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 윤민현 박사
2016년 8월 31일은 1949년 12월 대한해운공사법에 의거 정부가 설립한 대한해운공사(Korea Shipping Corporation ; KSC)가 우여곡절과 영고성쇠를 거듭해온 67년의 항적이 끊겨진 날이다. 한국 해운인들의 요람이자 대한민국 해운을 선도해온 명실상부한 대표선사, 오대양을 커버하는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가 전 세계 해운인들의 중인환시 속에 채권자들의 빚잔치에 의해 공중분해되면서 사실상 파란만장한 여정에 종지부를 찍으려 하고 있다.

법정관리를 통해 회생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나름의 절차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이미 8월 31일 조치로 신경조직이 회생불가할 정도로 괴사돼가고 있는데 잔존가치, 회생 가능성 등을 논한다는 것이 그저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은 필자의 착각인가?

이제 남은 여정은 8월 31일 조치로 일거에 그 수명을 다한 67년 항적의 잔해를 정리하고 마무리해서 볼썽 사납지 않게 띄워 보내는 일이 아닌가 싶다. 국영 대한해운공사 시절부터 한진해운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을 KSC의 이름을 안고 살았던 한 해운인으로서 참담하고 허탈한 마음과 함께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하는 아쉬움을 실어서 팔자가 유난히도 험난했던 KSC의 67년 족적을 되짚어 본다.

1. 67년의 항적

(1) 대한해운공사의 민영화
앞에서 언급했듯이 KSC는 1949년 12월 20일 창립총회를 거쳐 국영 대한해운공사로 탄생했다. 그러나 60년대 중반 시작된 정부의 민영화 시책의 일환으로 KSC는 1968년 11월 학교를 운영 중인 한양재단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재단 측에서는 석유계통 공사를 희망했다가 대한해운공사로 낙착되자 공개적으로 정부에 불만을 표출했다고 할 만큼 민영화 첫걸음을 내딛는 KSC는 그렇게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68년 인수이후 70년대 초부터 불어 닥치기 시작한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KSC가 독점하고 있던 뉴욕정기선과 동남아 정기선항로는 문자 그대로 스페이스를 얻기가 힘들 정도로 호황기를 맞았고 KSC는 한양재단의 자금원으로서 효자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해운외적 여건으로 오너가 수재의연금 유용 스캔들과 정치권의 차기구도와 관련된 회오리에 휘말리면서 KSC는 다시 문패를 바꾸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2) 민영화 2기
KSC의 주인이 바뀌게 되는 상황에 이르자 이번에는 흔히 말하는 실세들의 지원 하에 동양고속, 서원농산 그리고 K 씨 등 3인에 의한 공동인수 형태로 잠시 운영되다가 막후 조정을 거쳐 해운산업과는 전혀 거리가 먼 서원농산이 경영권을 인수하고 상호를 대한선주로 개명한다(영문명칭은 여전히 KSC).

주기성이 강한 해운산업의 특성에 따라 얼마 후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정치와 사업을 병행하려던 오너의 의욕이 넘치다 보니 회사가 심각한 재정난에 빠지게 됐지만 이를 뒷밭침해 줄 만한 계열사나 오너의 재력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 은행 부채만 쌓여갈 뿐이었다.

(3) 민영화 3기
1986년 이번에는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KEB)이 이른바 경영관리계약이란 것을 체결함과 동시에 오너와 그 주변인사들은 회사를 떠났고 은행관리가 개시되면서 KSC의 경영권은 관리단이 장악한다. 관리단에 의해 비경제선 처분과 인력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주인에게 KSC를 넘길 준비가 시나리오에 맞추어 진행됐고 마침내 정해진 수순에 따라 회사의 실태를 파악한다는 명분하에 인수후보사(?)로부터 실사단이 파견돼 한동안 KSC에는 58명의 은행관리단과 104명의 한진실사단이 상주하는 해운판 신탁통치가 지속됐다. 그 와중에 정통 KSC인들은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고뇌와 갈등을 겪으면서 회사가 정상화되기만을 바랬다. 결국 회사는 관리단과 실사단이 합의한 부채 총액중 절반(53%)은 탕감하고 나머지부채는 00년 거치 00년 분할상환이라는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한진그룹의 우산 아래로 들어갔다.

