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확보 통한 해운업 새판짜기 제안>

우리나라 조선소들이 수주물량이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조선 빅3의 지난달 수주량이 ‘제로’라고 하니 ‘수주절벽’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해운시황이 최악의 장기 침체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니 조선회사인들 불황의 한파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대형조선소들은 잘못된 해양프랜트 수주로 인해 수조원대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어서 이 겨울이 嚴冬雪寒을 넘어 氷河期로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 철강업계도 세계철강업계를 덮친 차이나쇼크에 그야말로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포스코 조차 지난해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고, 신용등급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당했다.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여타 철강회사들도 감원과 구조조정으로 위기상황을 타개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해운산업의 연관 산업이 이렇게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은 해운업계에 결코 좋은 일이 될 수가 없다. 장기 불황에 등골이 휘어있는 해운업계에 대해 좌우에서 더 압박을 가하는 꼴이니, 이제는 정말 해운업계가 옴치고 뛸 수 있는 여유마저 없는 절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선박을 한꺼번에 처분하지 않는 한 현재의 해운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뾰족한 수라는 것은 없다. 꽁꽁 얼어붙은 빙하를 순식간에 녹일만한 뜨거운 태양이 갑자기 떠오를 리 없기 때문이다. 해운시황이 상승무드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선박의 공급과 수요가 밸런스를 맞춰야 하나 需給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복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해상물동량 증가율은 마이너스로 가고 있으니 운임은 계속 곤두박질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드라이 벌크시황은 현재 BDI 310이라는 말도 안되는 수치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사상 최저’라는 말로도 부족할만큼 나쁜 상황이다. 우리 주변에 있던 중소형 벌크선사들이 소리 소문 없이 폐업을 하고, 간판을 내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지금 이 순간이 해운업에 있어서는 찬스임이 분명하다. 요즈음처럼 船價가 쌀 때가 없었고 전문인력들이 갈 곳이 없어 헤매는 때도 없었다. 최근의 업계 얘기로는 중고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가격이 600만 달러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수년전 1700만 달러에 이 케이프선박을 구매했던 선사가 은행의 LTV 상환요청 때문에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금 600만 달러의 여유자금이 있는 선사는 곧바로 선박을 매입해 저선가의 메리트를 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대부분의 외항선사들은 7년 이상 이어온 장기 불황 때문에 선박을 확보할 자금을 따로 갖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또한 설사 자금이 있다고 해도 요즈음 같은 엄청난 불황기에는 수입이 보장이 안 되는 선박을 구매해 영업에 나서는 것은 상당히 꺼려질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선박을 확보해 향후 시황 개선에 대비하라고 하는 것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얘기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선가가 낮을 때 선박을 확보하지 않고 반대로 선박을 처분해서는 해운업을 영속적으로 끌고 나갈 수가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우리 외항선사들의 문제점은 선가가 비쌀 때 사서, 선가가 쌀 때 파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악순환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상당 부분 금융기관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금융기관들의 생리가 해운 시황이 좋을 때는 배를 사라고 부추기다가 시황이 나빠지면 배를 팔지 않을 수 없도록 자금 회수에 혈안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우리 금융기관들이 선박금융에 대한 전문적인 실력을 쌓아서 불황기에 투자해 호황기를 만나 이익을 향유하고, 호황기에는 오히려 투자를 줄여서 불황기에 손해를 보지 않는 노하우를 터득하는 길 밖에는 없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업계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선가가 쌀 때 선박을 팔고 비쌀 때 사들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는 누구보다도 먼저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실적 위주의 경영을 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선박금융을 융통성 있게 운영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선박금융이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지도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해양수산부는 기획재정부의 협조를 얻어 현재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도 선박금융에 투자하도록 금융기관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선박 신조자금으로 정부가 12억 달러를 조성해 해운업계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해당선사들이 실기하지 않고 선박을 건조하도록 빨리 자금이 지원이 돼야만 한다. 이번에는 대형 컨테이너선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이후에는 다양한 선종의 신조선 발주와 중고선 매입에도 자금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금융기관들의 협조뿐만 아니라 조선회사, 철강회사, 대형하주 등의 협력을 얻는 일도, 쌀 때 팔고 비쌀 때 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조선사들은 불황기에 스스로 선박을 건조해 톤이지 프로바이더로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때 정부의 보증이나 대형하주의 COA가 함께 가미가 되어 신조선을 확보하게 한다면 해운업체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해운업과 관련 산업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소와 대형하주들이 직접 국적선사에 출자해 전혀 다른 모습의 외항해운업체를 설립함으로써 해운업계의 재편을 유도하는 방법도 검토해 봄직 하다. 향후 우리 외항해운업계가 관련 산업과 연계해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한편, 선박(선대)을 중심으로 한 ‘업계 재편’, 즉 ‘새판 짜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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