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현 박사(Penb46@naver.com)

▲ 윤민현 박사
국제해운시장이 조명해본 2016년은 다사다난의 정도를 넘어 문자 그대로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다. 그중 최대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소수 대형화를 향한 본격적인 재편의 와중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끝에 한국정부의 결단(?)으로 도산한 세계 제7위 컨테이너선사인 한진해운의 종말, 그리고 이어진 한국 제2위 선사의 재건을 향한 도전과 그 귀추였다. 그 결과가 한국해운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후일을 위해 지난 일년여에 걸쳐 숨 가쁘게 펼쳐져왔던 사투의 항적을 침체일로의 해운시장과 함께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1. 국제해운시장
(1) 시장의 흐름

2002년 중국의 WTO 가입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 과열현상이 급랭하면서 수년간 지속됐던 사상 최대 호황의 여파로 초래된 선박의 대량발주가 전세계 해운시장에 감당하기 힘든 후 폭풍을 초래했다. 단시일내 해소가 불가능한 과잉선복(Overcapacity of tonnage)과 조선설비과잉(Yards oversupply)은 결국 제한된 화물을 두고 너무 많은 선복이 경쟁을 하다 보니 운임수준이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 시장의 실상이다.

(2) 수요의 둔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시 수요가 위축됐지만 그래도 글로벌 경제는 낮은 수준이지만 2~3%대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수요의 증가가 다음과 같은 사유로 점차 둔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선진국 주도의 세계 경제구도가 신흥국·개도국의 부상에 따라 물자의 흐름이 원거리에 위치해 있는 동서간 이동에서 남북간 이동으로 전환됨에 따라 해상수요를 좌우하는 Ton-mile이 단축되고 있다.

ⓑ 각종 규제이행비용, 생산지의 임금상승 등의 요인으로 수송비가 증가함에 따라 원거리에서 물품을 조달하기보다 수송비와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근거리 조달(Nearsourcing)형이 증가하고 있다.

ⓒ 인구 증가율의 둔화와 노령화 현상으로 인해 물품에 대한 수요가 지난 50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되고 있다.

ⓓ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자국우선주의 즉 신보호주의(Neo-protectionism)의 영향으로 자국의 제조업 활성화, 관세장벽을 통한 수입억제, 자국화 자국선주의가 부상함에 따라 해상 하동량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3) 저성장 시대
과거의 통계에 의하면 해상 하동량의 증가 속도는 GDP의 증가율을 앞섰다. 예컨대 글로벌 경제 성장율이 3%일 경우 하동량은 GDP의 1.5배 즉, 4.5% 전후로 증가했고 2004~2007년의 호황기에는 최고 2.5배까지 달했다. 이를 Multiflier effect라고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2015년에 그 비율이 최초로 GDP 증가율을 하회했다는 사실이다.

세계경기의 침체(global recession)라 함은 통상 GDP 증가율이 2%대를 하회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최근 WTO는 국제경기는 이미 저성장시대에 돌입했으며 2017년도의 성장률은 금년수준을 하회한 1.7%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만일 예고처럼 저성장이 지속될 경우 누적된 공급과잉의 벽이 무너지기에는 상당한 시일을 요할 수밖에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9년차를 맞고 있는 지금, 시장이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날 수 있는 시기에 대해서는 2~3년내에는 무망하며 적어도 2019년은 돼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처럼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세계 제 7위의 해운국을 자부하고 있었던 한국해운계의 2016년은 문자 그대로 한국 해운사에서 가장 자랑스럽지 못한 한해로 기록될 것 아닌가 싶다. 모든 선사들이 다 어려운 한해였지만 그런대로 선방을 했던 다수의 선사들이 한진해운 사태 앞에 유구무언이 됐다.

옛 시인의 글처럼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이 혹독한 추위가 언제쯤 끝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시기가 한동안 이어질 것 같다. 물론 기진맥진한 한국해운업계를 살리겠다고 이런 저런 청사진들이 조급하게 제시되고 있지만 모든 것이 돈을 가진 자의 의중에 달려있고 한진해운 사태를 통해 보았듯이 돈 가진 자의 전횡을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정책당국의 무력함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 또한 선언적, 수사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아닌지 두고 볼일이다.

