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목포해양대학교 교수

<anchor : 닻>

그리스어 ᾰγκυρα(agkura)에 어원을 둔 낱말로 그리스어 ᾰγκυρα은 ‘굽은 팔’을 뜻하는 ᾰγκώυ(aghkon)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닻의 기본적인 모양새는 갈고리처럼 끝이 굽어있는 것이다. 라틴어의 ancora(錨)는 라틴어 ‘갈고리’를 뜻하는 uncus와 같은 계열의 낱말이고, 영어 anchor도 ‘낚시 바늘’이나 ‘각’을 뜻하는 angle과 같은 계열의 낱말이다.

그리스어 ᾰγκυρα가 라틴어 ancora가 되고 이것이 영어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h’가 삽입돼 anchor로 정착됐다. 영어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대서사시 『베어울프(Beowulf)』가 기록된 10세기 즈음까지는 아직 ‘h’가 삽입되지 않은 형태인 ‘ancre : oncre’ 형태로 사용됐다. 사와 센페이는 anchor가 “해사영어에 추가된 최초의 지중해 어휘”이며 독일어에서는 “Anker란 형태로 정착됐는데, 독일어에서는 이 낱말이 독일인들이 라틴어에서 차용한 거의 유일한 어휘”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토박이 말인 닻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한자어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닻이란 낱말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훈몽자회』(1527)에는 ‘닫’으로 기록돼 있다. 우리말 동사인 ‘닫다’나 ‘닿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닫다’는 ①문짝이나 서랍 등을 도로 제자리로 가게 해 막다 ②입을 다물다 ③하던 일을 그만 두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그 힘줌말이 ‘닫치다’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의미로 사용할 경우 ‘배가 떠나왔던 원래 그 자리로 들어가 멈추게 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닿다’는 ①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가까이 가 붙다 ②어떤 곳에 이르다 ③어떤 정도나 범위에 미치다 ④다른 것과 통해 맺어지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두 번째 의미로 사용할 경우 ‘배가 항구에 닿았다’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닿다’의 힘줌말이 ‘닿치다’인데 이 말에서 ‘닻’이란 명사가 나온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말의 닻은 모양새에서 어원이 유래한 라틴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과 달리 ‘배를 항구에 닿게 매어 두는 용법’에서 유래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은 저자의 추론이 맞다는 사실은 여러 어원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구에서 안옥규가 출판한 『어원사전』(1989)에는 “닻의 옛날 말은 닫 또는 닷이다. ⋅碇 : 닫 뎡(訓蒙字會) ⋅纜 : 닫줄 람(훈봉자회)⋅닷 드쟈 ᄇᆡ ᄯᅥ 나가니 이제 가면 언제 오리(청구영언). 닫은 ‘두 물체가 마주하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닿다’의 옛말인 ‘닫다’의 어근이 명사화된 것이다. 닫→닷→닻으로 변화됐다. 닻은 본래 ‘닿는 것’이란 뜻이다.”

백문식이 펴낸 『우리말 어원사전』(2014)에도 이와 유사하게 설명하고 있다. “16세기 표기는 닫이다. 닫>닷>닻. 닻은 ‘닿다’와 동근어로 어원적 의미는 닿는 것이다. 닿다(觸, 至)는 땅(< ᄯᅡᇂ)에 접사 ‘다’가 붙어 파생된 동사다. 물을 대다, 다다르다. 닥치다, 다그다(近), 다그치다, 다지다, 닿치다. 닿다(해지다)와 동원어다. 닿다(<다희다)는 어원적으로 물체가 물에서 뭍에 접촉한다는 뜻이다.”

강길운은 『비교언어학적 어원사전』(2010)에서 우리말의 어원을 주변국의 어원과 비교해 추적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tulac(닻, 길약어)과 비교될 수 있는 고유어다. 이들의 공통기호는 tolac(錨)으로 재구될 수 있을 것이다. 즉 tolač>t˄lč>tačh>tat(닫, 팔종성법)의 변화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 멍텅구리 배의 닻(목포해양유물전시관)

우리말 닻은 한자어로는 碇 또는 矴이라고 적었는데, 이는 돌을 줄에 매달아 닻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1374년 최영 장군이 고려군을 거느리고 제주도의 원나라 반란 세력을 토벌하러 출범할 때 “碇을 올리고 선박을 출발시켰다”고 했고 『세종실록』에는 “각 포의 병선이 모두 木矴을 사용하는데, 목정은 몸은 크지마는 실제는 가벼워서 능히 물 밑바닥에 즉시 정지시키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서남해권의 어선에서는 ‘닻장’(stock)을 닻고리 쪽이 아닌 닻머리(crown)에 끼워 사용하는 독특한 ‘닻’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stock anchor의 변형으로, 우리나라 서남해권 해역의 저질인 ‘뻘’에서 사용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일제식민지 시기까지도 우리나라의 연안 어선에서는 나무닻이나 돌닻을 주로 사용했는데, 1970년대 후반 인천 지역의 어선에서 이와 같은 닻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는 서해안 전역과 목포와 여수, 삼천포 등지의 어선에서도 이러한 닻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모양의 닻을 부르는 특별한 명칭이 있는지 닻 제작업체와 어민들에게 문의했으나 ‘닻팔’(arm)이 2개이면 쌍닻, 1개면 외닻이라고 부를 뿐 그런 닻을 통칭하는 일반적 명칭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stock anchor와는 반대 쪽에 stock이 있으므로 ‘reverse stock anchor’라고 부르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사용되는 ‘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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