2. KSC와 한진해운

KSC를 한진그룹으로 넘기기 위해 정부가 동원한 카드는 「산업정책합리화」로 그 기본골격은 각료회의를 거쳐 그 윗선에게까지 보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의거 1987년 4월 산업정책심의회에서는 ‘KSC(대한선주)는 주식회사 한진컨테이너를 계열사로 하고 1990년 3월까지 합병토록(KSC로 흡수)한다’고 의결했다(의안번호 제7호). 이에 의거 KSC와 한진컨테이너는 합병을 위한 임시주총을 거쳐 통합됐으며 새로운 오너의 희망에 따라 합병된 회사의 상호를 한진해운으로 다시 변경한 것이다. 합병직전까지 KSC의 한국명칭은 대한해운공사에서 대한선주로 바꾸었지만 영문 칭은 KSC가 그대로 유지됐다. KSC의 법통은 1949년 창사이후 최근까지 중단없이 승계돼 왔으며 중간 중간 오너의 뜻에 따라 상호가 개명됐을 뿐이다.

당시 한진컨테이너는 평소부터 해운사업을 희망해왔던 한진그룹의 창업주에 의해 1967년에 설립된 대진해운을 모태로 한다. 대진해운은 한때 운항어선이 24척에 이르는 수산회사였다. 후일 1만 2000톤급 오대호를 매입하면서 부정기 항로 및 대리점업으로 외연을 확장했다가 한때 한일간 188teu급 소형선 2척을 운항하는 Feeder 서비스도 시행했다. 그러다가 1970년 미국 Sea Land(SLS)의 한국 총대리점 역할을 수행했으며 1976년 SLS로부터 소형 컨테이너선 4척을 인수해 한진컨테이너(HJCL)라는 이름으로 미국 서안서비스를 개시한 중형 선사였다(한국해운 60년사, 잃어버린 항적 참조).

3. 해운과 정책

한국에는 크고 작은 많은 선사들이 있고 규모와 비중이 크다보니 해운의 주요 정책들이 원양 대형선사 중심으로 꾸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규모가 크다고 해서 홍길동 해운과 박문수해운이 곧 ‘한국해운’이 아니듯이 한국해운의 밑그림이 반드시 홍길동 해운, 박문수해운 등 특정해운회사의 경영진에 의해 좌우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해운호의 사명과 역할이 확실히 정립돼 있다면 홍길동이든 박문수든 개인이나 대주주는 넓은 의미에서 한국해운호에 일시 편승해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며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이 한국해운호의 운명과 직결된다고 한다면 굳이 한국의 해운정책을 논할 명분이 없는 것 아닌가?

한 국가의 해운정책은 지정학적 여건을 바탕으로 해운산업의 주기성, 시장의 구도와 흐름을 십분 고려한 일관성 있고 일시적인 호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과 지주(backbone)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굳이 해운산업의 주기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의 해운시장이 말해주듯 호황도 있고 불황도 있으며 방향타를 쥐고 있는 사람의 능력 여하에 따라 시장의 Winner가 되기도 하고 Loser로 추락 할 수도 있다.

2004년 이후 4년여 지속된 사상초유의 호황기도 있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록적인 불황도 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상위 20대 선사중 6개사는 흑자를 시현했으나 금년도 들어서는 상반기 실적기준으로 흑자낸 회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바닥에 머물러 있지만 현 시황이 적어도 2~3년안에는 회복할 전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바꾸어 말해서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모든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은 향후 최소 2년 전후의 혹한을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오너, 대주주가 경영을 잘못하면 그 책임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주식회사의 자세이고 시장의 원칙이다. 그러나 한국가의 해운산업 장래가 흑자와 적자, 채권채무 정산차원에서 모든 것이 결정돼야 한다면 부채상환 능력이 없는 해운기업은, 당분간 시황회복 전망이 없으면, 더 이상 밑빠진 독(?)에 돈을 쏟아 붙기 싫으면 채권은행의 결심에 따라 청산해도 할 말이 없다. 한국가의 해운정책도 시장의 원칙에 따라가야 한다고 강변한다면 그 또한 반박하기 힘든 이야기다. 과연 한국의 해운정책이 그런 것이고 과거에도 그렇게 해왔는가? 각국이 자국의 대형 컨테이너 선사를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흑자경영만을 위해서인가?