2. 시장의 재편
(1) 소수·대형화와 합병

모든 선사가 다 생존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2000년 당시 주요항로의 주력마(working horse)였던 1700~2000teu급이 지금은 1만 8000teu급으로 열배 가까이 대형화됐는가 하면 지난 20년 동안 상위 40개사 중 18개가 사라졌으며 최근 들어 상위 20대 선사가 12개 선사로 소수 대형화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이러한 재편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해운업계의 2016년 최대 이슈는 본격화되고 있는 소수·대형화를 향한 선사간 통폐합이자, 얼라이언스의 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1월부터 2016년말에 이르기까지 5개사가 발전적으로 새짝을 찾아 갔는가 하면(CSCL, APL, UASC, CSAV, Hamburg Sud) 일본 3대 선사는 2018년 4월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우선 약혼식을 맺었다(Japanese Trio). 축복 속에 이루어진 해외의 결합과는 대조적으로 비운의 1개사는 자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살릴 수 있었고 살렸어야 한다고 했지만 해당국가의 구조조정 원칙이란 이름하에 벼랑 끝으로 밀려났다.

글로벌 선사들이 투자의 규모를 줄이면서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한 방안으로 채택하고 있는 제도가 곧 선박 등 해운자산의 공동 사용을 목적으로 한 선사들간의 제휴 혹은 협정이다. 이는 일정수준의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선복 사용효율을 최적화(optimize) 하기 위한 선사들의 결사체로 대략 다음의 세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① 컨소시아(consortia) : 정기선사들이 결성한 그룹으로 특정 항로에서 선박, 터미널 등의 공동사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도모하면서 운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유럽항로의 경우 선박공동사용 협정(sharing agreement)은 독점금지 등 경쟁규칙을 규정하고 있는 로마조약(1986 제 81조 ⑴항)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이른바 Block exemption의 대상이다. 그러나 컨소시아 하에서는 공동 운임설정(price fixing)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② 얼라이언스(alliance) : 전략적 운항 협정(Operational agreement)으로 최신형태의 선사간 그룹공조 체제다. 선박이란 해운자산을 공동사용한다는 점에서 컨소시아와 유사하나 컨소시아가 특정항로를 대상으로 하는데 비해 얼라이언스는 최근의 얼라이언스에서 보듯이 태평양, 유럽, 대서양항로 등 복수의 항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컨소시아나 해운(운임)동맹에 허용되는 일괄적 적용면제(block exemption)가 얼라이언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③ 협의체(discussion agreement) : 문자 그대로 스페이스 교환이 없이 선사들이 상호간 정보를 교환하는 협의체에 불과하다.

(2) 얼라이언스의 목적
선사들이 대형화를 지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물동량의 증가와 하주의 물류비 절감 요구 그리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대형화에는 엄청난 투자뿐 아니라 이용율을 극대화하지 못하면 규모의 경제가 상쇄되기 때문에 소석율의 극대화는 절대적 요건이다. 그러나 단독회사의 능력만으로 초대형선의 스페이스를 채울 수 없기 때문에 공존 공영차원에서 선사들은 전략적 제휴 즉, 얼라이언스를 결성하는 것이다.

복수의 선사가 제휴를 통해 실질적인 준통합 형태를 취할 경우 이는 회사의 경영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 측면에서 보면 회사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결정인 만큼 대부분의 경우 서두르기 보다는 조심스럽게 다단계를 거쳐 제휴의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통합에 이르게 된다.

복수의 해운사가 얼라이언스에 이르기까지 진전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독자적인 운항·영업을 하되 스케쥴이 겹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Joint scheduling 단계
② 한 단계 진일보한 Slot chartering
③ 상호 선복을 공동 사용하는 Vessel sharing
④ 사실상 합병에 준한 서비스의 합리화, Rationalisation
⑤ 합병 직전의 운항비 공동부담, Cost pooling
⑥ Network와 Service를 통합한 Joint venture

이 가운데 ①~③까지는 선박의 스페이스 일부만을 교환하는 정도지만 ④ 이후의 단계는 컨테이너 Box 등 장비를 공동 사용하거나(④) 연료비 등 직접 비용을 공동으로 분담하고(⑤) 마지막 단계는 마케팅이나 세일스를 통합하는 것이다.

