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선 발주 절벽, 위기의 한국해운>

발빠른 선박금융 지원 국적선사 살린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건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시황은 그야말로 장기 침체의 늪에 빠졌다. 특히 드라이벌크선 시황은 최근 그야말로 최악의 침체기에 들어가 ‘해운 빙하시대’라는 말을 실감케 하고 있다. 올들어 BDI 지수는 300대까지 빠졌다가 한 때는 700선을 회복하기도 했지만 다시 600대로 떨어지는 등 밑바닥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의 해운업이 쇠락해 가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더더구나 이러한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해운업 회생 대책은 계속 겉돌고만 있으니 한탄스럽기 짝이 없는 요즈음이다.

얼마 전에 영국의 클락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월 기준으로 한국의 국적선사 외항 상선대규모는 총 2823척 5440만gt로, 그리스, 일본, 중국, 독일, 미국 다음의 세계 6위라고 한다. 세계 4위까지 올라갔던 한국의 상선대 규모가 계속되는 불황에 미끄럼을 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도 국적선사들의 발주 잔량이 많지가 않아 내년도 조사에서는 순위가 더 뒤로 밀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해운업의 근간은 ‘船隊확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보유한 선대를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 혹은 얼마나 질 좋은 선대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그 나라, 혹은 그 선박회사의 해운 위상을 나타내주는 지표는 바로 선대규모가 얼마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선대규모가 자꾸만 줄어든다고 하는 것은 한국해운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국적선사들이 2008년 이후 장기간 계속되는 해운시황의 침체에 견디다 못해 가지고 있던 선박들을 헐값에 내다팔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를 한다. 하지만 국적선사들이 불황 속에서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불원간 다가올 해운시황 회복에 대비하여 선대를 확보하고 선대구조를 개편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해운 영업의 근간인 선박을 개량하고 증강시키는 일이 국적선사들의 당면한 과제이고, 이것이 향후 한국해운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중차대하고 시급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해운업의 미래를 이끌고 나가야 할 우리의 정부당국은 국적선사들의 선박확보를 지원하려는 의지가 미약한 상태라 최근 우리 해운인들은 비통한 심정까지 느끼고 있다. “해양보증기금 설립”, “신조선 건조 지원을 위한 12억달러 선박펀드 조성” 등등 정부가 그럴듯한 지원책을 발표하고 보도자료까지 내놓았지만, 실제로 위기에 처한 국적선사들이 신조선을 발주하거나 중고선을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한 사례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해운이 총제적 난국에 빠져 있는데 정부당국이 넋 놓고 쳐다보고만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최근 해운 주무당국 조차도 “금융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며 발을 빼고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태도는 바람직하지가 않다. 아주 많이 늦은 상황이지만, 지금이라도 선대를 확보하고 활발한 영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정부당국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국적선사들은 앞으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밀려 서서히 도태될 것이고, 결국은 이것이 한국해운산업의 쇠락과 연결된다는 점을 당국은 잊지 말아야 한다.

선박확보라는 차원에서 당장에 시급한 것은 우선 우리 국적 원양 컨테이너선사들에 대한 신조선 건조자금 지원이 하루라도 속히 이뤄져야만 한다는 점이다. 선박펀드 조성 얘기가 나온지 반년을 넘기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진전은 조금도 없는 실정이다. 부채비율 400% 이하다, 구조조정이다 하여 자꾸자꾸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우선 먼저 신조선 발주를 할 수 있게끔, 금융사이드가 문을 열도록 정부에서 강력한 지도를 해야만 한다.

중소선사들이나 카페리 선사들의 신조선 건조를 지원하는 정책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해운시황 침체기가 한편 생각하면 선박투자의 호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그리스 선주들의 움직임을 보면 역시 해운강국이란 말에 걸맞게 많은 선박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중소 컨테이너선사나 카페리선사들 가운데는 해운불황 속에서도 좋은 경영실적을 내고 있는 선사들이 있는데, 이런 선사들조차 최근에는 일부 대형선사들과 대형조선소들의 구조조정 여파로 은행권이 대출을 제한하는 바람에 신조선 발주가 어려운 실정이다. 건실하게 성장해온 선사들이 이런 선박발주 호기에 선박을 지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뒷받침을 하는 것은 정부당국의 당연한 책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적선사들에 대한 신조선 건조 지원은 원양 컨테이너선사에 대한 선박펀드 지원의 예처럼 범부처적으로 정책적인 결정이 이뤄져야만 한다. 또한 이러한 지원은 단순히 국적선사에 대한 지원 차원을 넘어서 국내 조선과 연계한 지원이 되도록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국적선사들의 선박확보 방법으로 애용이 됐던 계획조선 제도를 오늘날에 그대로 되살리지는 못한다고 해도, 그 정신만은 되살려 정책적으로 계획조선제도를 원용한 범정부적인 선박펀드 조성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런 대단위 선박펀드 조성 계획을 바탕으로 하여 그동안 해운업계에서 줄기차게 주창해 왔던 ‘토니지뱅크’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돼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구상이라고 해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윗선에서 아무리 훌륭한 정책적인 결정이 나와도 그 정책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실무자들이 정책적인 결정을 믿고 소신있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만 한다. 이런 측면에서 금융당국을 비롯한 금융권에서는 지나치게 실적만 따지는 ‘실적 만능주의’와 자리를 보전하려는 ‘보신주의’의 탈을 벗고 ‘해운 전문성’을 보강하여 미래 지향적인 업무개선에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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