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정에 맞는 ‘해운위기 극복 방안’ 내놓아야

해양수산부는 최근 제4차 해운산업장기발전계획(2016~2020)을 발표했다. 언론을 통해 보도자료로 배포한 것이 아니라, 해양수산부 홈페이지에 공지사항란을 통해 ‘공고’를 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국적선대 보강을 통해 2020년까지 선복량 1억dwt에 해운매출 50조원, 2025년까지 선복량 1억 1200만dwt에 해운매출 6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를 위해 한국 해운산업의 역량과 시장 대응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해운시장을 개척하여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한편, 새로운 해운비지니스가 발전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해양수산부의 이러한 장기발전계획만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10년 내에 선진해운산업으로 탈바꿈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해운산업 장기발전 계획은 ‘해운법’에 5년마다 계획을 수립하여 공시하도록 되어 있고, 이에 따라 해양수산부가 지난 7월 28일자로 이를 수립, 발표한 것이다. 장기적인 발전 계획이다 보니 이것저것 구구절절 나열할 수밖에 없었고, 해운의 각 분야별로 각각의 전망과 대책을 마련하다보니 포인트가 애매해진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향후 해운산업의 청사진을 그려본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제는 해운업계의 최대 관심사인 해운위기 극복 대책과 국적선사들의 생존 전략을 지원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비경제 노후선을 시장에서 퇴출시킨다든가, 톤에이지 뱅크를 설립하여 국적선대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역시 구체적인 실현 방법이 제시되지 않아 실효성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원양 컨테이너선사, 원양 벌크선사, 중소형 벌크선사, 근해 컨테이너선사 별로 향후 어떻게 육성해 나갈 것인지, 그에 따라 선사들의 생존전략은 어떻게 짜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아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해운장기발전계획이라면 우리 해운업계의 실정에 바탕을 두고 한국의 해운업을 어떻게 하면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포인트를 맞추어 수립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장기적인 해운불황 때문에 국적선사들이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도외시한 채 ‘선대교체’, ‘시장개척’ 등의 뜬 구름 잡는 얘기를 해봐야 헛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당장에 우리 국적선사들이 처한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고, 그를 바탕으로 우리 한국해운산업을 어떤 식으로 부흥시킬 것인가 하는 것을 짚어내지 못했다면 실효성이 없는 계획이 아닐 수 없다.

말할 것도 없이, 모든 ‘계획’이나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상에 대한 이해가 뚜렷해야 한다. 만약에 현재 한국해운의 위기 상황을 ‘일시적인 위기 상황’으로 인식한다든가, 혹은 ‘개별 선사들의 위기 상황’으로 인식한다고 하면, 해운업계에 대한 구조조정 문제나 선사들에 대한 자금 지원 문제 등을 생략하고도, 해운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역시 한국해운의 새로운 비전에 따른 업계의 재편 문제와 그와 병행하여 정책적인 자금지원 문제가 분명히 거론이 돼야 한다. 조선이나 무역, 금융 등 타선업과 해운을 연계 육성하는 문제도 함께 다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역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해운업계의 각 분야별(컨테이너, 벌크, 여객선, 원양항로, 근해항로 등등)로 정책적인 청사진이 제시돼야 한다는 점이다.

해운의 각분야별로 정책방향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으면 이해관계 선사들 간의 불협화음 내지는 충돌로 인해 향후 한국해운의 발전에 상당한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조짐은 원양항로 컨테이너선사들과 근해항로 컨테이너선사들간에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소위 ‘케스케이딩’에 의해 원양항로의 대형 컨테이너선들이 근해인 동남아항로 등으로 전배될 수 있는데, 이런데 대한 정부의 분명한 방침이 없다면 양진영의 충돌은 불을 보듯 훤할 것이다. 최근 원양 컨테이너선사가 동남아항로에 5000teu가 넘는 대형선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힘에 따라 중소형 컨테이너선사들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당국이 향후 컨테이너 정기항로를 어떤 식으로 끌고 갈 것인지 좀 더 확실한 청사진을 만들어 놓아야만 한다.

이번에 발표된 발전계획 가운데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해운시장 조기경보망 구축을 통한 리스크 관리 강화 계획이다. 사실 1984년 ‘해운산업합리화 계획’이 성안됐을 당시에 ‘국적선사들이 경영 위기에 빠진 이유는 해운시황에 대한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선박을 확충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따라 해운시황에 대한 조기경보망을 구축하자는 논의가 활발했고 그 결과로 현재의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해운의 불황에 대해서도 예측과 대비를 못하여 또다시 우리 국적선사들이 도탄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운거래정보센터(MEiC)를 통해 조기경보시스템 구축에 대한 용역을 진행한다고 하니 기대를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해양수산부가 애써서 만들어놓은 118페이지에 달하는 장기발전계획을 뒤엎어 버리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사항, 즉 정책적인 금융 지원을 포함한 외항해운선사들이 경영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제시와 향후 각 해운분야별 전망과 발전 방안에 대한 내용을 첨가하는 등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2020년까지 1억dwt의 국적 선복량을 확보하겠다는 등의 외형적인 목표 설정은 절대적인 것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외항적인 목표 대신에 오히려 국적선사들의 경영이나 국적선대의 질을 향상 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해운당국은 장기적인 발전대책도 중요하지만, 우리 선사들이 당면한 위기를 빨리 극복하고 올바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더 신경을 써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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