(3) 얼라이언스의 요건
얼라이언스에 부합하는 외적 요건은 ⓐ선박, 터미널 등 자산의 공동사용(Pooling of the asset) ⓑ소석율의 극대화를 위한 책임분담(Sharing of Utilization Risk) ⓒQuality Service의 공동 생산(Co-generation of Product)을 들 수 있으며 이 세가지 요건을 충족치 못하면 얼라이언스라고 할 수 없다.

ⓐ를 위해 멤버사들은 얼라이언스가 필요로 하는 선단(fleet)의 구성에 공동참여(contribute)해야 하며 주요 기항지에서 물량을 수용할 수 있는 터미널과 인프라 등 물류체인을 공동사용 할 수 있어야 한다. ⓑ협정에 의거 할당된 Slot을 자신의 책임 하에 채울 수(fill-up) 있어야 한다(Mutual commitment of 스페이스). 소석율이 일정수준이하로 하락했을 경우 규모의 경제가치도 그만큼 훼손되므로 대하주 신뢰도와 집하능력은 얼라이언스 멤버가 갖추어야 할 필수요건이다(ⓒ).

얼라이언스 멤버사는 각자가 정해진 비율에 따라(allocation) 이상의 세가지 요건을 의무이자 권리로 상호 약속(commit)했을 경우 얼라이언스의 정식 멤버(full membership)라고 할 수 있다. 공동 선단구성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상호 스페이스를 교환형식으로 주고받는 시스템이 아니라면 이는 멤버가 아니라 해당 얼라이언스의 스페이스를 하주의 신분으로(as a capacity of shipper) 이용하는 얼라이언스의 고객선사에 불과하다. 더구나 자사의 선박에 얼라이언스 멤버가 Booking한 화물을 싣지 못한다면(얼라이언스 하주의 반대로) 이는 얼라이언스가 아니라 Consortia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상호 구속력 없이 그때그때 선택에 따라 상호 편의를 도모하는 수준의 느슨한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

(4) 재편후의 경쟁구도
그간 이루어진 M&A의 유형을 살펴보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며 자율 경쟁을 통해 우량선사가 시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선대개편과 확장을 위해 공격적으로 M&A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의 Big3 해운사, 다가올 시련기에 대비해 30여년전부터 다져온 ‘주식회사 일본’ 특유의 협력과 공생을 무기로 하는 Japanese trio, 생존을 위해 다국적 주주와 다국적 경영체제로 전환한 독일선사 하파그로이드, 해운시장의 회생보다는 수송비 절감에 우선을 두고 크고(Bigger), 강하고(stronger), 싼(cheaper) 해운기업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과 화교권 선사그룹으로 글로벌 해운시장이 재편돼 가고 있다.

그러나 목하진행 중인 소수 대형화가 재편의 종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강자가 약자를 흡수하는 것은 대체투자 효과를 노리거나(인수가격이 쌀 경우) 혹은 퇴출을 통한 공급조절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과거 예였다. 결국 강자와 약자로 시장을 양극화하고 이른바 6~8개사로 구성된 Elite Club(ULCs 보유선사)의 주도하에 인위적으로 약체선사를 선복과 함께 묶어서 시장에서 퇴출시킴으로써 선두주자들이 어느 날 시장을 과점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가 재편의 종착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3. 한국해운의 구조조정
(1) 구조조정의 가이드라인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있는 한국의 양대 원양정기선사에게 한국산업은행(KDB)이 주도하는 국내 채권단이 내세운 구제금융의 조건은 ⓐ원리금 상환유예 합의, ⓑ용선료 인하, ⓒ얼라이언스 가입이었다. 이 세가지를 충족하면 출자전환과 유동성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현대상선은 2016년 7월 원칙을 이행했다며 합격점수를 받았고 조금 늦게 구조조정을 시작한 한진해운은 ‘오너의 의지 미흡’ 등을 이유로 불합격돼 청산과정을 밟고 있다. 정책은행이 제시한 구조조정의 원칙은 적어도 가이드라인으로서는 별 부족함이 없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그 이행여부에 대한 평가 기준이다.

