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터치웰 IHS Maritime and Trade 전무

▲ 피터 터치웰 IHS 전무
해운업계에 2016년은 그 어느 때보다 인수합병이 활발히 진행된 해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인수합병으로 몸집이 더 커진 소수의 선사가 전 세계 컨테이너선 업계를 지배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2류 선사들이 동서항로에서 근근이 버티면서 다른 지역에서 기회가 생기길 기대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는 어떻게 정의될 것인가? 새로 결성된 얼라이언스들과 지금의 메가 선사들의 야심 찬 계획은 무엇인가? 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며 업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가? 고객을 위해, 더 나아가 자신을 위해 가치창출을 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아니면 과거의(그리고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품화(commoditization)와 변동성의 추세가 미래에도 이어질 것인가? 현재 대형 선사들은 그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늘 하던 대로 운영할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새로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과연 그러고 싶기는 한 걸까?

질문을 바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자. 누가 과거와 똑같은 미래를 원하는가? 과연 어느 기업이 계속해서 돈을 잃고 싶을까? 어느 기업이 고객과 가격으로 시작해서 가격으로 끝나는 대화를 하고 싶어할까? 계속해서 고객의 이익에 반하는 사업을 하길 바라는 기업이 과연 있을까? 어느 기업이 당사의 이익을 앗아가는 중개사에게 사업을 양도하고 싶어할까? 과연 어느 기업이 고객을 애증의 대상으로 보길 바랄까? 고객과의 사업을 따내야 하지만 돌아오는 것이 무례함과 배신이라면 어느 기업이 그런 상황을 원할까?

이러한 질문을 감히 물어도 되는 때가 있다면, 새로운 미래를 정의할 적절할 때가 만약 있다면, 아마도 바로 지금일 것이다. 2016년 이후 해운업계는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간 고군분투하며 종사해 온 해운업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업계를 구성하던 많은 부분이 사라졌다. 잘나가던 이름, 기업, 문화 등등(물론 선복량은 예외지만) 한진해운이 그 좋은 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들이 다른 미래를 보기 힘들게 끔 한다. 어쩌면 다른 미래라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데, 그럼 왜 헛되이 고민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하나? 해운은 해운일 뿐이고, 늘 그래왔지 않았나? 건화물선, 유조선, 다목적선, 컨테이너선, 트럭 수송, 항공 수송을 막론하고 모두 수요와 공급에 따라 오르내린다. 별 고려 없이 선복만 과도하게 키우는 것은 중력의 법칙처럼 그저 비탈진 경사로를 따라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느 항로든 계속해서 운임을 떨어뜨릴 뿐이다.

새로운 기업들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비용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이는 규모에 따라 더욱 쉬워진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선복 과잉의 늪에 빠지지 않고 자동적으로 영향을 받는 운임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실현 가능한, 심지어 유력한 미래 시나리오다. 하지만 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은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머스크라인부터 MSC, CMA CGM, 하파그로이드, 차이나코스코, 그리고 아직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합병하기로 결정한 일본 3대 선사까지 새로 떠오르는 대형 선사 중 그 어느 기업도 고객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 가치 창출이야말로 기업이 지속 가능한 수익을 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가치 창출을 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박을 채우지도 못하는데 운임을 깎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운임 경쟁은 항상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박 발주할 때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선박 발주가 주문이 언제 정확한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서 시장 균형을 맞추었던가? 그들이 좀 더 전략적이고 적극적으로 서비스 일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미 서비스를 일부 중단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 되버렸다. 그런데도 운임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추세다.

세상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즉, 기업이 생각했을 때 고객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가치 창출을 하기 위해 만반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실질하주(Beneficial Cargo Owner ; BCO)나 포워더가 선사에게 미리 운임을 지급해 선복을 미리 확보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우리가 비행기 표를 미리 사서 좌석을 확보하는 것처럼 말이다.

강압적인 '노쇼 (no-show)' 추가 요금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방식은 예전에 시도해 본 결과 효과가 없었다. 대신, 이를 선택 사항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해운사들은 적재 프로세스를 진정한 우선순위 기반으로 재설계할 수 있게 되고, 적재뿐만 아니라 하역 또한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역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은 일부 해운사들의 경우 개별 요구에 따라 매력적인 이점이 될 수 있다. 하파그로이드의 롤프 하벤 얀센(Rolf Habben Jansen) 사장도 지난 9월,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JOC 컨테이너 무역 유럽 컨퍼런스'에서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한 적 있다.

차이나코스코의 완민(Wan Min) 사장은 10월에 개최된 JOC의 'TPM 아시아 컨퍼런스'에서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변화의 바람을 마주하고 있는 기로에서 해운사가 택할 수 있는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현상유지를 하면서 전통적인 컨테이너 해운업을 계속하는 것 즉, 동종업계 기업 및 업스트림/다운스트림 파트너사와의 관계를 경쟁 또는 게임처럼 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옛길'이다. 또 다른 방법은 적극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유사한 비전을 가진 기업들과 함께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해운산업 생태계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길'이다.”

결국, 해운사에게 시사하는 바는 이기심과 출혈 경쟁을 버리고 고객에게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미래는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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