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클레이튼 IHS Markit Maritime & Trade 수석 애널리스트

▲ 리차드 클레이튼
지난달 AP몰러-머스크(AP Møller-Maersk)그룹이 포트폴리오를 ‘운송 및 물류’와 ‘에너지’ 두 부분으로 나눈다는 발표가 있었다. 발표내용 중 “역동적인 시대에 정지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AP 몰러 홀딩의 아네 머스크 맥키니 우글라(Ane Mærsk Mc-Kinney Uggla) 회장의 경고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소렌 스카우(Søren Skou) AP 몰러-머스크그룹 대표이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그룹이(솔직히 말하자면 해운업계 전반이) 정지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일까? 그리고 그가 언급한 방향 전환은 경영 실정을 살짝 바꾸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일까? 발표 내용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실제로 꽤나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스카우 대표이사는 과거(2008~2016)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운영된 각 사업들이, 앞으로는 운송 및 물류 부문으로 더욱 통합돼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머스크 오일은 글로벌 입지를 줄여 나갈 것이라고 했다. 업계 용어를 빌리자면 “포트폴리오를 축소해 특정 지역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며, 제한된 자원을 최대로 더 활용한다는 뜻이다. 향후 2년 동안(2017~2018년) AP 몰러-머스크는 원유 및 원유 관련 사업에 대한(아마도 정리한다는 의미의 해결책을 찾아) 컨테이너 운송, 터미널 운영, 공급사슬 관리, 화물 운송을 그룹의 주요 사업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그다지 획기적인 변화는 없지만,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머스크그룹은 이제 더 이상 모든 고객을 위해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대신,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여러 고객에게 개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이다. 결국 기업의 철학이 ‘고객과의 동반 성장이자, 고객 최선의 이익이 바로 머스크 최선의 이익’으로 바뀌는 것이다. 즉, 신기술을 더욱 잘 활용할 수 있는 고객을 대하겠다는 뜻이며, 결국 이는 머스크가 가차 없이 고객을 분류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 분야를 좁히고 자금 사용처를 세분화함으로써 AP 몰러-머스크가 ‘세계화’ 또는 ‘세계화된 솔루션’으로 나아가는 방향에 반대되는 움직임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다른 컨테이너선사들은 지금까지 강력한 머스크의 글로벌 전략을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는데 말이다. 그 동안 머스크라인은 막대한 손실을 입어왔다. 2015년 영업활동 수익은 13억 달러로, 2014년 23억 달러에서 대폭 하락했다. 그 와중에 경쟁사들의 출혈은 더욱 심했다.

CMA CGM은 5억 6700만 달러, OOCL은 2억 8400만 달러, 하파그로이드(Hapag-Lloyd)는 1억 2400만 달러로 겨우 수익을 낸 반면 차이나쉬핑(China Shipping), 에버그린(Evergreen), K라인, 양밍, MOL 등은 영업 손실을 냈다. 특히 MOL의 경우 15억 달러 상당의 손실을 기록하면서 주니치로 이케다(Junichiro Ikeda) 사장으로 하여금 해외 파트너사들과 더욱 협력하는 한편, 장기적인 관계를 추구하게끔 만들었다.

건화물, 컨테이너, 에너지 분야 기업 역시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더욱 활발하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사이 AP 몰러-머스크는 변화를 일으킨 첫 그룹이다.(한진해운의 경우는 지나친 늑장 대응에 속한다. 애널리스트들 모두 한진해운과 같은 사례가 또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한진해운이 도미노 효과의 첫 번째 주자인지 아니면 한진해운의 몰락이 업계에 긴박감을 조성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스카우 대표이사는 기자 회견에서 AP 몰러-머스크가 형편에 따라 사업을 축소하는 실정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밑에 깔린 의미가 더 흥미롭다. 머스크 이사회 의장 미카엘 프램 라스무센(Michael Pram Rasmussen)과 더불어 우글라 회장과 최근 AP 몰러 홀딩의 대표이사로 임명된 아들 로버트 우글라(Robert Uggla) 등 가족 중심의 새로운 경영팀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보기로 한 듯하다.

이들은 오랫동안 해운산업에 머물고 싶어하며 또 유리한 입장에 서서 그렇게 할 것이다. 이는 모두 다 우왕좌왕하며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 주길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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