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교수(선장, 고려대 로스쿨, 한국해법학회회장)

▲ 고려대 김인현 교수
1. 서

2016년 12월 현대상선의 2M 정회원 가입 실패와 한진해운의 청산소식은 40년간 해운인으로 살아온 필자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해방이후 우리나라는 무역입국을 국가의 중요한 시책으로 정하면서 무역입국과 해운입국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바다의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정기선사인 한진해운에 대한 채권단 및 금융당국의 의사결정을 볼 때 대한민국이 해운입국을 국가의 시책으로 삼고 있는지 의심이 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해운에는 부정기선영업과 정기선영업이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과 같은 외항정기선사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아시아권을 운항하는 정기선사와 부정기선사들은 그런대로 적자를 보지 않고 잘 하고 있다. 그러면 왜 유독 외항정기선사는 이렇게 어려운지 많은 사람들은 의문을 가진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 정기선사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정기선사가 어렵다.

2. 정기선사 위기의 본질

정기선영업에 대하여는 100년도 넘은 오랜 논쟁이 있어왔다. 석탄, 옥수수 등과 같은 대량으로 운송되는 부정기적인 성격을 가지는 상품과 달리 정기적으로 운송되어야 하는 생활필수품적인 성격의 작은 화물들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수송할 것인지에 대하여 관련 당자사들은 오랫동안 그 방법을 두고 다투어왔다. 여러 정기선사들이 각각의 노선을 가지고 일정한 주기로 출항을 하여야 할 것인데, 경쟁이 격해져서 운임이 떨어져 한 선사가 도산이 된다면 수요자인 소비자들은 오히려 정시에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는 일정한 고정된 수익을 정기선사들에게 확보하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보호주의적인 주장이 있다. 이러한 논리는 정기선사들의 동맹(conference)체제를 만들었다. 동맹선사들은 운임을 자신들이 결정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동맹에 속하지 못하는 선사들은 오히려 시장진입이 어렵게 되었고, 소비자들도 이제는 높은 운임에 불만을 품고 정기선해운에서도 자유경쟁체제를 원하게 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정기선 해운에 대하여만은 독점금지법(경쟁법)의 적용이 배제되어 해운동맹은 유지되어 정기선사들은 안정적인 수입하에서 운항을 하여왔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8년 미국의 해운법 개정과 2008년 EU에 의하여 해운동맹은 완전히 와해되게 된 것이다. 이제 각 정기선사는 운임을 단체로 정하지 못하고 각자 경쟁하게 되어 운임은 하락되게 되었다. 정기선사들은 동맹을 대신하는 얼라이언스(alliance, 운항동맹) 체제라는 것을 만들어 과점화시키면서 유리한 지위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 컨테이너 선박이 대형화되면서 상품을 나를 수 있는 공간(선복량)이 많이 늘어남과는 반대 방향으로 세계경제의 후퇴로 인하여 물동량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실어나를 상품은 적고 선박 공간은 많은 선박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인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현재 적정 공간보다 30% 선복량이 많다는 비관적인 보고도 있다. 운임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의 NYK는 정기선 영업에서 운임의 자율화를 견디기가 어렵다고 보고, 사업업종의 다변화를 1990년대 후반부터 시도하였다. 1990년대 정기선 선복 세계 점유율 상위권이었던 NYK가 현재 11위라는 사실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NYK는 자동차운반선, 유조선, LNG선박을 늘리고 컨테이너 선박의 수를 줄였다. 시대의 흐름을 앞서 읽어나가면서 육상물류에도 진출하고 부두운영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컨테이너 정기선 영업에서의 손실을 다른 영업부분에서의 수익으로 보전하면서 오늘의 위기를 잘 넘기고 있다.