(2) 가이드라인의 이행
장기침체로 이익은 고사하고 운항비 보전도 어려운 시장에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에 관한 한 채권단이 나서서 선박 등을 임의 처분하지 않는 한 사실상 채권단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굳이 조건이라 내세울 만한 비중도 없어 보인다. ⓑ의 조건은 선사의 자력으로 선주와 협상을 통해 용선료를 인하하라는 것이었으나 당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던 해당선사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선박을 빌려준 해외선주들이 한국선사를 협상 상대로 인정하기 여려운 여건이었기 때문에 정책은행의 지원(back-up) 없이는 협상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고 실제 협상에 임했던 해외선주들도 정책은행이 배후에서 협상에 영향을 미쳤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얼라이언스 가입이야 말로 자타가 공감하는 생존을 위한 최저필수요건이었기에 세가지 요건중 가장 핵심사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은행이 출자전환을 통해 대주주가 되기로 합의 했을 당시의 상황은 겨우 가입을 위한 협상을 이제 시작하는 수준이었을 뿐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고 결과가 말해주듯이 ⓒ의 조건은 충족되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 불합격 처분을 당한 한진해운은 당시 이미 개편된 3대 얼라이언스에 가입이 돼있는 상태였고 ⓐ와 ⓑ의 조건은 Brand, Asset, 운항실적면에서 더 앞서있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이고 보면 정책은행에서 지적하는 소위 ‘오너의 구조조정 의지 미흡’을 제외하면 글로벌 시장의 경악과 비난을 감수하며 벼랑 끝으로 밀어내야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내기 어렵다.

(3) 한진해운의 붕괴
글로벌 해운업계와 무역업계의 놀람과 비판 속에 정책은행이 주도하는 채권단은 지난 8월 말, 한진해운에 대한 유동성 공급중단을 결정했고 해당선사는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수많은 글로벌 하주, 포워더, 물류업계에게 엄청난 혼란을 초래한 시나리오가 막을 올린 것이다.

한국 정부의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된 정책은행이 주도한 8월 31일 조치로 한진해운선박은 압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세계 도처에서 항구에 진입하지 못하고 떠 도는가 하면 스웨즈 운하를 통과하려고 진입하던 선박(Hanjin Switzland)은 관례를 무시하고 운하통과료 선납을 요구받아 통과를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수천명에 달하는 하주의 연말 성수기를 겨냥한 계절특수화물들이 해상에서 표류하는 사태를 보면서 속수무책의 하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한진해운이라는 한국선사에 대해 경악과 함께 분노를 곱씹으며 한진해운선박에 선적한 자신들의 선택에 발등이라도 찍고 싶어했다.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하자 영국 BBC 방송이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를 두고 대담방송을 실시 할 정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고, 한진해운 사태로 인한 혼란에 당황한 미국의 하주단체가 집단으로 미국 상무부 앞으로 항의서한을 발송했는가 하면 미국 고위관리가 한국을 방문, 미국항만에서 발생한 물류대란의 조기 해결을 촉구할 정도 범세계적 관심사가 됐다.

1949년 대한해운공사법에 의거 정부가 설립한 대한해운공사의 후신인 한진해운의 경우 그간 네 차례에 걸쳐 주인이 바뀌었지만 공통된 사실은 모두가 정부의 정책에 따른 경영권 이관이었고 그때마다 회사는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른바 오너를 교체하더라도 기업을 유지시켰다는 점은 한국의 간판정기선사로서의 역할과 전략적 가치 때문이었으며 단 한차례도 오너의 부실이나 ‘미흡’ 등을 이유로 회사의 존폐가 거론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이제 한진해운은 왜 꼭 그랬어야 했던가 하는 세간의 의구심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배후의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이제 청산이라고 하는 마지막 절차를 거쳐 67년의 정통 국적 정기선사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4) 한진해운 사태의 시사점
타 모든 산업이 그렇듯이 해운산업도 기업 경영에 각종 리스크가 수반된다. NO Risk No Return! High Risk High Return! 이라고 하듯이 리스크란 반드시 위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생길 수 있는 양면을 지니고 있으며 어느 방향으로 가시화 되느냐에 따라 위험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리스크를 잘 관리해서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고 긍정적인 효과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 기업의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이고 기업단위의 R/M 영역을 초월해 산업단위 혹은 그 이상의 선에서 관리해야 할 상황 즉 위기에 이르면 이는 당연히 국가의 몫이다. 따라서 기업단위의 관리를 리스크 매니지먼트라 한다면 국가단위의 관리는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라 칭한다. 오래전 미국무장관이었던 맥나마라씨의 이야기처럼 위기란 관리되는 것이지 예방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듯이 위기란 시기가 문제일뿐 언젠가는 오기마련이다. 위기관리는 그 나라 관리의 질과 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만큼 관리가 잘못될 경우 그 결과는 고스라니 국민의 부담으로 남기 마련이다.

