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목포해양대학교 교수

<matelot : 선원, 마도로스, 외항선원>

영어에서는 그리 널리 사용되지 않은 낱말로 SOED에는 matelote가 등재돼 있는데 “프랑스어의 sailor를 가리키는 matelot에서 유래했으며 포도주, 양파, 버섯으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생선 요리”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에 대해 Collins English Dictionary에는 ‘해사용어로 sailor’라고만 간략하게 풀이되어 있다. 1867년에 출간된 Smyth의 The Sailor’s Word Book에서도 matelot은 찾아볼 수 없다. matelot의 어원은 게르만어에서 유래됐는데, 독일어의 Matrose, 네덜란드어의 matroos, 스웨덴어와 덴마크어의 matros, 프랑스어의 matelot 등으로 서유럽권 언어에 널리 채택됐다.

오늘날 ‘선원’, ‘외항선원’을 뜻하는 의미의 matelot은 네덜란드인들의 해양활동과 더불어 일본에 전해지고, 그것이 우리말에도 유입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네덜란드어 matroos는 중세 네덜란드어 mattenoot에서 유래됐다.

• matte = 독일어 maat와 영어 mate와 같은 계열로 ‘식사를 같이하는 동료’
• noot = 독일어 Genoss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함께 하는 동료’

이를 보면 mattenoot은 ‘식사를 같이하는 동료’라는 뜻이 두 가지가 결합된 말임을 알 수 있는데, mattenoot→matteroot→matteroos→ matroos으로 변화했다. 네덜란드인들이 나가사끼의 데지마(出島)를 중심으로 일본인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전해졌다. 당시 일본인들은 matroos가 マタロス로 들렸던 것 같다. 1793년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8) 라는 시인이 쓴 시에 “マタロスが 故鄕を 泣く 明かたに”(마타로스가 울면서 고향을 털어 놓는다)라는 시귀가 있다. 그러나 후대에 マドロス로 정착됐다.

마도로스가 우리말에 유입된 것은 일제 강점기였다. 1929년 4월 17일자 동아일보에 ‘三 당수의 인물’이라는 기사에서 영국 보수당의 뽈드윈 당수를 소개하면서 “마도로스 파이프는 늘 빙글빙글 웃으면서 각료의 음모를 듯고, 그 부조리를 담베 연기와 함께 소멸시키는 것은 신뢰할만한 특질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1932년 7월 18일자 동아일보에도 개성의 푸로레타리아극단 대중극장의 소식을 전하면서 “민병휘 작 마도로스와 웨트레스” 극본이 선정됐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신문 기사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1930년대 선원으로서 마도로스와 마도로스 파이프가 거의 동시에 한반도에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직후까지도 하나의 직업군으로서 선원을 마도로스라고 지칭하는 용례보다는 마도로스 파이프라는 용례가 훨씬 많이 쓰였다. 1947~50년 사이에는 ‘마도로스’가 곧 ‘마도로스 파이프’를 의미하기도 했다.

▲ 영화 <마도로스 박> 포스터(1964)
마도로스란 말이 인구에 널리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해외 송출선에 우리나라 선원들이 승선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의 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선원이 해외 선주의 선박에 승선한 것은 1960년 6월 그리스선적의 Lamylefs 호가 처음이었고 1964년부터 선원의 해외송출이 본격화됐다.

초창기 해외송출은 통신장과 같은 일부 직급이나 기존 외국 선원과의 혼승이 보통이었기 때문에 선내에서 마도로스란 말이 일반적으로 널리 쓰일 여건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중후반 마도로스를 소재로 한 영화와 가요들이 속속 제작됐는데 마도로스란 말이 일반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들 영화와 가요 등을 통해서일 것으로 보인다. 1964년에 개봉한 박노식 주연의 <마도로스 박>이 마도로스를 소재로 한 최초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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