해외언론들이 한국 양대해운사의 진로를 두고 관심을 집중해온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과거 한국해운계의 재편과정을 잘 보아왔다. 법정관리 신청과 자산보전명령, 그리고 해외법원에서의 가압류 금지 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법정관리를 통해서 벼랑 끝에 있던 회사들이 되살아나는 현상도 여러 차례 목격해왔다.

금융위기 이후의 사례만 들더라도 2008년의 파크로드, 2009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친 삼선로직스, 2011년의 대한해운, 2013년의 STX팬오션(금융위기 전 1회) 등이 그 예다. 그러나 과거의 사례들은 모두다 벌크선사였기 때문에 벌크 시장의 특성상 시황의 변화에 따라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기선사의 경우는 시장의 구조부터 다르다.

벌크선사는 한국의 경제력에 비춰볼 때 마음만 먹으면 1~2년안에 초대형 선사를 만들 수 있으나 컨테이너 정기선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총력을 경주한다고 하더라도 한번 도산된 회사를 되살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10여년 이상의 오랜 세월을 요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양대선사의 진로를 보는 해외의 시각은 벌크선사와 다른 중장기적 안목의 정책이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사상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과감한 일격(?)에 세계 해운시장이 경악하고 있는 것이다.

정기컨테이너 해운사는 상사적 측면에서 방대한 조직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요하며 더 중요한 것은 전 세계 고객들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무형의 자산은 단시일내에 구축되는 것도 아니며 남에게 양도 양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책적 시각에서 보면 일국의 무역상품을 포함한 자원의 수송수단이라는 전략적 의미를 갖는 자산이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정책은 평시에는 물류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함이자 유사시에는 해상수송로를 장악하기 위한 군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4. 충격과 파장

(1) 컨테이너 정기선업계
현재 가동중인 4대 얼라이언스(운항동맹)와 내년 4월에 가동할 3대 얼라이언스의 반응은 외관상 비교적 담담해보이지만 실상은 남의 불행에 드러내놓고 즐거워하지 않을 뿐 그들은 내심 즐기고 있다. 가장 빨리 반응을 보인 곳은 중국이다. 8월 31일 조치 당일 한진해운이 속한 운항동맹인 CKYHE의 COSCO는 한진해운 선박에 싣지도 않을 것이며 한진해운이 Booking 한 화물을 운항동맹선박이 받지도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운항동맹에서 퇴출을 공식화했다.

(2) 하주와 단체
세계 하주단체인 GSF는 회원들에게 한진해운 선박에 선적했을 시 예상되는 리스크(선박압류에 따른 지체 등)에 대비해 선적을 하려면 사전에 변호사와 상의하라고 권해 사실상 선적거부를 종용하고 있으며 국제 Forwarder 단체 역시 운항동맹체제하에서 한진해운이 아닌 타 선박회사에 운송을 의뢰하더라도 선복공동사용협정에 의거 한진해운 선박에 실릴 가능성도 있으므로 후일의 분쟁에 대비해 Booking시 관련 대화를 Recording하라고 까지 나서고 있다. 한마디로 한진해운과 거리를 두라는 의미다.

(3) 협력업체
항만과 터미널은 하역을 거부하는가 하면 연료 등 공급업체는 사실상 거래중단을 선언하고 한진해운의 자산이 자신들의 사정권내로 진입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압류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한진해운 사선들은 항내 진입을 보류하고 항만으로 부터 몇십 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다.