(5) 리스크와 위기관리
국제성이 가장 강한 글로벌 컨테이너 정기해운 역시 다양한 리스크를 수반한다. 우선 수요 공급을 좌우할 수 있는 시장의 리스크(Market Risk), 환율·금리·외환관리 등 자본시장의 동향과 관련된 금융 리스크(Financial Risk), 정치·안보와 지정학적 동향에 의한 정치적 리스크(Political Risk) 등 해운외적 요인에 의한 리스크가 있는가 하면, 리더십 리스크(Leader 혹은 Owner's Risk), 계약불이행 등 거래 상대방에 의해 초래될 수 있는 리스크(Counter-party Risk) 등 해운내적 리스크를 들 수 있다. 해운외적 리스크는 해운기업의 관리영역 밖의 사항이지만 정보와 데이터에 근거한 냉정한 상황인식을 통해 이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개별기업의 능력여하에 따라 그 충격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2015년부터 시작된 자구(self-rescue) 노력과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기 까지 전개된 부산스러웠던 과정을 통해 한진해운은 전기한 5대 리스크의 실체와 기업의 리스크 관리능력의 부재와 국가의 위기관리 실패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줌으로서 국제해운계에 커다란 교훈을 남겼다. 그 교훈이 나를 태워서 남을 밝게 해주는 촛불과 같은 살신성인의 가르침이었다면 나름 의미가 있겠으나 한마디로 꿩도 놓치고 매도 놓치는, 게도 놓치고 구덕도 잃어버리는 패착이자 졸작이었다면 이는 엄청난 불행이며 통탄할 일이다.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할 것 같지 않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초래하는 사건, 즉 한진해운 사태는 Black swan이었다. 세계적인 비판과 공분을 자초한 한진해운 사태를 통해 과연 한국해운은 무엇을 얻었고 또 잃은 것은 무엇이며 비싼 댓가를 치루면서 어떤 교훈을 남겼는지를 음미해 보는 것도 한국해운의 미래를 위해서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6) 한진해운 효과
①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글로벌 컨테이너 시장에 활력소가 됐다.
② 국제해운시장의 만성적인 공급과잉 해소에 기여했다.
③ 선두주자들의 시장점유율(M/S) 증가와 함께 실적개선에 도움이 됐다.
④ Spot 운임이 다소 개선되면서 글로벌 선사들의 연간베이스 운송계약에 도움이 됐다.
⑤ 한진해운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글로벌 하주들과 한국해운업계 자신인 반면 최대 수혜자는 한국해운업계와 경쟁관계에 있는 글로벌 선사들이다.

(7) 잃은 것은?
① 한국 정기선해운의 성장 동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② 한국해운의 신뢰도 추락으로 한국 해운업계 모두가 장기적 측면에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③ 한국 컨테이넌 선사는 적어도 향후 수년간 혹은 그 이상 글로벌 얼라이언스에 공식 멤버가 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차단됐다.
④ 해운대국 한국이 Top 10 해운국의 지위에서 밀려났다.
⑤ 한국의 해운산업에 대한 정책과 해운경영의 질과 한계를 노출시켰다.
⑥ 해운산업의 특수성을 간과한 채 정책위에 군림한 한국 채권단의 단견을 노출시켰다.
⑦ 부산항 물동량 하락으로 5대 물류 허브를 지향하던 성장정책이 벽에 부딪치게 됐다.