해운업은 선박을 이용하는 운송사업인데, 1000억원씩 하는 선박을 모두 자기 자본으로 살 수가 없으니까 남의 자본을 끌어다가 선박을 건조하거나 매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해운의 특성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해운의 한계이기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경제 위기를 맞아 부채비율을 200%로 맞추라는 금융권과 정부의 정책에 따라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 정기선사들은 잘 갖추었던 포토폴리오인 자동차운반선, 부두운영권 등을 내다 팔지않을 수 없었다. 해운업은 등락이 심한 시황산업으로서 10년 불황에 1년 호황이기 때문에 영업업종을 다양화하라는 교과서적인 기본을 버린 것이다. 이런 선택의 결과는 큰 차이를 낳았다. 일본의 정기선사는 이 초유의 불황을 잘 견디어 내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본질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외항정기선사의 부활방안

(1) 포토폴리오(사업다각화)

하나 남은 현대상선에 컨테이너 선박을 더 발주하여 대형화를 시켜야한다는 것은 현대상선의 운임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관점에서는 올바른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포토폴리오(사업다각화)를 갖추지 않는 대형화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앞에서 본 정상운임의 설정이 깨어진 상태의 정기선시장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컨테이너 시장이외에 다른 부정기 시황은 좋기 때문에 부정기선 운항에서 번 수익으로 컨테이너 운항의 적자를 메꾸어가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정기선사는 컨테이너 영업의 경쟁력강화에 동반하여 다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사업분야를 확충하여야 한다. 경험이 있는 부정기선 영업의 부활과 육상물류의 진출이 필요하다고 본다. 부정기선사 및 대그룹의 물류회사들과의 제휴와 합병을 통하여 포토폴리오를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하여야 한다. 일본 NYK는 육상물류 사업에서도 큰 수익을 올리고 있고, 머스크도 에너지 사업에도 뛰어들어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2) 대량화주나 계약운송인과의 장기계약

적정 운임의 결정이 깨어진 상태에서 적자를 줄이는 방법으로는 우리나라 화주들이 우리 정기선사들과 가능한 많은 물량의 상품운송에 대한 장기계약을 체결하여주는 것이다. 현재 우리 화물의 적취율은 2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50%수준으로 올려주자(1990년대 중반에 달성함). 장기계약을 체결하여 안정적인 운송이 되도록 하자.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는 경기의 변동에 따라 5~10% 운임을 증액 혹은 감액하여 정기선사와 화주의 불황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상생의 운임약정을 체결하자. 중국 정기선사들의 선전도 자국화물을 자국선박에 실어주는 정책때문이고, 일본의 경우는 자국선박의 이용율이 7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리 정기선사의 컨테이너가 한배에 가득 수출품을 실어야할 터인데, 1/2밖에 싣고 가지못하면 비용만 발생하고 손실이 나는 것이다. 우리 정기선사의 컨테이너에 가득 가득 수출품이 실리도록 하자. 정부도 이러한 경우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하여주어야 한다.

이런 상생의 운임 약정은 선주와 금융단과도 체결이 가능할 것이다. 해운경기가 나쁘면 금융단은 대출이자를 시장금리보다 낮추어주고 해운경기가 좋아지면 그것보다 높혀받는 것이다. 선박의 운용자금의 대출이나 선박건조자금의 대출에서도 활용되면 정기선사의 안정된 경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3) 선박공급 조절을 위한 국제적 공조체제 구축

정부와 산학이 해운산업의 안정적인 운용이라는 관점에서 큰 그림을 그려보자. 우리는 10년 20년 주기로 해운산업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그 근본에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도사리고 있다. 물동량(수요)보다 선복(공급)이 많기 때문에 운임이 떨어지고 용선료가 떨어지면서 불황이 찾아온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10년 뒤 혹은 20년 뒤 똑같은 해운불황에 허덕일 것이다. 원인은 이미 본바와 같이 간단하다. 원인을 알았으니까 어쩌면 해결책도 간단할 수 있다. 물동량에 맞추어 선복이 제공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동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면 선박건조를 줄이고 폐선을 많이 시켜야한다. 선박건조에는 3년이 걸리든 것이 이제는 6개월이면 가능하다. 그러므로, 더 수급조절이 쉬워졌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런 수급을 현실적으로 줄이거나 늘릴 수 있을까는 쉽지않은 일이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건조척수를 줄인다고 하여도 중국에서 건조를 하게 되면 선박의 이동은 국제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선복과잉이 되어버린다.

