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양창호 교수

▲ 인천대 양창호 교수
1년 반 전만해도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유가가 올 초 20달러대까지 추락했다. 이러한 유가 급락을 예상한 경제학자는 없었다. 그만큼 유가급락은 예상치 못한 커다란 사건이고, 산업에 따라서는 수익성 호전의 기회가 되기도 하고, 혹은 리스크가 되기도 했다. 3월 중순 들어 처음으로 4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공급과잉, 수요부족’이라는 상태가 단기간 내에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당분간 저유가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수요가 침체하고 유가가 하락하면 산유국은 공급을 줄이는 것이 상투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OPEC(석유수출국기구)는 감산에 나서지 않고 있다. 미국도 셰일오일 증산 중이다. 왜 그럴까? 미국이 셰일오일 증산을 계속하는 것은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가려는 목적 외에도 러시아가 고통 받을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중동국가들이 원유생산 감산에 나서지 않는 것은 미국의 셰일오일에 시장을 뺏기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여기에 유럽​​, 일본, 중국의 경기 둔화에 따라 원유 수요가 침체하고 있다. 수요가 줄어들지만 공급은 정치적, 시장경쟁 요인까지 얽혀 있어, 공급과잉에 의한 저유가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저유가 시대는 향후 2~3년 정도 지속되고, 배럴 당 80달러 선은 2020년 정도에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대부분의 외국 전망기관들도 유가는 서부텍사스 원유(WTI)와 브렌트유 기준으로 2016년에 배럴당 40달러, 2017년에는 45달러로 예상하고 있어, 당분간 60달러 이하의 저유가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가에 연동돼 있는 선박연료유(벙커유) 가격도 동반 하락하고 있어 해운회사는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유류비가 선박운항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해운업에서 고유가는 해운업 수익 개선의 큰 걸림돌이었다. 고유가, 선박공급 과잉 시절에는 경쟁이 심해 현실적으로 유류할증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선사들이 유가상승 부담을 떠안느라 적자가 불가피했다. 그러나 저유가 시대에는 선사들이 유가 부담을 떠안지는 않아도 되니 수익률이 개선될 수 있는 것이다.

벙커유 가격은 2014년 상반기까지 톤당 600달러 대였지만, 2014년 가을 이후 저유가를 배경으로 급락했다. 벙커유가가 톤당 100달러대까지 하락하면서 선박운항비가 크게 절감돼 영업수지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컨테이너선, 대형 벌크선 등은 하루 50~80톤의 벙커를 소비하기 때문에 벙커 가격의 변동은 해운 회사의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일본해사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대형 해운사들은 연간 400만~600만톤의 벙커를 소비한다고 한다. 톤당 10달러 하락 시 업체별로 연간 약 4000만 달러 이상씩 수익이 개선될 수 있는 것이다.

선박 연료용 벙커C유 가격은 3월 중 싱가포르 380CST 기준으로 톤당 170~180달러를 보이고 있다. 벙커유가가 톤당 600달러를 상회할 때 선비에서 차지하는 연료유가 비중은 70%에 달했지만, 톤당 170~180달러 수준에서는 25%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초대형 유조선(VLCC)을 기준으로 보면 하루 연료유 비용이 7만 5000달러였으나, 이제는 1만 8000달러 이하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벙커유가 하락은 환영할 일이지만 근본적으로 해운시황 하락과 맞물려 마냥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유가가 오를 때, 제품 가격은 대체로 상승하고 이는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유가가 하락하면 수요가 침체되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하고 화물 운송 수요가 감소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유가의 심각한 하락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글로벌 해상운송 수요에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특히 자원에 의존하던 러시아, 브라질,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은 신흥공업국과 개발도상국들의 수입수요 감퇴가 해상물동량 감퇴로 이어지고 있다.

해운업이 저유가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공급과잉이 일차적인 이유가 되고 있지만, 유가하락으로 나타나는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인한 해상물동량 감퇴가 이차적인 원인이다. 저유가로 운항비를 절감할 수 있는 여건은 됐지만 시장에서는 컨테이너선 운임과 건화물선 운임이 역사상 최저점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공급과잉 시장에서 유가 하락이 오히려 운임 하락세를 가속화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유가 기조로 세계 컨테이너선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유류비 절감효과가 줄어드는 것과 감속운항의 이점이 사라지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최근 Drewry사는 이 두 가지 영향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의 분석을 내놨다.

Drewry사의 분석에 의하면 4000teu에서 8000teu로 대형화할 경우 벙커유가가 톤당 600달러일 때는 수송단위비용이 17% 감소하지만, 벙커유가가 톤당 100달러일 경우는 수송단위비용 절감률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 구간 선박의 경우 대형화 이점이 유가하락으로 사라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8000teu에서 1만 4000teu로 대형화할 경우 벙커유가가 톤당 600달러일 때는 수송단위비용이 21% 감소하고 벙커유가가 톤당 100달러일 경우도 수송단위비용 절감률이 16%로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만 8000teu급 이상 초대형선의 경우 유가하락에 의한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감속운항의 이점도 사라지지만 실제로 감속운항에 나설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하고 있다. Drewry사에 따르면 벙커유가가 톤당 600달러일 경우 서비스 루프당 투입 척수를 줄이면 운항속도를 올려야 하므로 연료비가 크게 늘어 수송단위당 운항원가가 급격히 증가된다. 그러나 벙커가격이 톤당 100달러가 되면 서비스 루프당 운항척수를 줄여 운항속도를 올려도 연료비 부담이 적기 때문에 수송단위당 전체 운항원가는 오히려 낮아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 감속운항의 이점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감속운항으로 루프당 추가 선박으로 묶여 있던 선박들이 또 다른 운항서비스를 하게 되면 공급과잉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선사들이 당장 선박과잉을 초래할 감속운항을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잠재적인 선박 추가 공급여력이 생긴 만큼 당분간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발주 수요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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