(8) 교훈
① 대마불사의 신드롬이 깨졌다.
② 벌크선사와 달리 컨테이너선사의 붕괴가 얼마나 혹독한지 정책당국에 각인시켰다.
③ 글로벌 선사는 한 국가의 정책이나 채권단에 의해 쉽게 정리 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④ 한진해운 사태가 경종이 돼 후속 M&A를 촉진했다(머스크라인과 함부르크수드).
⑤ 해외선사들이 준비되고 계획된 M&A를 하도록 유도하는데 기여했다(일본 3대 선사).
⑥ 선두주자들이 약체 선사와 함께 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얼라이언스의 함정과 수반되는 리스크의 실상을 체험하게 만든 교훈이었다.
⑦ 하주들로 하여금 소수, 대형화의 덫을 인식하고 선사를 선택함에 있어 운임이나 스페이스 보다 더 중요한 고려사항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⑧ 용선료나 기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Counter party risk임을 선주들에게 보여주었다.
⑨ 한국의 주식회사 체제하에서 특히 그룹경영체제하에서는 대주주의 책임이 상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주식 한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⑩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 필수적인 산업이라 하더라도 채권단 혹은 주무부서의 상황인식 부재 내지는 오판으로 그 명운이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9) 해외시각
한마디로 ‘Hanjin이 붕괴(Collapse)라면 HMM은 자칫하면 큰일이 날 뻔 했던 Near Miss였다’라고 했듯이 해외에서는 한진해운의 정리로 한국해운의 위기상태가 해소된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다만 해외에서 제기하고 있는 의문사항의 하나는 양대선사중 왜 브랜드와 자산은 물론 운항실적이 더 양호한 한진해운이었는가였다. 결국 이런 시각은 타 선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임과 동시에 또 다른 한진해운 사태의 재발가능성에 대한 세간의 우려가 불식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해외시장이나 해운전문가들은 한진해운을 도산시키고 그 다음회사를 구제한 한국정부의 조치에 대해 이는 「Major strategic, political and commercial mistake」, 「Political and commercial blunder」이며 그 원인을 한국 정부의 실수와 에고(ego)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 이유로 ⓐ한진해운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타 선사를 앞섰고(outperformed), ⓑ브랜드 가치도 높고, 자산도 더 양호했다(better assets). 그럼에도 ⓒ한진해운을 버리고 다른 선사를 생존시킨 것은 말이 안된다(makes no sense whatsoever!)라고 평가하고 있다(Alphaliner, Drewry, SeaIntel 등).

4. 하주 동향
이제까지 하주들은 글로벌 컨테이너 정기해운의 구조와 특성상 한진해운 정도의 글로벌 선사라면 문자 그대로 Too big to Fail로 믿어왔고 그런 글로벌 선사가 일거에 도산한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해당 정부가 구제하거나 아니면 도산을 예방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결단(?)으로 이른바 대마불사의 신드롬이 일거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상위선사라 하더라도 재정적으로 취약한 선사는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선사 선택에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하주뿐만 아니라 정부, 항만, 터미널, 육해상 분야에 참여하는 여러 관련자들 간에는 한진해운과 같은 사태를 방지하고 물류공급망(supply chain)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의 필요성에 대해 물밑에서 심도있는 논의가 계속됐다.

이러한 물밑 논의가 최초로 가시화된 것은 머스크라인의 하주들로부터 비롯됐다. 마침내 2M의 하주들은 2017년 물량수송을 위한 연간계약에 앞서 해당선사의 Marketing & Sales 파트를 상대로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와 관련된 자신들의 우려를 전달했고 머스크라인은 하주들이 원하는 안전장치를 조건부로 연간계약을 추진할 수 있었다. 동 안전장치는 당연히 향후 모든 선하주간 연간계약에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불문가지다. 한진해운 사태로 인한 쓰라린 경험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하주들이 건전하고 강한 선사(Strongest and Biggest)를 선호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될 수 없으며 이러한 쏠림현상이 장기화되는 한 약체 선사, 소형선사(Small player)들은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진해운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는 것 아니냐’하는 우려가 하주들로 하여금 한국선사를 기피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러한 현상은 아시아발, 특히 중국발 유럽향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 글로벌 선사들의 재무상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대형 하주들은 자신의 화물이 Multiple carrier로 분산운송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가능하면 Booking line의 선박에 선적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아가 선사의 재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운송계약시 재무제표 관련 데이터를 요구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으며 만일 특정선사가 재무제표 등 관련 데이터 제시를 거부할 경우 당연히 그 선사는 기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하주들은 정책보다도 채권단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Risk Management 차원에서 이제까지 관심 밖의 사항이었던 선사들의 채권단 성향까지도 살펴보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해외전문기관의 분류에 의하면 잘나가는 선사로 알려진 머스크라인과 OOCL이 요주의 대상(Cautionary zone)에 들어있고 나머지 모든 선사는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위험지구(distress zone)로 배정돼 있다. 한마디로 안전한 선사가 없을 정도로 글로벌 해운시장의 침체의 정도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제하고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것 즉, 지금이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것이 중론들이다.