불경기인 경우에 선박의 가액은 한참 떨어져있고 신조가격도 낮기 때문에 선주들은 오히려 선박을 발주하게 된다. 요즘은 금방 선박이 인도되므로 신조된 선박은 공급과잉을 더 불러와서 경기는 더 나빠지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컨테이너 신조선을 더 건조하는 정책은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해운경기의 회복에 역행하는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신조량 만큼 폐선을 한다면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필자의 제안에 대하여 자유경제체제하에서 과연 가능한 설명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파멸적인 결과를 알면서 이를 계속 그대로 둘 것인가? 시장의 논리가 실패한 경우에는 정부가 개입하여야하는 것이 더 바람직 결과를 낳고 이것이 인류의 복지에 더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 선박건조량 1위, 선박보유량 6위, 무역규모 10위인 우리나라가 선도적으로 국제회의를 소집하는 것이다. 만성적인 해운조선불황을 해소하기 위하여 선박의 수급을 조절하는 기구나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유경제체제하에서 이를 법으로 규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선박건조는 금융을 통하여 이루어지므로 통화당국의 금융제공 조절은 가능할 것이다. 선복이 과잉여지가 있다면 신조선 건조를 억제하기 위하여 선박금융을 줄이는 형태라던가, 각국의 선복량에 따른 폐선 선박의 수를 할당하여 선복과잉을 해소하는 형태의 국제적인 공조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 시장의 자율성이 실패하는 경우 정부나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예는 해운분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UNCTAD에서 만든 유엔정기선 헌장(1974년 Liner Code)과 유류오염손해배상 국제기금(IOPC FUND)이 그 예이다. 전자는 선진해운국이 후진해운국 정기선사에게도 화물 수송량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라는 것이 골자이다. 후자는 유류오염 피해자에게 정유회사들이 수입량의 크기에 따라 기금을 갹출하여 보상하는 제도로서 현재에도 잘 운영되고 있다.

(4) 정책당국의 인식전환

해운정책당국이나 금융당국의 정기선영업에 대한 인식의 대폭적인 전환도 필요하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기선 해운은 무한경쟁하에 놓여있다. 운임은 자율화되었고 수요보다 공급이 만성적으로 초과인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 외항정기선사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정부는 결정을 하여야한다. 무역입국을 위하여 우리 상품을 실어나를 우리 태극기를 단 정기선사가 필요한가? 아니면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으니 포기하고 외국 정기선사를 이용할 것인가? 그렇다면 한진해운이 벌어오던 5조원의 외화가득, 한진해운의 8조원 매출 이것이 없어지는 것인데, 우리 경제에는 이것 정도는 없어도 대한민국이 다른 산업으로 충분한가? 8조원의 매출이 창출하는 고용 등 후방효과는 대단히 큰 것이 아닌가? 대한항공과 같은 매출이니까.

최소한의 국적 정기선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면, 정부는 정기선사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해방 이후처럼 국영 정기선사를 두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부에서는 민간의 영역이므로 해운업자들이 자신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생각은 버려야한다. 지금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시장의 논리가 깨어진 상태에서 각국의 정부와 정기선사들은 치킨게임을 하면서 곧 있을 승리의 순간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을 이제라도 깨달아야한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와 정기선사들은 불황 뒤에 찾아올 호황을 바라보면서 어려움을 참고 있는 것이다. 긴 장기불황 다음에 찾아올 호황기. 그 호황기의 크기와 강도는 깊었던 불황의 그것과 같은 정도일 것이고 불황기에 잃었던 모든 것을 다 찾아올 수 있다.

4. 결

1920년대 이래로 해운 선각자들은 모두가 두려워했던 바다로 개척자정신으로 나아갔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오늘의 한국해운을 세웠다. 이렇게 쌓아왔던 한국해운의 정기선분야는 한진해운사태를 통하여 국제적인 신뢰를 잃고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정기선 영업을 키워나가야한다. 해운인들은 선배님들의 개척자 정신을 본받아 정기선 해운 부활에 앞장서야한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대한민국은 무역입국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역에 필수적인 해운입국도 또 필요함은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조선, 금융, 물류 등 다른 분야와 협조하고 상생하면서 해운입국, 무역입국을 이룩하도록 하자. 언젠가 이 불황은 끝이 나고 호황은 찾아올 것이다. 그 때까지 조심스럽게 버티면서 체력을 길러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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