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이달말 부도 예상”…STX조선, 27일 법정관리 신청

한때 세계 4위 조선사로 성장하며 조선업계 ‘빅4’로 군림했던 STX조선해양이 결국 27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무리한 해외투자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저가수주라는 악수를 거듭하던 STX조선해양은 법정관리로 사실상 문을 닫는 신세가 됐다.

25일 STX조선해양 처리방안에 대한 채권단 실무자회의를 개최한 산업은행은 5월말 부도가 예상되고, 자율협약 지속에 따른 명분과 실익이 없어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는 회의결과를 발표했다. 산업은행은 채권단 협의회에 자율협약 종료 안건을 올릴 계획이며, 채권단 75%(지분율)가 동의하면 자율협약이 종료된다. 채권단 자율협약 종료로 보호막이 없어진 STX조선해양은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길 밖에 없다.

조선업계에 있어 법정관리는 사실상 조선소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하며, 채권단 역시 RG콜에 따른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선택한 것은 STX조선해양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주물량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내년까지 7000억~1조2000억원의 자금이 더 필요한데, 현재 수주부진 상황을 고려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또한 해외 선주사가 손해배상 청구 관련 가압류 및 국내 집행을 추진함에 따라 공정 중단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5월말 도래하는 결제자금의 정상 결제가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불과 6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법정관리 가능성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며 회생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자율협약에 들어간지 38개월 만의 일이다.

산은 관계자는 “모든 채권자의 형평성 있는 채무재조정 뿐만 아니라 해외 선주사의 손해배상채권 등 우발채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회생절차를 통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회생절차를 통한 과감한 인적, 물적 구조조정이 있어야만 원가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최소한의 생존 여건 확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이달 말까지 협의회 논의를 거쳐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산은이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가 회생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조선업 특성상 법정관리에 따른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건조 중인 선박 52척에 대해 선주들의 RG콜이 예상된다. 올해 안으로 인도될 BP사의 탱커 8척과 BW사의 LR1탱커 6척은 정상적으로 건조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 외 선박들은 선주들의 RG콜 행사로 건조 중단이 예상된다. RG에 따른 손실만 1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 손실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STX조선해양이 협력업체에 미지급한 금액이 5000억대로 알려졌는데,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채무조정 대상에 포함돼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

STX조선해양 회생을 위해 RG를 포함해 6조원 가까운 자금을 지원한 채권단도 추가로 2조원 넘는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산은은 추가 손실 대부분을 산은과 수출입은행, 농협은행이 떠안을 것이며, 우리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손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TX조선해양이 결국 법정관리라는 극약처방을 받은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무리한 투자와 저가수주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2001년 대동조선 인수로 시작된 STX조선해양은 대형3사에 버금가는 대형 조선사로 성장하겠다는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협소한 부지로 대형선 건조가 어려운 진해조선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다롄에 대형 조선소를 건설했고, 덩치를 키우기 위해 노르웨이 아커야즈를 인수하며 STX유럽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과감한 투자는 해운ㆍ조선 초호황기가 계속될 것이란 장밋빛 전망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2008년 찾아온 금융위기는 전망이 크게 틀렸다는 것을 증명시켜 줬다. 5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가 수반된 해외 조선소 진출은 유동성 위기를 안겨줬다. STX다롄 조선기지 1단계 사업이 완료된 2008년 12월은 전 세계 금융위기 몸살을 앓기 시작한 시기였다. 2008년 7500억원에 달했던 영업이익은 2009년 300억원으로 급락했고, 영업현금흐름은 마이너스 1조6300억원을 기록하며 유동성 위기가 시작됐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자산매각을 비롯한 구조조정에 나설 상황이었지만, STX조선해양은 다른 선택을 했다. 시장질서를 교란시킨다는 맹렬한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무리한 수주영업에 나선 것이다. 유동성 위기를 선박수주에 따른 선수금 유입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계열사인 STX팬오션을 통한 자가발주로 위기를 전가하기도 했다. 대형3사가 금융위기 이후 해양플랜트 시장으로 고개를 돌리자 STX조선해양도 이를 쫓아갔다. 위기상황에서 수주한 드릴십은 STX조선해양에 더 큰 위기를 선사했다.

결국 2013년 채권단과 자율협약에 들어가며 심각한 위기상황을 실토했지만, 채권단이 손쓰기에는 많이 늦은 상황이었다. 6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이 투입됐고 혹독한 구조조정에 들어갔지만, STX조선해양은 지난해에도 2100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내며 실적개선에 성공하지 못했다. 자율협약 이후 LR탱커를 비롯한 중대형 탱커에 영업력을 집중하며 안정적인 수주실적을 냈지만, 수주마저 지난해 10월 이후로 끊긴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반응과 회생가능성을 높이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이뤄진 법정관리가 안타깝다는 반응으로 나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자율협약 이후 적자수주분에 대한 계약해지로 회생기반을 닦았지만, 생산공정이 회복되지 못하면서 건조지연에 따른 손실이 계속돼 왔다”면서 “채권단이 자금을 계속 지원해도 회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법정관리 신청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STX조선해양에 대한 여러 문제가 제기된 것은 사실이지만, 덩치를 줄여 중소조선소로 전환하겠다는 방향은 긍정적이었다”면서도 “STX다롄에 물린 보증문제와 2013년 계약해지에 따른 법정싸움을 해결하지 못한 것과 조선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것이 결국 STX조선해양을 법정관리로 가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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