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사태 이후의 한국해운 생존법 >

우리 해운업계 입장에서는 해운산업이 국가의 기간산업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성장 육성시켜야 한다는 것은 대명제일 수밖에 없다. 한국해운이 살아나고, 그래서 한국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국익에도 보탬이 돼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무역이 보다 중요하다느니, 혹은 해운국이 아닌 선진국도 많다느니 하는 등등의 反해운적인 논리나 주장들은 들리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이번 한진해운 사태가 이 지경으로 꼬인 근저에는 ‘해운이 뭐가 그리도 중요하냐’는 근원적인 물음이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상식 밖이라고 생각했던 정부의 태도, 특히 기획재정부의 한진해운 사태에 대한 대처와 채권단의 한진해운에 대한 몰아붙이기식 대응의 근저에는 ‘수틀리면 없애버리겠다’는 해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해양수산부가 어정쩡한 입장에서 아무런 대처도 못한 것 역시 이러한 반해운적인 생각에 동조했거나 기가 눌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더구나 한진그룹 최고경영자들의 생각도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우리는 미루어 짐작한다. 그룹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사업과 회사를 잘 모르고 인수했다며, 서슴없이 법정관리행을 선택했을 법도 한 것이다.

그러나 한진해운 사태가 세계적인 물류대란으로 비화되면서 정부와 채권단은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하주들과 관련회사들이 관계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고, 그로 인한 피해 정도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잘못 생각한 것은 ‘미국과 같은 무역대국은 해운이 없지 않느냐, 컨테이너선사 하나쯤 없어진다고 문제될 것 없다’는 생각과 ‘대한해운과 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나 성공적으로 졸업했으니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가도 문제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결국 잘못된 생각인 것으로 곧 판명이 되었다.

법정관리를 신청하자마자 한진해운의 97척 컨테이너선단의 상당수가 세계 곳곳에서 억류되면서 수많은 컨테이너가 발이 묶이는 물류대란 사태가 벌어졌고, 수많은 업체들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고 만 것이다. 일부의 분석으로는 한진그룹이 채권단에 요구했던 4000억원을 지원하지 않는 바람에 선택한 법정관리 사태로 인해 관련 업체들이 14조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더구나 무엇보다도 큰 손실은 1970년대 이후에 이어오던 한국의 원양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맥이 끊어지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사태 발생 이후에 곧바로 T/F팀을 꾸리고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이번 사태를 일소시킬만한 역전의 찬스마저 잡지 못하고 있다.

파장은 무역업계 뿐만 아니라 해운업계에도 크게 미치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해운의 신용도 실추로 우리는 산업은행 계열사가 된 현대상선의 안위마저도 걱정할 입장이 되고 말았다. 한진 사태로 인해 하주들이나 거래관계사들이 보다 신용도가 높은 대형선사들 하고만 거래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원양 정기항로 사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한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한탄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기에는 지금 우리 한국해운은 너무나 황급한 위기상황에 빠져 있다. 울고 싶은 심정이지만 꾹 참고 다시 일어서서 이를 악물고 곧바로 앞으로 나갈 용기가 절실한 때이다. 이제는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칼을 들여대야 하고, 앞으로 나가는데 방해되는 요소들은 쳐내며 한국해운이 살아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우선 한국해운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살릴 것인지 말 것인지, 원양 정기항로를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먼저 확실하게 정해야만 한다. 원양 정기항로가 필요하고, 한국해운도 필요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향후 해운산업 육성계획을 다시 세워서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원양 컨테이너정기선의 틀을 확실하게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정부가 ‘한국에서 원양 정기선해운이 필요 없고, 결과적으로 한국해운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하면, 그에 걸맞게 해운산업을 정리해 나가는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해운을 관장하는 해양수산부도 해체하든가 축소해야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만약에 원양 정기선사를 살리기로 했다면, 그 때 부터는 산업은행의 대처가 정말 중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계열선사인 현대상선조차도 해운시황이 급격히 회복되지 않는 한 대단위의 금융지원이 없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한진해운을 살려내기에는 더더욱 많은 자금과 인고의 세월이 필요할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들 입장에서는 손실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제3자 인수 등 다른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단계가 조만간 올 것으로 우리는 본다. 정부당국은 이러한 것 까지도 감안해 원양 정기선항로 사업을 부흥시킬 마스터플랜을 당장에 짜야 할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이번 한진해운 사태를 촉발시킨 관계자들에 대한 엄한 처벌을 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 소신 없는 눈치 보기로 물류대란을 유발시키고 결과적으로 한국해운에 치명타를 입힌 데 대해 일벌백계할 것을 주장하는 부산지역 해운항만업계의 요구는 우리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이렇게까지 좋지 않은 쪽으로 몰고 간 기재부·해수부 관계자들과 채권단 책임자들은 엄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이번 일과 관계된 한진해운의 경영자들과 업계 관계자들도 주변의 비난을 받아야 함은 물론, 스스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로 나와야만 한다.

원양 정기선항로에서 개별회사를 살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해운산업을 살리고, 우리의 수출 물류경쟁력을 높이자는 얘기다. 정부는 이제라도 원양 컨테이너 정기선사가 꼭 필요함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한진해운 사태로 인한 물류대란 해결을 서두르는 한편, 우리나라 정기선해운을 이끌고 갈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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