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양창호 교수

▲ 인천대 양창호 교수
지난 주 KBS 라디오 ‘공감토론’ 프로그램에서 '조선ㆍ해운업 위기, 활로모색 방안은?' 이라는 주제의 토론에 출연했었다. 이 자리에서 수출을 위한 조선업, 그리고 조선 수출을 위한 금융기관의 조선업 지원이라는 현 시스템에서 자국 해운산업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취지의 토론을 했다. 그 취지를 본란에서 다시 제기해 본다.

2년 전 만해도 유가가 배럴당 80~100달러대가 깨지고 30달러대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경제학자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유가의 급락은 예상치 못한 리스크였다. 고유가 시절에 해양플랜트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기술력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LNG선, VLCC, 초대형 컨테이너선 같은 선박을 수주하고, 특히 한척에 조 단위를 호가하는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loating Production Storage Off-loading vessel) 같은 해양 플랜트를 주로 건조했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 조선소들은 우리의 이런 모습에 무척이나 부러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맞닥뜨리고 있지만, 해양플랜트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크게 바뀐 것 같다. 호황 시 조선업을 대표하던 미래 먹거리 품목이었는데, 저유가로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예상치 못한 환경변화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당당한 모습이었으면 한다. 피해를 최소화 시키면서 이 기회에 핵심부품 및 설비의 국산화를 촉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상선 건조분야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2015년 중국의 조선수주가 46%까지 줄어들었을 때에도 우리나라 조선소의 신조선 수주는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유조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두 선종을 우리나라 조선업체가 대부분 수주했기 때문이었는데, 6개월 이상 빠른 납기를 제안하면서 주로 유럽 선주로부터 신조발주를 수주한 것이다. 여전히 상선 건조분야에서는 국내 조선업계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은 영국이나 일본의 조선산업 발전과 다른 양상으로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낮은 인건비와 대규모의 효율적인 시설로 출발하면서 조선산업을 처음부터 대형선박에 맞추고 수출산업으로 비즈니스를 펼친 최초의 국가였다. 이후 중국이 우리나라와 같은 모델로 조선산업을 육성해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조선소를 짓고 첫 선박 명명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현대중공업 본관 앞에 ‘조선입국(造船立國)’이라는 휘호를 남겼다. 우리도 선박을 만들어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산업으로 발전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후 세계 1위의 조선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간산업이 됐다.

조선업은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산업이다. 많은 조선기자재 업체가 동반해서 성장하고 철강산업의 주요 수요처가 되며, 또한 자국 해운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해군 국방력 증강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관련 산업 및 중소기업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큰 동력이 되는 산업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이나 일본은 해운산업을 국가의 중점 육성산업으로 키우면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선산업을 육성해 왔다. 영국이 세계 해운업을 지배했던 1890년대 당시 전세계 선박의 90% 이상을 생산했고, 일본도 선대 시장점유율을 1948년 1%에서 1984년 10%까지 증가시키면서 자국 조선업이 전 세계 선박의 50%를 건조해 뒷받침을 한 것이다. 일본의 조선산업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아직 해운산업을 지지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2010~2014년을 기준으로 할 때 전 세계 신조선 준공량 4억 3138만 톤(GT) 중 1억 4246만 톤(GT)을 준공해 33%를 차지해 세계 1위를 지켰다. 중국은 같은 기간 동안 1억 3088만 톤(GT)을 준공해 30.3%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우리가 건조한 선박 중 우리나라 국내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척수로는 6.6%, 톤(GT)수로는 5.4%에 그치고 있다. 당초 조선입국을 지향할 때부터 수출산업으로 육성했기 때문에 그 목적은 달성하고 있지만, 자국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한 선박건조 실적은 매우 미흡한 것이다.

중국은 우리처럼 전 세계 선박 수출시장을 겨냥해 조선산업을 육성했지만, 정부가 나서 자국 해운산업과 자국 조선산업의 연계 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해운대국이었던 영국이나 일본, 그리고 우리의 경쟁국인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전 세계 해운기업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하는 수출산업일 뿐, 자국 해운산업을 연계 발전시킨다는 어떠한 정책적 고려가 없는 것이 아닐까?

수출선 위주의 선박건조에 집중하다보니 조선산업의 일감확보를 위한 조선소 신용을 제공하는 국내은행의 여신도 고스란히 우리선사와 경쟁을 하는 외국 선사에게만 돌아가고, 정작 우리나라 해운업체는 2만teu급 같은 초대형 최신예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미 국내 금융기관들은 조선소에 지원하는 금융이 세계 10대 선박금융규모까지 커졌지만, 조선업에서는 국내 금융기관들로부터 정책금융 지원을 더욱 확대해 달라며 여신한도에서 선수금환급보증(RG)의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우리나라 해운선사를 위한 선박금융을 확대하거나 정책금융을 시행한다는 정책은 없다.

조선업, 즉 선박해양구조물 및 부품의 2014년 기준 수출액은 399억 달러로 총 수출액의 7%를 차지해 반도체, 석유제품, 자동차 산업에 이은 4위를 차지하는 산업이다. 그러나 해운산업 역시 이 4대 산업과 철강업과 함께 6대 외화가득산업이다. 2014년 해운업의 외화가득액은 346억 달러로 399억 달러의 조선업과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 산업이다.

영국과 일본 모두 자국 해운산업이 성장을 멈추었을 때 조선산업도 그 경쟁력을 잃어버린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우리 조선산업도 자국 해운업의 선대 고도화,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산업발전의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도 해운산업의 경쟁력도 키우고 조선업의 물량도 확보시키는 해운-조선-금융을 연계시키는 정책마인드를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가 그 칸막이를 없애고 선박금융업도, 조선업도, 해운업도 어려운 상황에서 상생할 수 있는 정책연계를 만들어 갈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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