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학교 법대교수(선장, 법학박사)

▲ 김인현 교수
해양안전심판원(이하 해심)은 해양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고의 원인을 조사해 심판으로서 그 원인을 확정하는 기능을 하는 국가기관이다. 해심은 나아가 해양사고를 과실로 야기한 해기사면허 소지자를 징계하는 기능도 한다. 해심의 징계재결에 의해 해기사와 도선사들은 업무의 정지를 당하게 된다. 해심에서 제공하는 선박충돌 사고 등에서 원인제공비율은 민사소송에서 과실비율에 활용되기도 한다.

해양사고의 원인은 복잡하고 당사자들에게는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형사소송의 절차를 모방해 조사관이 원고, 해양사고 관련자가 피고가 되어 심판정에서 변론을 거쳐서 재결로서 사고원인을 확정하게 된다. 해심법은 해양사고 관련자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지방해심→중앙해심을 거친 다음, 다시 대전고등법원에서 취소소송을 제기해 해심의 재결을 한번 더 다툴 기회를 해양사고 관련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해심의 심판관과 조사관은 해기적 소양뿐만 아니라 법적 소양도 갖추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부분의 심판관과 조사관은 선장 출신이거나 해기사로서 혹은 해양수산 공무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해기경험은 충분하다고 인정돼 왔다. 그러나 법관 자격을 가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법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해심내부나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해심의 심판관·조사관 25명이 이번 고려대학교 로스쿨에서 30시간의 교육을 이수하게 됐다. 제1차 교육은 11월 9일과 13일 사이에, 2차 교육은 11월 23일과 27일 사이에 고려대학교 CJ 법학관에서 있었다. 심판관·조사관 25명은 법학개론, 민법, 형사소송법, 행정법, 민사소송법, 해상법, 해상보험법, 해사법규와 해상교통법 과목에 대해 우리나라 최고의 강사들로부터 수업을 받았다. 그동안 궁금했던 일반 법리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해소하고 수료증을 받고 돌아가는 그들의 얼굴에서 만족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해심의 교육에 몇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첫째, 준사법기관으로서 해심원의 기능을 다하기 위한 기초적 법적소양을 해심의 심판관·조사관이 갖추게 됐다는 점이다. 법적 소양이 이번 7일간의 교육으로 모두 달성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해심이 예산을 마련해 이런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게 된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됐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해심 재결의 신뢰도를 한층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해심이라는 특수한 분야의 법률전문교육이 가능한 체제가 드디어 갖추어졌다는 것이다. 해심의 심판관·조사관이 알아야 할 법적 소양은 단순한 법학 내용이 아니다. 해심의 업무와 관련된 교육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번 고려대 로스쿨은 실무의 변호사와 자체 재판연구관 출신 교수를 강사로 모셔와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됐다.

셋째, 해심에서 결정된 사실 관계는 손해배상을 위한 민사소송과 형벌을 위한 형사소송에서도 그대로 인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 교육을 통해 해심의 심판관·조사관들은 민사소송 및 형사소송과 해양안전심판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넷째, 해심에서 필요한 법적 소양은 심판관과 조사관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해심에서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심판변론인들도 마찬가지로 법적 소양이 필요하다. 이러한 심판변론인 중에서 변호사가 아닌 일반 해기사출신들에게도 동일한 정도의 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역으로 해심에서 초빙한 3명의 법조인 심판관에 대한 해기 및 승선 교육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해심원은 그간 심판관과 조사관의 업무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교육을 자체적으로 실시해왔지만 미흡한 점이 있었다. 올해 초 지희진 원장이 취임하면서 심판관·조사관의 업무능력배양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고려대와 산학협정을 체결하면서 해심 심판관과 조사관의 법학교육을 일반 법과대학에서 처음으로 실시하게 됐다.

이러한 교육이 법제화되고 정례화된다면 우리나라 해심의 전문성이 더 높아질 것이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가기관이 될 것이다. 우리 학계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의 설치와 운영을 환영하면서 이에 대한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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