5. H상선의 도전과 과제
(1) 얼라이언스 협상

정책은행이 출자전환을 통해 동회사의 대주주가 되기로 결정했을 당시 미결상태였던 얼라이언스의 가입문제는 단순히 구조조정의 가이드라인 차원을 넘어 동 회사의 생존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좌우하는 절대 절명의 과제였다. 그러나 한국해운업계 모두가 한국해운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성사되기를 고대했지만 결과는 안타깝지만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2) 하주의 벽
지난 12월 13일 Capital Market Day란 이름하에 머스크라인이 주기적으로 자사의 실적과 비전을 관련업계와 언론 앞에게 발표하는 자리에서 덴마크 GDP의 20%를 점하는 최대 그룹의 회장(Soren Skou)이 직접 나와서 최근 마무리된 2M과 한국선사간의 협상 결과를 설명하며 2M 고객들의 요청을 고려한 안전장치(safeguard)가 협상에 반영됐음을 확인했다. 즉 2M 고객들이 원치 않는 한 고객들의 화물을 2M의 멤버인 머스크라인과 MSC 이외의 선박에는 선적하지 않을 것임을 공개 천명함으로써 우회적으로 한국선사를 얼라이언스 멤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음을 명확히 했다.

몇 개월에 걸친 협의 끝에 12월 둘째주말로 마무리된 금번 협상의 결과물을 두고 한쪽에서는 협력기간을 3년으로 정한 ‘2M+H Strategic Cooperation’이라는 이름으로 비중있게 소개하고 있으나 다른 한쪽의 발표에 따르자면 이름에 걸맞지 않게 무언가 내실을 찾아보기 어렵다.

(3) 협상의 요지
사실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해외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는 Agreement의 내용을 인용하면
ⓐ 컨테이너 정기항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유럽, 아시아-미동안, 아시아-미서안의 3대 주력항로에 한국선사는 얼라이언스 이름으로 선박을 투입하지 못한다.
ⓑ 3대 항로에서 한국선사는 2M으로부터 Slot을 현금 베이스로 사서(buy slots for cash) 이용할 수는 있으나 2M은 한국선사의 선복을 이용할 의무가 없다.
ⓒ 아시아-북미서안 항로에서는 한국선사와 2M이 소규모의 slot exchange에 합의했으나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며 2M이 한국선사로부터 slot을 확보하더라도 그 이용여부는 2M 하주의 선택사항이다(상호구속력이 없거나 취약 의미).
ⓓ 2M이 취항하지 않은 제3의 항로에 한국선사가 취항 할 경우 그 사실을 고객(2M의)에게 안내하되 그 이용여부는 고객의 선택에 맡긴다.
ⓔ 내년 4월 서비스를 개시할 즈음에 아시아-유럽항로와 아시아 미동안에 취항하고 있는 한국선사가 현재 용선중인 선박 수척(척수는 발표되지는 않았으나 1만teu급이 될 것으로 추정)을 2M측이 인수해서(용선 승계?) 직접 운항하며 마케팅을 주관할 것이며 한국선사는 단지 이들 선박의 slot을 이용하는 slot buyer가 된다.

