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난 지금도 북극항해를 꿈꾼다

지난 2월 24일 老船長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가족, 친척, 친지, 해운계 인사 320명이 모였다. 대성황이었다. 연단에 『난 지금도 북극항해를 꿈꾼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책제목이다. 거기에, 바다에 대한 동경, 동해호에 대한 애착, 인생항해에 대한 회한들이 녹아있다. 노령의 애잔한 낭만일까?

나는 “평소 존경하는 배순태 선장님께 ‘한국의 마젤란’이란 별명을 붙여드리고 십습니다”라고 건배사를 했다.

포르투갈인 마젤란은 500년 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분께서도 대한해운공사 동해호 선장으로 한국인 최초로 세계일주항해를 했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지구의 대양(大洋)을 횡단했다. 지구의 거리를 단축하는 파나마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다. 화물을 찾아 육대주 항구를 입출항 했다. ‘한국의 마젤란’이란 별명에 그 누가 토를 달랴?

동해호에서 내려 인천항 도선사가 됐다. 인천항은 조석 간만차가 10m이다. 물살이 세고 항로폭도 좁아 선박이 해상(海床)에 들어앉히기도 했다. 더구나 도크항이라 갑문통과에 위험이 따른다.

허나, 그분은 배를 모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 神의 경지에 이르렀다. 오래전 나는 칼럼에 ‘한국의 導船神 즉 Almighty Pilot’란 별명을 붙여드렸다.

5만 톤 양곡전용선이 만선으로 처음 인천항에 입항했다. 다른 도선사들은 갑문을 통과시킬 자신이 없었다. 그분께서 “내가 해보지”하며 나섰다. 선박이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밀리면 방충제(fender)가 날아가고 선박의 옆구리가 찢어진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갑문을 유유히 통과하여 양곡부두에 접안했다. 그 광경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이 감탄했다.

자동차운반 전용선이 처음 입항했다. 이때도 도선을 했다. 갑문으로 진입하는데 본선 선장이 벌벌 떨며 도선을 막았다. 개의치 않고 관문으로 진입했다. 좀 과장해서, 상갑판이 운동장보다 넓은데 갑문은 바늘구멍이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했다. 본선 선장이 경탄했다.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형 양곡선이 출항하다가 기관이 고장 났다. 본선 선원들과 대리점이 우왕좌왕했다. 항만이 마비되는 극한 상황이었다. 그분이 예인선 5척을 동원하라고 명했다. 본선 양현(兩舷) 선수와 선미에 각각 1척씩을 붙여 4척이 본선의 방향을 조정했다. 1척은 앞에서 본선을 끌었다. 본선과 예인선 6척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했다. 절묘하게 갑문을 빠져나갔다. 아슬아슬한 고난도 서커스 곡예를 보는 사람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10만톤 LNG 전용선이 한국 최초로 평택항에 입항했다. LNG가 폭발하면 반경 10킬로가 폐허가 된다고들 했다. 그분이 도선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을 답사하고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다. 항로가 정비되지 않아 어장과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다. 횡(橫)조류와 북서풍을 감안하며 장애물을 피해 지그재그로 항행했다. 기량과 경험을 총동원했다. 거대선박이 부두에 접안했다. 보는 사람들도 피를 말리는데 본인은 어떠했을까? 신의 경지였다. 그분의 도선은 영혼을 불어넣은 예술작품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연단에 올랐다. 1925년생 아흔둘 노령인데도 흐트러짐이 없다. 인생을 관조하는 답사를 했다. 당당했다. 유머로 하객을 웃겼다.

동해호 선장 5년은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했다. 대권항법으로 북태평양을 건널 때 알류산 열도를 끼고 항행했다. 알류산 너머에 북극해가 있다. 그때 북극항해가 꿈이 되었으리라. 북극해를 건너 대서양으로 가고파.

노르웨이 탐험가 난센은 그린란드를 횡단한 후, 1895년 북극 탐험을 위해 탐사선을 탔다. 탐사선이 표류되자 탈출했다. 덴마크인 요한센과 함께 에스키모인이 가죽을 입힌 카누 카이야크(kayak)와 개썰매를 타고 83°14′지점에 도달했다. 당시 인간이 갈 수 있는 최북단이었다. 지금은 지구 온난화로 북극해를 항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구가 많이도 변했다. 세상도…

풍파에 저려진 강인한 바다사나이,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를 모르는 사람은 야박하단다. 그렇질 않다. 후진 양성을 위해 70억원 상당의 토지를 한국해양대학교에 선뜻 기부했다. 학교와 복지시설에 도움을 주었다.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따뜻한 인간상이다.

동해호 선장 시절을 잊지 못해 지금도 북극항해를 꿈꾸고 있다. 하여, 책제목을 『난 지금도 북극항해를 꿈꾼다』로 정했을까? 아직도 마도로스의 낭만이 꿈틀거린다. 출판기념회가 배순태 선장의 인생대미를 멋지게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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