(4) 기타
해운관련 당국이나 해사전문 법무법인들은 한진해운의 자율구조조정안이 채권단에 의해 부인됐다는 사실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두 가지 사실에 대비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미국의 FMC는 미국 하주들의 보호에 최선을 다 할 것이지만 이번 한진해운 사태는 미국법과 무관한 사항임을 분명히 하고 다만 미국의 해운법 위반이나 시장질서와 경쟁을 왜곡하는 일이 없도록 주시할 것이지만 하주들에게는 한진해운 사태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법률가들의 조언을 받으라고 권하고 있다.

벌크선사의 경우 법정관리로 가더라도 보안을 유지해가며 채권자들에 의한 자산 압류 등을 막기 위해 법정관리 신청과 자산보호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하는 것이 과거 관행이었다. 그러나 8월 31일 조치가 있기 이전에 이미 금융계 고위당국자는 언론을 상대로 한진해운에 정책지원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Unlikely)이라고 발표하면서 해외의 시선은 무언가 다르다는 조짐을 감지했고 결과적으로 의도적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해외채권자들로 하여금 Contingency plan을 준비하라는 우회적인 신호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한진해운은 8월 31일 조치로 사실상 사면초가가 아니라 출구를 완전히 봉쇄당한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능’이 돼 버렸다.

5. 왜 이렇게 됐는가?

8월 31일 발표와 함께 일부선박은 가압류됐고 한진해운의 사선들은 졸지에 범법자처럼 때 아닌 피항(避航)을 하고 있다. 얼라이언스 회원사들도 벌써 선을 긋고 있다. Carrying line은 한진해운이 Booking한 화물은 받지 않을 것이고 한진해운 사선에는 화물을 싣지 않겠다고 공식발표를 했다.

간선항로의 요충지(choke point)이라 할 수 있는 운하(canal)에서는 한진해운 선박의 통항을 불허한다고 선을 그었다. 화물이 없는 빈 배, 해로가 차단당한 배, 항만에서 입항을 거부하는 배, 하역작업이 안 되는 배, 기름 공급이 안 되는 배를 운항해야하는 선사에게 법정관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생물학적으로 불능상태가 된 회사에 청산가치, 잔존가치를 논할 이유가 있는가? 사실상의 즉결처분이 아니고 무엇인가? 설사 그렇지 않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국제해운시장에서 그렇게 단정하고 있고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는데 다른 할 일이 무엇이 남아있는가?

채권단의 발표와 보도내용을 요약하면 기업을 살리겠다는 오너, 대주주의 의지가 미흡(?)했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파장과 비판을 감수하면서, 한국해운의 신뢰도를 추락시키면서 까지 대한민국 제1호 해운회사이자 한국해운의 모태인 67년 전통의 정기컨테이너사의 맥을 일거에 끊어야 할 정도인가?

국제정기선 해운업계는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다. 우선은 8월 31일 조치로 한진해운의 시장점유율(M/S) 2.9%가 그들에게 보너스로 주어질 것이고 한국해운의 현 정책이 지속되면 또 다른 보너스가 나올지도 모른다. 얼마전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라인의 CEO가 한국 양대선사의 혼란이 자기들에게는 호기가 될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한국의 양대선사에 무슨 일이 생길 경우를 가상해 한국의 물동량을 겨냥한 발언이자 기대가 아니고 무엇인가?

어느 연구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무역업계가 양대선사의 통합을 반대한다고 한다. 곧이어 양사체제가 바람직하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었다. 하주들은 당연히 통합에 반대한다. 한국해운의 장래를 위해서인가? 오히려 3사 체제가 된다면 더 환영할 것이다. 하주들에게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선택권이고 싼 운임이다. 싸고 안전하고 빨리 운송해줄 수만 있다면 굳이 국적을 가릴 상황도 아니고 그런 시대도 아니다.

