을 배척했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앞서 본 법리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론은 종래 대부분의 해상보험 전문 교수나 변호사들이 영국법이 준거법인 경우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며, 종전의 대법원 판결을 비판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한 면에서 놀라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계속돼 오던 대법원의 일관된 판결례를 하루 아침에 번복시켰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특히 직전의 대법원판결이 설명의무의 대상을 단순 약관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warranty의 성격이나 효과를 설명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해상보험 회사들에게 매우 부담되는 설명의무를 부과해, 설명의무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의 하나의 정점을 찍었었는데, 불과 5년도 안 된 시점에서 완전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물론 제1인성호 판결에서 대법원은 그 이전의 “101해동호 및 102호 판결”과 사안이 구별된다고 판시하기는 했다. 대법원은 여기에서 “101해동호 및 102호 판결”은 선박보험계약이 준거법 지정 외에 외국적 요소가 없는 순수 국내계약인 사안에 관한 것으로서, 외국적 요소가 있는 이 사건과는 사안을 달리하므로 이 사건에서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했다. 대법원이 판결한 이 부분의 판시 내용은 아직 정확성이 결여돼있다고 판단되는데, 앞으로 대법원의 후속판결에 의해 보다 명확한 기준을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해튼 이번의 대법원 판결로 (영국법이 준거법으로 돼 있는) 선박보험약관에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에 관한 규정은, 해당 사안이 선박보험계약이 준거법 지정 외에 외국적 요소가 없는 순수 국내계약인 사안이 아니라면, 이것이 적용되지 않게 되었다. 실로 대법원의 엄청난 입장의 변화가 아닐 수 없으며, 이 판결로써 해상보험자들은 그 동안의 고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대법원 2010. 9. 9. 선고2009다105383 판결. 이 사건, 즉 101 해동호 및 102 해동호 사건에서 대법원은“영국 해상보험법상 워런티 제도는 상법에 존재하지 아니하는 낯설은 제도이고 영국 해상보험법상 워런티 위반의 효과는 국내의 일반적인 약관해석 내지 약관통제의 원칙에 비추어 이질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비록 워런티라는 용어가 해상보험 거래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하더라도 해상보험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없거나 워런티에 관한 지식이 없는 보험계약자가 워런티의 의미 및 효과에 관해 보험자로부터 설명을 듣지 못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할 경우 워런티 사항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어떠한 불이익을 받는지에 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위반 즉시 보험금청구권을 상실할 위험에 놓일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상실 사실조차 모른 채 보험사고를 맞게 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워런티 조항을 사용해 해상보험을 체결하는 보험자로서는 원칙적으로 당해 보험계약자에게 워런티의 의미 및 효과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고, 단순히 워런티 조항이 해상보험 거래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개별 보험계약자들이 그 의미 및 효과를 충분히 잘 알고 있다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단정해 이를 언제나 설명의무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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