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첫 강의

아들이 첫 강의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아버지께

드디어 미국에서 첫 강의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 11시 40분에 시작하여 1시간 20분간의 강의를 잘 치러냈습니다. 우선 40여명의 미국 학생들 앞에 서니 감개무량했습니다. 2년 만의 강단입니다. 서울대학 6동 강의실에서 마지막 강의를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2년 만에 컴백했습니다.

11시 40분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짜릿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냥개가 풀려나 산속으로 달려가듯 긴장과 흥분이었습니다. 강의에 앞서 준비한 유인물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강의실로 올라오느라 거칠어진 숨을 돌리는 것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똑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어이나 여기서는 영어입니다. 영어 강의가 저에게는 첫 경험이었습니다. 미국 학생들의 눈빛과 질문에서 풍겨나는 사고방식은 한국 학생들과는 분명 다릅니다. 그들은 바로 제가 영국에서 전공한 그들의 조상 존 로크의 눈빛과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들의 철학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강의 진행도 한국학생들과는 전혀 달라야 합니다. 한국학생들은 조용하나 미국학생들은 토론을 좋아합니다. 그들에게 한국식으로 강의했다가는 강의실을 다 나가 버립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강의실 문을 들어갈 때 미국 학생들이 저를 쳐다보았던 눈빛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마치 미지의 세계인을 보는 눈빛이었습니다. 내 말이 아닌 남의 말로 동양이 아닌 서양의 정교한 철학적 논변과 사고를 본토인들에게 강의한다는 게 힘듭니다. 그것은 자연과학이나 공학, 경영학, 경제학 교수들이 하는 강의와는 전혀 다릅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혼돈되고, 첫 강의 전날에 겪는 두려움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형언할 수 없습니다. 강의 중간 중간에 미국 여학생들이 저를 보고 씩 웃는 표정은 한국 여학생들이 저에게 자주 보냈던 모습입니다. 인종은 다르지만 생각은 똑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서양철학을 서양인들에게 첫 강의를 한 날, 2008년 9월 2일

아들 올림

아들에게 답신을 했다.

김교수에게

장하다! 대한민국의 내 아들이 존 로크의 후예들에게 존 로크 철학 첫 강의가 성공적이었다니! 커다란 감동이 밀려온다. 허나 이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겨우 들어섰다. 비 오고 눈 내리고 안개 낀 고속도로를 주행하려면 허다한 난관과 좌절이 있을 것이다. 강인한 끈기와 체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허나, 인간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최선을 다하고 그 한계 밖은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신앙이 있어야한다. 그래야만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

우리 가족 모두 너의 첫 강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의실을 나올 때 느낀 심정과 학생들의 반응을 알고 싶단다. 나 역시도.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2008년 9월 7일

아버지

그 답이 왔다

아버지께

이메일 잘 받았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은 토론을 잘 유도한다고 좋아들 합니다. 미국 교수라고 해서 다 적극적으로 참여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학생들이 저를 젊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젊은 학생들과 호흡을 잘 맞추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인 것 같습니다.

강의란 그날 컨디션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강의 마지막 10분쯤 되면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흐트러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하여, 한순간도 정신을 놓지 않고 끌어가는 것이 수업입니다.

이번 첫 주는 아주 길게 느낀 한 주였습니다.

2008년 9월 7일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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