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양창호 원장

▲ 양창호 KMI 원장
"해운 우량자산은 브랜드가치와 네트워크"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전세계 항만에 선박과 화물이 묶이면서 물류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1천억원이든 2천억원이든 긴급자금을 우선 지원해 멈춰선 한진해운 선박을 재가동시켜야 한다. 약속된 물량을 수송하는 것은 이미 한진해운의 약속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격, 한국해운의 국가신인도와 관련된 것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양창호 원장은 9월 5일 해운전문지 기자단과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국격과 한국해운의 국가신인도를 위해서라도 한진해운에 긴급자금을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8월 29일 KMI 신임 원장에 취임한 직후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물류대란이 발생하자 양창호 원장은 ‘해운위기 극복을 위한 T/F’를 구성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양창호 원장은 30여년간 해운업을 연구해온 전문가이자 국책 해운연구기관의 수장으로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죄인된 심정이라는 말로 간담회를 시작했다.

양창호 원장은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몰아넣은 정책결정자들이 여전히 해운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해운업계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정책결정자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한진해운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을 이어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파산 수순을 밟고 있지만 긴급자금을 투입하고 브랜드가치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되살려 피해를 최소화해야하고 최소한 청산가치라도 높여야 한다는게 양 원장의 지적이다.

KMI에서 28년간 선임연구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해 연구와 행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양원장은 우선적으로 한진해운 사태 극복에 조직역량을 집중하고 KMI의 설립 목표인 정보전달과 정책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조직개편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기자단과 나눈 일문일답.

-취임 축하드린다. 8년만에 친정에 복귀한 소감이 어떤가?
=취임하자마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30여년간 해운업을 연구해온 전문가이자 국책 해운연구기관의 수장으로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죄인된 심정이다.

산업연구원 주임연구원으로 있다가 KMI에 입사해 선임연구위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23년간 KMI에서 일했다. 8년간 떠나 있다 다시 친정에 돌아오니 감회가 새롭다. KMI를 떠나 외부에서 바라 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아쉬운 점들이 보이더라. 언젠가는 바뀌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원장이 돼서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하다.

-한진해운 사태에 KMI도 책임 있는 것 아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발생할 여러 문제들에 대해 지적했지만 금융당국을 비롯한 정책결정권자들이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직도 정책결정권자들은 해운업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정책결정권자들의 해운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것이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한다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해운업이 제조업이라면 가능한 방안이다. 그러나 해운업은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이다. 해운업의 우량자산은 오랫동안 쌓아온 브랜드 가치와 글로벌 네트워크 등 무형의 자산들이다. 이런 무형자산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순간 0이 된다. 가치가 0이된 무형자산을 도대체 무슨 수로 인수하겠다는 건가?

정책결정권자들의 인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도 계속해서 설명하고 설득해서 어떻게든 한진해운을 다시 살려내도록 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다.

-정책당국은 이미 한진해운을 포기한 것 아닌가?
=법정관리 보낸 것 자체로 이미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뿐 청산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아직 한진해운을 살려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얘기다. 한진해운을 살리려면 우선 1000억원이든, 2000억원이든 긴급자금을 투입해 전세계 항만에 묶인 선박들을 재가동시켜 약속한 물량들을 운송해야 한다.

이 물량을 수송하는 것은 이제 한진해운과의 약속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격, 한국 해운의 국가신인도와 관련된 것이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그동안 서로 명분 찾기를 하다 한국 대표선사인 한진해운을 법정관리에 몰아넣었던 채권단과 한진그룹은 물류대란으로 충분히 한진해운의 필요성과 살려야할 명분을 체감했을 것이다.

우선 긴급자금을 투입해 무너진 신뢰와 네트워크를 되살려 놓고 어떻게 하면 한진해운을 살릴 것인지 대안을 도출해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설령 한진해운을 되살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청산가치는 높일 수 있다.

-KMI를 어떻게 이끌어갈 계획인가?
=KMI의 주된 기능은 정보제공과 정책기능이었으나 이러한 기능들이 너무 약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동향분석실에서 정보 제공도 하고 정책 분석도 했었는데 이런 중요한 기능들이 사라져 버렸다. 동향분석실을 부활시켜 정보제공과 정책기능을 대폭 강화할 생각이다.

취임하자마자 각 부서별로 시급한 현안이 무엇인지 보고하도록 주문했다. 가장 시급은 현안부터 집중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가장 시급한 현안을 파악해 연구하고 정보 및 정책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개편도 생각하고 있다. 조직개편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도 영업하려고 한다. 특히 해운업을 잘 아는 현장 전문가를 연구원으로 채용해 해운연구조직을 키우려고 한다. 해운연구조직이 재정비되면 해운중장기 발전전략과 비전을 세우고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만들겠다.

이번 한진해운 사태를 겪으면서 정책당국자들과 일반 국민, 심지어 언론들조차 해운업을 너무 모른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해운산업이 우리 경제와 일반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알려야 한다. 일반인들이 쉽게 해운에 접근하고 이해할 있도록 인포그래픽을 활용해 해운, 항만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있도록 제공할 계획이다.

본원이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연구원들의 연구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문제점들도 지적되고 있다. 연구를 위해 세종시, 서울 등으로 이동이 잦아 연구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라도 연구가 가능하도록 IT시스템을 갖춰나가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원장은 연구원들이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자리이지 군림하는 자리가 결코 아니다. 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연구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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