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인생 80을 되돌아보며

팔순이 되었습니다.

예순까지만 살았으면 했습니다. 60대를 넘기곤 일흔부턴 언제 꺼질 줄 모르는 풍전등화(風前燈火)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고 사는 건 자의가 아니어서 팔순이 되었습니다. 참 오래 살았습니다.

항간에 9988234란 숫자가 나돕니다. 무슨 숫자냐고 물었습니다.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삼일 앓다가 죽겠다는 숫자랍니다. 천진난만한 철부지의 응석일까요. 과욕일까요. 오만일까요. 하기야 백세 시대이라 하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인생80을 어떻게 살았을까 되돌아봅니다.

잘난 체하고 살았을까? 남의 눈총에 실려 살았을까? 목숨이 붙었으니 그저 먹고 자고 배설하고 살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세 가지 모두 입니다.

남보다 열심히 일하고, 수많은 장애물을 잘 극복했다고 자부했습니다. 착각이고 오만이었습니다.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그걸 모르고 잘난 체했으니, 참 어리석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 잘난 체가 젊음의 생기(生氣)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기가 없었다면 시들어버린 식물인간이었을 것입니다. 식물인간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세월을 좀먹고 살았을 것입니다.

남의 눈총에 실려 살지 않고 멋대로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을 의식해 몸을 가꾸고 마음을 절제했기 때문에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태어나고 자란 터전을 더럽혔을 것입니다. 근본도 모르는 인간이라 조롱받으며…

먹고 자고 배출하는 건 생물의 본성입니다. 식물도 동물도 민초도 영웅도 그렇습니다. 생물이 태어나 늙어 죽을 때까지 신진대사 또는 물질대사를 하여야만 생명이 보존됩니다. 그 본성으로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며 오늘의 세상을 만들지 안했을까요.

인생80을 어떻게 걸어왔고, 뭘 생각했고, 남겨둔 것이 무엇인지를 체계적으로 기술하려면 회고록이나 참회록이어야 합니다. 그걸 쓰려면 역사적 철학적 문학적 소양이 있어야합니다. 또한 세계와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혜안(慧眼)도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럴만한 자질이 못됩니다.

하여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낀 감성을 그때그때 적어두었습니다. 해운전문지가 코너를 할애해주어 그것들을 연재했습니다. 그것들을 그냥 버려둘 수 없어 부끄럽지만 수필집으로 발간하려고 합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시대 그 사람이 그렇게 세상을 살았구나’란 기록만이라도 남겨두기 위해…

낮은 데로 흘러가고, 막히면 돌아가고, 오수(汚水)도 정화시키는 물처럼 사람도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침마다 묵주기도를 드립니다. 뭘 구하기보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입니다. 미움과 분노가 조금씩 사라집니다. 마음을 조금씩 비우니 자유로워집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성화가 될 것입니다. 그 경지를 향해 한 발자국씩 걸어가렵니다.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면 가족과 이웃과 영적교감이 이루어져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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