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목포해양대학교 교수

<tramp : 부정기선>

중세 저지 게르만어 trampen(짓밟다)에서 기원해 14세기 말 영국의 종교개혁가로 최초의 성경 영역자인 John Wyclif(1320?~1384)가 ‘짓밟다’(walk heavily, stamp)의 뜻으로 처음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스웨덴어의 trampa, 덴마크어의 trampe 등이 동족어다. 이는 동사 tramp의 어원인데, 명사 tramp는 ‘짓밟는 행위’(a heavy or forcible tread), ‘걸어서 배회하는 사람’,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person who wanders about, idle vagrant on foot, esp. in search of employment)의 의미로 1664년에 처음 사용됐다가 오늘날 해사용어인 ‘부정기선’을 뜻하는 낱말로는 1880년경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tramp를 여자에게 사용하면 ‘떠돌이 여자’라는 의미에서 ‘난잡한 여자’를 뜻하게 되는데, 1922년부터 이 용법으로 사용됐다.

일부 해사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부정기선을 tramper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정기선을 liner라고 부르는 것과 상응하기 위한 발음상의 착각인데 영어에 tramper는 ‘떠돌이’, ‘도보여행자’의 뜻이다. 그런데 일부 해사관련 전문서에도 tramper를 버젓이 ‘부정기선’이라는 의미로 등재해 놓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아마도 일본의 영향이 일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와 센페이는 1955년 『文部省學術用語集, 船舶工學編』에서 ‘不定期船 ふていきせん : tramper’로 설명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용하고 있다. 영어에 tramper라는 낱말이 있지만, 이는 해사용어로 사용되는 부정기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정기선’은 반드시 tramp 또는 tramp ship, tramp vessel 등으로 표기하며 독일에서도 Trampschiff와 Trampdampfer로 쓰고 있다.

liner, tanker, ore carrier 등과 어로(語路)가 합쳐져 tramp가 tramper로 됐는지, 아니면 ‘trump’(카드놀이)와 구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tramp를 tramper라고 했는지, 혹은 free lance(창 하나로 어느 영주에게나 일하는 떠돌이 기사, 자유논객, 무소속 기자)를 ‘프리랜서’라고 말하는 것처럼, 행위자임을 표명하기 위해 어미에 ‘er’을 붙이는 습관 때문에 비롯된 것인지 몰라도 일본과 우리나라 해운업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잘못된 해사용어 가운데 하나다.

앞서 언급한 대로 tramp가 ‘부정기선’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때는 1880년대였다. ‘부정기선’이라는 새로운 전문용어가 나오게 된 것은 ‘정기선’이 새로 등장한 이후다. 세계 최초의 정기항로는 1816년 북대서양에서 미국의 Black Ball Line에 의해 시작됐지만 그것은 정기항해의 최초 사례였을 뿐이다. 따라서 초기의 정기선 항해는 아직 사람들의 의식에 명백히 그 차이가 각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기존 해운업 방식과 구분해 부를 전문용어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증기선 해운이 발전함에 따라 정기항해 또는 정기항로가 점차 확립해감에 따라, 사람들이 이 새로운 형태를 구분할 필요가 생겼고, 이를 liner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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