한국의 수출입 물량의 국적선 적취율이 얼마나 될까? 절대적인 비율이 외국적 선박에 실려 나가고 있으며 이것을 비판할 이유도 없다. 국적선사들도 해외영업비중이 절대적이다. 설사 양대회사중 하나가 불능상태가 된다고 해서 과거 국적선사에 실렸던 물량이 갈 곳이 없어지는가? 국적선사가 줄어들면 하주들에게는 일시 조금 불편할 뿐이다. 양사의 통합이 하주들에게 일시적인 불편 그이상이라면 양사 중 어느 한 선사가 사라지는 것도 당연히 반대했을 것이지만 그런 반대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6.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한진해운(Ex KSC)의 이력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비록 문패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67년의 전통을 가진 한국의 대표선사이자 제 7위의 글로벌 정기컨테이너선사다. 회사가 소속돼있는 한진그룹의 경우 주력은 대한항공이고 ㈜한진은 오늘의 한진그룹을 이루어 낸 모태기업이다. 한진해운은 그룹내에서 주력기업도 아니고 모태기업도 아닌 외부에서 사온 그룹의 한 가지(branch) 일뿐이다. 반면 현대상선은 70년대 중반에 설립된 아시아상선의 후신으로 설립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문패가 바뀐 적이 없는 현대가의 회사이며 오늘의 현대상선은 그룹내 타 자회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현대그룹의 주력기업이다.

국적 양대 정기선사가 자율구조조정계획을 준비함에 있어서 양사의 그룹내 위상에 따라 이른바 자구안(self-rescue plan)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양사의 상황을 떠나서 그룹의 최고 경영진이나 오너의 최우선과제는 부실화된 자회사의 회생도 중요하지만 그룹전체의 안정이고 주력기업의 보호일 수밖에 없다. 한쪽은 주력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자회사를 희생시켰고 다른 한쪽의 자구안 역시 동일한 기준하에 마련된 것이다.

물론 한진그룹의 경우 그룹의 총수로서 연간 매출이 8조원대에 이르는 기업을 포기해야하는가를 두고 좌고우면 이상의 고민과 번뇌가 있었을 것이다. 원죄라면 구조상 해운사업을 부의 축적을 위한 하나의 곁가지로 취급하기 십상인 재벌그룹 산하로 KSC의 문패를 옮겨준 것이 문제다. 현 세계 해운시장을 보더라도 선두주자들의 공통점은 해운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해운에 all in하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Maersk, MSC, CMA CGM, Hapag-Lloyds, EMC가 그렇고 멀리 갈 것도 없이 국내에서 장수하는 해운사들의 면면이 이를 뒷밭침하고 있다.

연초만 하더라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상황은 한진해운이 더 좋았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다. 적어도 그때까지의 결과를 두고 판단한다면 한진해운의 경쟁력이 현대상선보다 더 양호했다는 이야기다. 그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왜 불과 몇 개월사이에 하나는 생존가치가 있고 하나는 가치유무를 평가하기도 전에 즉결돼야 할 만큼 구제불능의 처분을 받게 됐는가?

물론 채권은행에서 지적했듯이 위기에 대처하는 양사의 대응을 비교해볼 때 한쪽의 경우 기업을 살리겠다는 오너의 의지가 미흡(?)했다고 한다. 그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알려진 바에 따라 그 미흡(?)을 계수화하면 ‘미흡의 차이’가 2~3천억 범위 아닌가 싶다. 더구나 양사가 처해있는 앞으로 겪게 될 시련의 기간이나 강도는 전혀 다를게 없고 이른바 Market Risk 또한 규모나 강도면에서 전혀 다를 게 없다. 정책에 의해, 타의에 의해 문패를 네차례나 바꿔온 67년 회사의 항적을 살펴볼 때 과연 그러한 ‘미흡의 차이’가 세계 제 7위의 거대 컨테이너 정기선사로 성장하기 까지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경륜, 국제해운시장에서의 신뢰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귀한 자산가치를 일격에 침몰시켜야 할 만큼 거대한 차이인가?

