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로스쿨 교수

▲ 고려대 김인현 교수
지난 3월 24일은 인천 하버파크호텔에서 의미있는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평생을 바다에 바친 바다의 사나이가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 주인공은 배순태 도선사다. 그는 진해고등상선학교를 졸업하고 선장으로 진급해 3000톤급 선박으로 1957년 우리나라 최초로 북태평양 항해를 성공해 미국에 도착했다. 그 후 그는 인천항의 도선사가 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도선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려운 도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국도선사협회를 창설했고 시험제 도선사 1호를 기록했다. 도선사를 정년퇴직한 후 예선업에 종사했다.

이날 기념회는 배순태 회장의 약력소개에 이어 배순태 회장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94세의 연세에도 후배 도선사들이 연말 연하장을 보내지 않는다고 유머를 보내는 여유를 보였다. 작은 배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권항법을 취해 태평양을 횡단, 1957년 미국 LA에 도착했을 때 교포로부터 열열한 환영을 받았다는 기억을 회상했다. 6.25 종전이 된지 얼마되지 않아 우리나라는 형편없이 어려운 상태에서 한국선박이 태평양을 횡단해 미국에 이르렀다고 하니 교포들이 어찌 감동하지 않았겠는가?

이어진 가족 대표 인사말에서 배순태 회장의 아들인 ㈜흥해 배동진 사장이 당시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시를 지어 낭독했다. 감명 깊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지만 모두 화해했다는 대목에서는 청중들 모두 박수를 보냈다.

필자가 배순태 회장을 알게 된 것은 해운신문에서 2010년경부터 그의 일대기가 연재되면서 부터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후 우리나라 해기사 양성제도, 해운에 대해 귀중한 내용을 많이 알게 되어서 참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진해고등상선 출신들의 초기 한국해운에 이바지한 바를 깊이 알게 되었다. 그 후 한국해양대학에서 진해고등상선 출신들을 모시고 명예해양대 졸업장을 드렸고, 한국해양대학의 역사를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겠다는 발표를 한 것을 보았다. 이즈음에 배순태 회장님께서 해양대학에 상당한 토지를 기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후 다시 동창회에서 이를 부정하게 됨으로써 진해고등상선학교는 한국해양대학의 전신이 아닌 것으로 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논란을 뒤로하고 배순태 회장을 자랑스런 선배님이라고 불러드렸다. 행사에서 배순태 회장으로부터 자서전을 받고 나의 저서인 해상법과 해상법연구III를 노란 책보에 싸서 드렸다. 책의 첫장에는 “선배님, 존경합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라고 적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해운에서 해기사의 역할은 지대했다. 일본의 상선대학을 나오신 분들이나 우리나라에서 고등상선학교를 졸업하신 엘리트들이 해방후 우리나라 해운의 초석을 닦은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 땅에 정규 4년제 대학교육이 시작된 것은 1945년부터이고 한국해양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졸업생들이 오늘날 한국해운에 큰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동경상선대학이나 고베상선대학을 졸업한 선각자들과 인천 혹은 진해고등상선학교를 졸업한 선각자들이 해방을 전후해 한국해운의 기틀을 닦기 위해 모진 어려움을 극복하고 큰 기여를 했다는 점도 잊지 말고 그분들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해야 한다.

엑스트라 선장으로 국무총리 서리를 지내신 신성모 학장, 개인재산을 출연해 해사문제연구소를 설립해 오늘까지 월간 해양한국이 한번의 결호도 없도록 해주신 동경상선대학 출신의 윤상송 박사, 진해고등상선 출신으로 기관사생활을 거친 다음 세계적인 육상, 해상 및 항공 운송의 대그룹을 만드신 조중훈 회장, 진해고등상선 출신으로 해군 참모총장을 지내신 박옥규 제독, 동경상선대학 출신으로 한국해양대학의 창립자인 이시영 박사 등 일일이 언급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많다. 대부분은 작고하시고 고인이 되셨다.

배순태 회장님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에 2시간 정도 참석하면서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해운의 초석을 닦기 위해 바다에서, 육지에서, 해군에서, 교직에서, 대한해운공사 육상근무를 하면서, 불철주야 최선을 다했던 해운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떠 올리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현재 우리나라 해운은 절체절명의 어려운 시점에 있다. 해운인들은 배순태 회장과 같은 훌륭한 해운선각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해양문화로서 확립한 도전과 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이 어려움을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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