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내 어머니께선 자기 생명보다 날 더 소중이 여기셨다.

기우러진 집안에서 마흔둘 노산에 나를 낳으셨기 때문이었을까? “너를 두고 내가 어떻게 눈을 감을고! 네가 스무 살 될 때까지만 내가 살아야 할 터인데”라고 연민하셨다. 내가 신열이 나 앓으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셨다. 눈을 뜨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어머니께서 가슴앓이를 하셨다. 진통이 심하면 방 네 귀퉁이를 헤매셨다. ‘하느님! 어머니 아픔을 제가 대신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런 母子였음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었다. 눈빛과 표정, 행동으로 사랑을 느꼈다. 나는 그것을 情(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어휘 개념이 다르겠지만 나는 사랑보다 정이란 말에 순결을 느낀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어디에서나 사랑 타령이다. 사랑이란 말이 통속화되어버렸다. 허드레 말이 됐다. 사랑한다는 말이 역겨워진다. 입술에 바른 립스틱처럼 남에게 보이려는 가식어(假飾語)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묵묵히 대하다 보면 이해가 깊어가고 신뢰가 쌓여 서로 정이 오고갈 터인데도…

날 위해 기도해 주시는 수녀님이 계신다. 일생을 수도자로 살아오셔 눈빛과 표정에서 순결한 정을 느낀다. 심산유곡의 옹달샘에서 솟아나는 생명수 같이 수녀님의 정이 신선하고 따사롭다.

존경하는 말가리다 수녀님

김종길 안드레아입니다.

동래에서 밀양으로 옮긴지 얼마 안 되어 가르멜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컨테이너 박스에서 수녀님을 뵈었습니다. 수도원이 준공되면 다시 오겠다며 작별했습니다. 단풍이 물든 2005년 가을이었습니다. 11년이 되었네요.

서류를 정리하다가 수녀님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저의 책을 읽고 보내주셨던 2005년 11월 28일자 편지입니다. 수녀님의 편지를 읽으며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수녀님의 은은한 격려와 축복이 감격스럽습니다. 마치 자애로운 누나가 어린 동생을 다독거리는 정겨운 목소리를 육성으로 듣는 것만 같습니다.

수녀님 건강은 어떠신지요? 높으신 연세라 걱정됩니다. 해인 수녀님을 만나면 언니 수녀님 안부를 물었습니다. ‘고만 고만하십니다’란 대답이었습니다. 달려가 수녀님과 함께 수도원 주위를 산책하며 천상의 말씀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부산에 근무하던 1992년 전후, 이갑수 주교님을 모시고 동래 가르멜 수도원에서 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주교님은 교구청으로 돌아가시고 저 혼자 남았습니다. 신부님도 먹을 수 없는 가르멜 수도원의 점심을 제가 먹었습니다. 자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수녀님께서 면담시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금남의 집에서 창살을 사이에 두고 20여명 수녀님들과 마주했습니다. 봉쇄수도원이라 세속인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인지 입담도 없는 제 말에 깔깔 웃으셨습니다. 마치 여고생들을 수녀로 분장해 놓은 것만 같았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수녀님들의 눈이 어린이 눈보다 더 맑으셨습니다.

그 분위기가 너무나 신선했습니다. 세상 먼지와 번뇌를 다 털어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난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 후론 어디에서도 그런 은총의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제가 첫째 외손녀를 가지고서 세상엔 나만 손녀를 가진 듯 동네방네 자랑을 했습니다. 수녀님에게도. 수녀님과 해인 수녀님 두 분께서 세례명을 실비아로 지어주셨습니다. 이혜인 실비아. 성녀 실비아님께서 수호신이 되어주셨음인지 높은 경쟁을 뚫고 예술중고등학교와 음악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지금 대학 2학년으로 첼로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두 분 수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손녀가 다섯입니다. 친손녀 셋은 미국에 있고, 외손녀 둘은 한국에 있습니다. 모두 예쁘고 개성이 톡톡 튑니다. 아내 아가다,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모두 건강합니다. 궁금하실 것 같아 지난 11년간의 가정사를 말씀드렸습니다. 철없는 동생이 누님께 응석을 부리듯 자랑을 했네요. 수녀님께서 기도해 주셔서 제 잔이 넘치도록 은총을 받고 있습니다.

제 나이 80이 되었습니다. 병석에서 가족들을 괴롭히지 않고 제 앞가림 할 때 하느님께서 데려가 주십사고 기도를 드립니다. 지나친 욕심인가요?

존경하는 수녀님! 부디 건강하시길 기도드리며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2016년 7월 4일
김종길 안드레아 올림

수녀님께서 답장을 주셨다.

반갑게 뵙는 김종길 선생님

보내신 글월 고맙게 받아보았습니다. 글월을 대하자마자, 제 기억에서 선생님의 옛 모습이 아련히 떠올라 해인 수녀에게 알아보니 그렇다는 응답을 들었습니다. 지금 제 나이 85세인데 잊히지 않고 떠올릴 수 있는 제 자신이 대견스러워 스스로 자신에게 ‘고마워!’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그 옛날 일들을 아직도 잊지 않으시고 여러 표현으로 재미있게 들려주셔서 혼자서 웃으며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꽃들인 다섯 손녀와 온 가족들이 건강하시니 하느님 축복을 그토록 넘치게 받으신 은혜에 감사를 올립니다.

저희에게 우편물이 있을 때야 우체국에서 다녀가며 그 기회에 편지를 부칠 수 있습니다. 오늘 부산에서 저를 만나러 오시는 손님에게 이 편지를 부쳐 주시길 부탁해야하기에 길게 쓸 수가 없습니다.

혹시 현재 선생님께서 병석에 계신가요? 글월 끝에 병석이란 단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1955년에 수도원에 들어와 몇 년 후에 신장 하나를 떼어내고 2003년에 위암 수술하고… 85세에 이르렀지요. 여기 저기 불편해서 많이 쉬어가며 살고 있습니다.

제 수술을 계속해 주신 분도병원 의사선생님께서 제 생존소식을 들으시고는 “그 수녀님, 아직도 살아 계신가? 하시더랍니다.

급히 이것저것 찾아 동봉합니다.

온 가족 분들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사모님께도 인사드립니다.

2016년 7월 15일
말가리다 수녀 올림

육필로 쓰신 글씨가 아름답다. 높으신 연세인데도 글월이 물 흐르듯 유려하다. 훈훈한 정이 행간에 스며있다. 이런 은총이 언제 어디에 또 있었을까? 첩첩 산중과 같은 봉쇄수도원에서 61개 성상을 기도와 명상, 노동으로 몸과 마음, 영혼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셨다.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무릎에 눕히고 비탄하는 피에타(pieta)의 성모상이 수녀님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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