7. 후폭풍과 대응

한진해운의 붕괴를 보는 해외의 시각과 국내의 그것과는 온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해외에서는 한진해운의 글로벌 컨테이너 정기선사로서의 기능은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비해 국내에서는 과거 벌크선사의 경험 때문인지 법정관리 절차에 따라 회생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어느 보도에 의하면 지금이라도 대주주가 협조하면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런가?

물류대란이라고 하지만 관련 하주들은 이미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왔고 당사기업 스스로가 contingency plan을 갖고 대처해왔다. 하주들이 겪는 혼란은 일시적이고 그 파장이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며 이미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온 만큼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시적인 불편이 지나면 정상화 될 것이다. 하주의 plan에 제3자가 끼어 들 명분도 틈도 없으며 오히려 간섭을 반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두 가지다. 크게는 전 세계 하주와 항만, 협력업체들까지 이미 등을 돌려버린 국적간판선사의 불능상태를 원상 복구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복구가 불가능할 경우(유감스럽지만 그럴 확률이 높은 것이 현실)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한진해운의 자산과 선원들의 보호조치다. 어차피 선원들이야 적절한 시기에 송환될 것이지만 누군가가 누적된 부채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국민세금이 들어간 담보자산이 해외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T/F를 구성했다고 한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항만 하역사들을 포함한 국내 협력사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한 T/F라면 나름의 역할이 있을지 모르지만 한진해운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T/F라면 딱히 해결할만한 일들이 있을지 의문이다. 해외 사정은 이미 통제 범위를 벗어난 상황하에서 고작 사태의 추이를 모니터링하고 보도자료를 취합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T/F라면 너무 민망한 일이 아닌가?

부산항의 물량이 축소될지 모르니 대비를 하겠다는 것이라면 그 실천방안이 궁금하다. 한진해운은 소속되어 있는 얼라이언스에서 퇴출을 기정사실화 했고 한동안 갈 곳이 모호했던 현대상선은 최근에 운항동맹 2M에 어렵게 가입이 받아들여졌다. 3대 동맹중 가장 강력한 2M은 세계 제1위 머스크라인과 제2위 MSC가 구축한 유럽계 동맹이다. 그중 머스크라인은 세계 최대 항만터미널 운영사인 APM Terminal를 운영 중으로 세계 주요항에 전용 터미널을 갖고 있다. 이들 Big two의 컨테이너 시장 지분은 각각 15% 수준이다. 이미 주요항구에 터미널이 확정되어 있는 2M 네트워크하에서 최근 가입한 2.1% 지분의 현대상선이 기항지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8월 31일 후유증이 가시화되자 곧 이어 한진해운의 우수자산과 인력, 해외 네트워크를 현대상선이 인수토록 할 예정이란 발표에 이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해외 하주들과도 협의를 하겠다고 한다. 협의가 성사될지도 불투명하지만 협의를 통해서 어떤 수습책이 나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인수할 우수자산이 아직 한진해운에 남아있으며 해운원가 구조에 비추어 볼 때 인수가치가 있는 선박이 과연 몇 척이나 될지, 한진해운 선박을 인수시킬 경우 선명과 주인만 바꾸면 법적으로 모든 채권자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지, 글로벌 네트워크도 양도ㆍ양수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한진해운 선박의 운항차질로 발생한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계선중인 현대상선의 선박 4척을 위시해 추가로 대체선박을 투입을 한다고 한다. 어떤 항로에, 독항인지 아니면 운항동맹 산하로 투입할 것인지, 독항일 경우 소석율은 문제가 없는가?

한진해운의 시장점유율 2.9%가 고스라니 현대상선으로 넘어갈 확률보다 2.9% 전체가 해외선사들에게 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보아야 한다. 시장은 향후 몇 년간은 불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현대상선의 현 시장점유율 2.1%가 크게 증가하지 않는 한 추가 인력소요가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진해운의 사태가 한진해운만으로 끝날지 아니면 이른바 Korea Discount 화해 현대상선에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은 없는가?

