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클레이튼 IHS Maritime and Trade 수석 애널리스트

▲ 리차드 클레이튼 애널리스트
중국 경제의 구조조정은 컨테이너선 부문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주변국 경제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시아-유럽항로와 아시아-북미항로의 운송수요는 1년 넘게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각 선사의 연말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선사들은 1만 2500teu급 이상 초대형선박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 IHS Maritime & Trade에 따르면 2015년 말까지 1만 8000teu급 이상 메가 컨테이너선 33척이 인도됐으며, 이 중 20척이 머스크라인에, 나머지는 MSC, 차이나쉬핑, UASC 등에 인도됐다. 올해 인도 예정된 메가 컨테이너선은 총 12척이며 2017년에 25척, 2018년에 23척이 각각 인도될 예정이다. 선사별로 보면 MSC가 15척, COSCO/CSCL이 17척, 에버그린이 11척, OOCL이 6척 등이며 UASC, CMA CGM, MOL 등이 메카 컨선을 발주해 건조중이다.

최근 3개월간 몇 건의 인도가 이루어졌고, 1~2건의 신규 발주가 있었으며, 미인도 건도 일부 발생했다. 하지만 모든 신규 선박은 과잉 공급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선박, 운항업자, 선주의 고민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대상선이나 한진해운의 경우 초대형선 신조 발주가 없다. 이들은 생존이라는 더 큰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주요 원양정기선사 중 아마 가장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있으며, 고객의 신뢰를 잃을 위험에 직면해 있다.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현대상선은 현재 선주와 용선료 재협상뿐만 아니라 위약금 없이 조기 반선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정부와 채권단을 대표해 이 같은 자구책이 성공할 경우, 현대상선의 채무 재조정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은 서구 경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현대상선은 아시아 및 유럽의 컨테이너선 운항업자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사기업이다. 국가의 전략적 자산이 아니며, 회사가 부도난다고 해서 한국의 무역 활로가 막히는 것도 아니다. 현대상선이 머스크, MSC, CMA CGM 등 규모가 더 크고 자금 사정이 나은 선사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부채가 발생한 것이며, 이 부채 압박을 견디기 어려운 상황까지 온 것이다.

매출은 벌써 여러 분기째 감소하고 있고, 적자를 만회할 수 있을 만큼 영업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3월 18일부로 현대상선 이사회에서 물러날 예정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 회장의 모친 김문희 씨의 300억 원 규모의 사재 출연은 단순한 제스처로 여겨질 정도이다.

필자는 이번 사태가 현대상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 재계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본다. 그렇게 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우선 한진해운과의 합병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양측에서 이미 합병설을 부인한 바 있으며,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양사의 경쟁 관계를 감안할 때, 정부에서도 강제합병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 국영기업인 COSCO와 차이나쉬핑의 합병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졌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또 한국수출입은행은 선박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선박담보비율(loan-to-value) 유지의무 적용을 유예함으로써 최대 1100억 원의 유동성을 간접 지원할 계획이다. 이러한 조치는 그 자체로서 충분하지 않으며, 정부 지원이 얼마나 미흡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조선사가 메가 컨테이너선 신조를 중단할 경우,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대그룹과 한진그룹의 계열사를 포함한 조선사들 역시 선박 건조를 위해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그룹 계열사라도 한국의 재벌구조는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 편에 선다.

현대상선은 원하는 수준만큼은 아니더라도 용선료 재협상에 성공할 수도 있고,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의 채무 재조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정부는 의례적인 언사를 거듭할 것이다. 어찌됐든 현대상선이 당분간 매우 힘든 여정을 이어나가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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