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경쟁력 위해 해상 고속도로 깔아라
선박투자, 산림업처럼 장기적으로 봐야
해운경영자도 소유에 대한 집착 버려야

한국해운은 현재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전세계적으로 강타한 해운업 장기 불황의 여파로 일부 선사들을 제외하고 상당수의 국적 외항선사들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드라이벌크 선사들의 경우는 이미 반수 이상이 경영 파탄 상태를 겪었거나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해운 전체가 해운 빙하기를 맞아 凍死직전에 몰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이나 관계기관들은 이 난관을 헤쳐 나갈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힘없는 많은 우리 국적 외항선사들은 안타깝게도 마지막순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한국해운신문이 원로들을 찾아 나선 이유는 이렇게 어려운 한국해운의 회생 방안에 대해 慧眼을 갖고 있는 우리 해운계 원로들이 그 해답을 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최근의 해운불황에 가장 잘 대처를 해온 기업으로 알려진 KSS해운의 설립자 박종규 고문이었다. 10년전 암 수술을 받고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박종규 고문이 마침 간단한 시술을 받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상황이어서 기자는 7월 14일 박종규 고문을 KSS해운 회장실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편집자 주>

박종규 회장(바른경제동인회 회장)은 머리가 완전히 희어지고 살이 좀 빠진 것처럼 보였지만 눈매는 오히려 그 전보다도 더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지만 일체의 항암치료나 투약을 거부하고도 암을 완전히 극복하는 기적을 이뤄낸 박 회장의 얼굴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기자는 우리 한국해운도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만나 당장에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한국해운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가를 물었다.

“나는 걱정하는 것이 한가지에요. 우리나라 해운업에서, 트램퍼 쪽은 걱정을 별로 안합니다. 왜냐하면 부정기선이라는 것은 어차피 민간이 감당해야 할 문제이고, 망해도 민간 책임이고, 흥해도 민간이 엔조이 하는 것이니까 정부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컨테이너 정기선 부분입니다. 컨테이너 정기선은 내셔널, 국가적인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국가가 바짝 신경을 써야만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상태대로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우리나라 국적 원양 컨테이너선사는 없어질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력에 문제가 생길 것이고, 이것은 제조업 전체의 위기로까지 퍼져나갈 것입니다. 한 국가에 원양컨테이너 정기선이 없는 것은 대단한 약점입니다. 바게닝 파워가 약해지는 것이니까…. 이제 정부는 해운을 단순히 해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의 수출 경쟁력과 바게닝 파워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이냐 하는 관점에서 바라 봐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원양컨테이너 정기선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재 한진, 현대로 나뉘어져 있는 두 회사를 한 회사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당분간은 국영선사라도 좋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는 정기선사를 지금 만들어야만 한다는 얘기입니다. 해양수산부가 이런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산업은행은 금융지원을 하고 조선업계도 협조하여 초대형컨테이너선에 의한 위클리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박종규 회장은 역시나 달변이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본론을 먼저 꺼내들고 얘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암 발병 이후 제주도에 내려가 해운업계와는 완전히 발을 끊었던 박회장이지만 해운업계 돌아가는 상황은 챙겨보고 있었던 듯하다. 원향항로에서 2만teu급 컨테이너선이 활보하는 상황에서 6000~7000teu급 컨테이너선으로는 경쟁이 안될테고, 결국 초대형선 건조경쟁에서 탈락한 선사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업계의 일반 상식을 그도 꿰뚫고 있었다.

“정기선 해운을 민간에 그냥 맡겨둘 일이 아닙니다. 민간은 힘이 없으니까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도 자금난에 허덕허덕 살기가 바쁜데 발주 여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이것을 살려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국가적으로 생각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원양 컨테이너 정기선은 국가적인 산업으로, 무역을 위해서, 수출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운회사라는 개념을 떠나서 산업체를 위해서, 수출을 장려하고,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고속도로 깔듯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 간접자본이라고 생각하고 정부에서 투자를 해야만 합니다. 이제는 민간에서도 원양 컨테이너 정기선만큼은 내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오너십이라는 것, 소유권 의식에서 이제 벗어나야 합니다. 국가에서 고속도로를 만든다는데 소유권이 어디 있습니까? 공공성이지. 공공의 개념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아니면 코스트 경쟁력이 있는 중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말 것입니다.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무역이 되지 않으면 국가경제는 파탄이 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검토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종규 회장은 계속해서 정기선사의 통합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만이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주장을 했다. 기자는 앞서 박종규 회장이 일부 설명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면 부정기선의 경우는 그대로 내버려 둬도 좋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자는 현재 부정기 외항선사들의 수가 180여개사에 달하고 이들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이들에게도 정부지원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벌크선은 우리나라 경제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주로 원자재의 수입이니까 바게닝 파워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포스코나 한전에는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이것이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중소기업이나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얼마든지 외국배를 씀으로서 더 경비 절약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역과 수출은 셀러의 입장이다 보니 거기에 원가 절감을 해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산업이 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원양 정기선사 만큼은 살려야 한다는 것이고, 정부가 새로운 생각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벌크선사의 경우 선사 수만을 가지고 얘기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해운 자유화 원칙을 받아들여 운송사업면허를 등록제로 바꿨기 때문에 아무나 등록할 수 있어서 회사 수가 많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숫자가 많다고 해서 억지로 줄인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를 않습니다. 왜냐 하면 해운은 국제적인 비즈니스이니까 우리나라만 숫자를 줄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전세계의 벌크선사들의 선복량이 함께 줄어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선박의 공급이 많은데 수요는 그에 미치지 못하면 운임은 자연적으로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경쟁에서 밀리는 회사들은 자연히 도태되어 갈 것입니다. 이런 것을 무리하게 법인세를 많이 물린다든지 하여 생존이 어렵도록 몰아가게 되면 그 회사들은 외국으로 모두 떠나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벌크선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규제를 하거나 지원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원양 컨테이너정기선의 경우는 현재 일반적인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규모의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손을 써야 한다는 얘깁니다.”