이번 한진해운 사태로 운임이 50% 상승했다는 보도가 있다. 사실이라면 비록 한진해운은 사라지지만 전세계 해운시장은 급반전할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주지하듯이 정기선 업계는 성공여부와 무관하게 매년 4~5회의 일괄운임인상(GRI)을 시행해왔고 이번에도 예년처럼 연말 물량을 겨냥해서 9월 1일부로 주요항로에서 50% 전후의 GRI 시행을 발표했다. 그러나 과거 예로 보면 GRI는 월초 일시 운임 상승 조짐을 보이다가 곧 타력을 잃은 채 주저앉았다. 근본적인 수급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운임의 상승은 선사 임의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다른 것은 사실이다. 운임은 수급의 근소한 차이만으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장점유율 2.9%를 점하고 있는 한진해운이 불능상태에 빠지게 되면 이는 곧 공급의 2.9% 감소를 의미하게 된다. 당연히 과거와 달리 GRI는 좀 더 타력을 받게 되겠지만 중국경제의 침체를 감안할 때 획기적인 수급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1~2년내에는 희박함) 운임 상승폭은 소폭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상승폭 여하에 무관하게 분명한 것은 한진해운사태가 해외 정기선사들에게는 긍정적 요소로 희소식이 될 수 있지만 한국해운계의 입장에서는 어렵게 확보한 지분 2.9%를 포함해서 오히려 잃는 것만 있다면 이 또한 낭패가 아닌가?

8. 마무리

글로벌 컨테이너 정기선 업계는 20년전 40개에서 20개로 최근에는 다시 10개사 정도로 통폐합되고 있는가 하면 미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은 정기선분야에서 철수했다. 세계 최대하주국 중국은 컨테이너 선사들은 Super-Cosco로 단일화 했는가 하면 제4위 Hapag-Lloyds 는 중동 6개국이 참여하에 7개국 다국적 기업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이처럼 국제해운환경이 열악해지고 있고 규모의 경제차원에서 소수대형화를 향한 M&A를 통해 글로벌 해운시장은 꾸준하게 재편돼왔고 앞으로도 재편될 수밖에 없다.

현 국제해운시장의 구도에 비춰볼 때 더 이상 대마불사는 없다고 하듯이 크다고 해서, 대표선사라고 해서, 역사가 있는 회사라고 해서 영생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시장의 경쟁환경과 자신의 경쟁능력 여하에 따라 스스로 시장에서 철수하는가 하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철수를 하더라도 글로벌 고객과 협력업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전 예고해 시장의 후유증을 최소화 해가면서 단계적으로 마무리 해왔다. 특히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컨테이너 선사의 경우 그것이 전 세계 고객과 협력업체에 대한 글로벌 정기선사로서의 책무이자 국가의 신뢰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인 것이다.

이번 8월 31일 조치에 의거 한진해운은 해운정책이 침묵하는 가운데 빚잔치에 올려졌고 전 세계 해운인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사실상 일거에 무력화 되었다. 경영책임을 다하지 못한, 기업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미흡(?)한 오너와 대주주를 문책하는 것과 한국의 주력해운사를 퇴출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야 되는 것 아닌지, 오너의 퇴출이 반드시 한국 최대의 간판회사의 퇴출로 이어져야만 했는지, Commercial Risk, Market Risk를 관리하는 주체가 기업이라면 위기관리는 국가의 몫이다. 해당기업을 붕괴시키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 후유증을 알 수 있다면 한국해운 70년사가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한진해운에 대해 사실상 법정관리상태가 개시됐다. 그러나 청산가치, 잔존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8월 31일 조치로 이미 만신창이가 돼버린 한진해운이 법원의 판단여하에 따라 회생할 수 있다고 보는가? 8월 31일 조치의 주역들은 여기에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만일 회생할 수 있다면 그 대안을 공개해 책임감을 갖고 그 실현 가능성을 검증해 보여야 할 것이고 회생이 불가할 것이라는데 동의하면 67년 역사의 파란만장했던 한 기업의 퇴출을 아름답게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그 마감이 더 이상 추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모양새를 지켜주는 것이 모두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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