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태극기와 유니언잭

이세돌과 알파고가 마주 앉았다. 바로 그 옆에 대한민국의 태극기와 대영제국의 유니언잭이 나란히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유니언잭과 알파고가 대한민국을 찾아왔다. 북은 핵무기로 불장난을 하고, 이에 맞서 남은 한미연합작전으로 한반도가 세계의 화약고가 되었음에도… 하기야, 올림픽과 월드컵 땐들 한반도가 평화로웠던가! 시도 때도 없이 도발한다. 제 발등을 찍는 격이리라.

월드컵과 올림픽은 저리 가란 듯 태극기와 유니언잭과의 일주일간의 대결은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다. 구글이 동영상을 전 세계로 생중계하였으니…

알파고의 아버지 허사비스는 197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하여, 유니언잭은 그의 배경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컴퓨터게임에 몰입하다가 케임브리지대학 컴퓨터과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마인드 스포츠 올림피아드’에 5년 연속 챔피언을 차지한 천재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런던대학에서 인지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위논문을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세계 10대 과학성과로 선정했다.

1997년 5월 런던시장과 런던항만청장이 공동주관한 국제항만협회(IAPH)가 런던에서 개최됐다. 회의 일정에는 유서 깊은 런던 명승지 탐방이 있었다. 그 명승지 중, 위대한 국왕과 왕비들을 모신 햄프톤 코드 궁전이 인상적이었다. 랭커스터왕가와 요크왕가가 왕위계승권을 놓고 30년 장미전쟁 끝에 헨리7세가 1485년에 즉위함으로써 튜더(Tudor)왕조가 시작됐다.

헨리7세를 이은 헨리8세는 로마교황청과 결별하고 영국국교의 수장이 됐다. 정치와 종교를 한 손에 거머쥔 절대군주 헨리8세는 해양개척정책을 거침없이 펼쳤다. 선박을 대대적으로 건조했다. 상시함대가 해적이나 적국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상선을 호위했다. 헨리8세가 창설한 상시함대 제도를 후세 사가들은 해군의 효시라 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막강한 해양세력에 눈치를 봐야했던 영국이 퀸 에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했다. 영국 군함과 상선이 오대양 육대주를 종횡무진으로 질주했다. Sea Power가 세계를 장악했다. 그 후, 350년간 햄프톤 코드 궁전이 국제정치 무대가 됐다.

유럽을 석권했던 영웅 나폴레옹을 영국 군함이 압송해 대서양의 고도 세인트헬레나에 유폐시켰다. 그곳에서 영웅은 일생을 마감했다. 유럽을 전쟁의 광풍으로 몰아넣었던 나치독재자 히틀러가 베를린 함락직전 자살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하는 영국정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영국 식민지가 대부분 독립됐다. 해가 지지 않는 유니언잭에 황혼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주고 기축통화 파운드마저 미국 달러로 바뀌었다.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를 대영제국인들 피해 갈 수 있었으랴.

그러함에도 런던은 여전히 세계 금융과 보험, 그리고 해운시장의 중심이다. 하여, 런던시의 GDP가 노르웨이나 덴마크의 국가 GDP보다 높단다. 영국이 EU의 일원이지만 유로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파운드를 쓰고 있다. 노대국의 자존심이 돋보인다.

한국과 영국 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다.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1885년 4월 16일 군함 6척과 상선 2척으로 거문도를 점령했다. 거문도를 'Port of Hamilton'라 명명하고 유니언잭을 게양했다. 이를 두고 ‘거문도 사건’이라 한다.

그러나 이번엔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사나이’ 허사비스가 유니언잭 깃발을 들고 대한민국을 정중하게 방문했다. 서울 도심 ‘Four Seasons호텔’에서 세계 제일의 천재기사 이세돌과의 수담을 하기 위해서다. 음악 애호가들도 이태리 작곡가 비발디의 사계절을 연상하며 대국을 진지하게 지켜봤다.

인간과 인공지능과의 대결에 세계가 흥분했다. 승패에 관계없이.

대한민국과 이세돌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줄이야! 이를 태극기와 유니언잭이 대결한 ‘서울 알파고 사건’이라 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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