박회장은 부정기선에 대한 정부의 규제나 지원은 필요가 없다는 점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이러한 박회장의 견해는 사실 지난 1980년대 중반에 일어났던 한국 외항선사들의 통폐합 조치인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 때의 정부 의도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박회장은 과거의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기자는 이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가 잘 못 된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 그 때도 사실 그냥 내버려 뒀어야 합니다. 저는 그 때 해운통폐합 조치는 오로지 대한선주와 범양상선을 살리기 위해서 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두 회사는 만약에 해운합리화 조치가 없었다면 망해서 없어졌을 것이니까, 그런 측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면도 있습니다. 당시 항만청은 대형선사 유도 정책을 썼고, 그 바람에 모두들 해외에서 배를 많이 들여오는 바람에 우리나라 선사들이 어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대형선사들에게 많은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자신들이 돈을 떼이게 생겼으니까  해운산업 합리화라는 구실로 선사들간에 통폐합을 유도하게 된 것입니다. 선사간에 통폐합을 하고 부실한 선사의 배에 딸린 부채는 일정 기간 유예를 해 줄테니 부실회사를 인수하는 우량회사가 갚아라 하는 것입니다. 장부가 그대로 선박을 통합된 회사에 인수 시키니 은행으로서는 손해 보는 것이 없었습니다. 망하는 회사가 있으면 그 배들은 공매 처분이 될 것이고 그리되면 은행은 손해를 보겠지만, 그 배는 다른 선사가 싸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해운산업이 활성화가 될텐데, 부실한 선박을 모두 우량한 회사들이 인수하게 했으니, 이 정책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맹기 회장도 처음에 이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에 강하게 반발했던 것입니다.”

답변을 마친 박 회장은 기자의 질문을 예견한 듯 화제를 KSS해운 경영에 대한 얘기로 바꾸었다. KSS해운이 너무 잘 되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실상이 좀 과장된 면이 있다는 말부터 꺼내들었다.

“'해운불황이라고 하는데 왜 KSS해운은 괜찮은가?' 하는 질문들을 많이 하는데, 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회사는 한마디로 해운회사가 아닙니다. 소위 석유화학, 가스산업의 일부이자, 파이프라인입니다. 그러니까 견디는 것입니다. 해운회사가 아닙니다. 한참 트램퍼가 좋을 때 우리는 전혀 성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해운이 좋을 때 우리는 전혀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먹고 살수는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먹고 사는 정도로는 가고 있습니다. 적자는 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배를 하주에게 T/C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출액은 확 줄어들고 이익이 조금 나는데 이익률이 엄청난 것처럼 보입니다. 실상 이익률은 4%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상파이프라인이니까 장기계약하지 않고 배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장기계약을 가지고 배를 지으니까 리스크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존 전략입니다.”

박종규 회장은 해운호황기에 부정기선사들이 포스코나 한전의 장기운송계약을 일부 기피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을 상기 시키며, 해운에 있어서 하주들의 수송계약을 따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과거 대한해운공사 시절 조선과장을 했던 경험들을 털어놓으며 선박의 신조나 매입에 신중할 것을 주문했다.

“선박은 선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번 건조하면 20년 넘게 써야하기 때문에 신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내가 옛날부터 강조한 것은 5년에서 10년 사이의 해운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측하고 배를 짓도록 한다는 원칙입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앞으로 5~10년 사이에 해운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측해서 거기에 맞는 배를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운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장기투자입니다. 그래서 나무 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식목을 해도 한 10년을 기달려야 나무를 팔아먹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해운도 10년 주기로 결산을 해야 합니다. 사실 1년짜리 결산은 해운업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1년짜리로 보니까 여기서 자꾸 실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해운업계에 대한 내 충고는 해운을 단기로 보지 말고 장기적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박종규 회장은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이기도 하지만 대한해운공사 시절부터 ‘우리 사주 운동’을 하는 등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몸소 실천해 왔고, 실제로도 책임경영제도를 정착시켰다. 이것이 KSS해운을 오늘날처럼 성공적인 회사로 이끈 원동력 중의 하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지분율 약 25%)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위암 말기 판정으로 정말로 생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자 오히려 불현듯 생을 얻었다는 우리의 원로해운인은 달관한 듯 나직이 말했다.

“난 주식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니니까. 더구나 대주주이기 때문에 주식을 팔 수도 없습니다. 팔수도 없는 주식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지요. 저는 주식 대부분을 앞으로 회사에 넘길 생각입니다. 그래야 종업원이 자기 회사처럼 열심히 일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 회사가 오래 갈 것이고요.”


<박종규(朴鐘圭) 회장 약력>

 △1935년생 △서울고 졸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대한해운공사 조선과장 △KSS해운 사장 △경실련 중앙위원회 의장 △한국담배인삼공사 이사 △행정개혁시민연합회 공동대표 △KSS해운 고문(현) △바른경제동인회 회장(현) △해운의 날 은탑산업훈장(1992) △일가상 산업부문 수상(1994) △좋은 한국인상 수상(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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