요약하면 한국선사는 전기한 3대 간선항로에서 얼라이언스와는 무관한 Outsider로 격하됐고 하주의 신뢰도가 회복되지 않는 한 한국선사가 2M의 화물을 운송할 가능성은 사실상 무망하게 됐다. 만일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양측간 몇 개월에 걸친 협상의 결과는 태평양 서안서비스에서 소규모의 구속력 없는 slot swap 협정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4) 평가
시기적으로 2016년 12월부터 2017년 4월까지 미주나 유럽항로에 취항하는 선사들과 대형 하주간에 운송계약(미주는 연간, 유럽은 3개월 단위)이 체결되는 이 중요한 시기에 하주들이 등을 돌리게 될 경우 이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과거에는 운임수준과 스페이스 문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왔던 하주들이 한진해운 사태이후 선사 선택시 고려하는 여러 항목들 가운데 선사의 재정적 안정성(Financial stability)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최상위 항목으로 부각되면서 글로벌 하주들은 좀 더 강하고 안정적인 선사로 쏠림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 선사의 신뢰도를 측정하는 기초 척도가 되는 얼라이언스 가입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경쟁 환경과 소수 대형화 되어가고 있는 글로벌 선사들의 재편과정을 감안할 때 얼라이언스 가입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임에 틀림없지만 얼라이언스 소속이라고 해서 생존이 보장된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것이 작금의 냉혹한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이 협정을 정상 얼라이언스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구체적 협상의 내용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는 정책은행의 지원하에 수개월간 진행해온 협상이 어떤 규칙이나 제약도 없는(No-holds-barred) 소규모의 slot exchange 수준에서 끝났으며 한국선사는 사실상 빈손(empty hand)으로 되돌아간 결과로 끝났다는 시각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협상이 얼라이언스에 가입하지 못한데 더해 한국선사의 미주항로에도 부정적 영향을 초래해 결국 성장전략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Alphaliner).

이러한 평가가 사실이라면 한국선사의 Capacity는 최소한 3년 동안 당초 목표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1만 3100teu급 10척과 1만 80teu급 5척을 G6에 투입하고 있는 한국선사가 내년 4월부터 이들 선박을 동원해 유럽노선과 미동안노선에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지속할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침체시황으로 볼 때 독자운항에 따른 엄청난 시장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적어도 알려진 구도를 전제로 할 경우 독자적으로 해외거점항구에 전용터미널을 운용할만한 최저 물량이 확보되지 않는 한 한국선사의 해외터미널 확보계획에도 차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5) 머스크라인의 대응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했나? 한진해운 사태가 결과적으로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시장에는 낭보가 된 것이 현실이며 선두주자들은 한진해운 사태 이후 전개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고무돼 있다. 운임은 소폭이지만 상승무드를 보이고 있고 주요항로에서 수급의 균형이 조금씩 개선돼가고 있으며 Spot 시장의 요율도 탄력을 받게 돼 연간계약에 도움이 되고 있다. 3대 얼라이언스중 최강의 그룹인 2M의 머스크와 MSC는 한진해운 사태 직후 발 빠르게 대체선박을 투입해 아시아-북미서안의 한진해운 물량을 선점함으로써 한때 한국선사를 유치해 보강하려 했던 태평양노선의 취약점을 기대치 않았던 한진해운 사태로 앞당겨 보강했을 뿐 아니라 한진해운 신드롬 덕택에 하주들이 Counter-party risk를 회피하기 위해 안전한 선사(safe-haven company)로 쏠림현상을 보임에 따라 3/4분기 소석율이 전기 대비 12%나 상승하는 등 머스크라인이야 말로 한국 정부의 결단(?)의 최대 수혜자임에 틀림없다

지난 2012년 머스크가 1만 8천teu의 T-E급 20척의 발주를 발표하면서 동사의 CEO가 내놓은 일성은 ⓐ시장의 리더가 돈을 더 벌어들이는 것이 관례다. ⓑ원가가 낮은 사람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 즉 원가 구조가 불리하고 자금 확보가 어려운 취약한 선사들은 시장을 떠나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어 최근에 조직과 함께 대대적인 그룹의 사업개편을 발표한 AP Moller그룹의 회장은 선사들의 통폐합은 지속돼야 하며 하주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지하듯이 머스크 라인은 정도경영과 함께 공격형 경영을 펼치는 자타가 공인하는 시장의 선두주자이며 동사의 전략여하에 따라 시장의 경쟁구도가 좌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체력전이 난무하는 국제경쟁 시장하에서 그들에게는 적자생존의 원칙만 있을 뿐이다.

6. 실패한 구조조정, 흔들리는 원칙론
2015년 12월 30일 경제부총리가 재정난을 겪고 있는 조선, 해운산업의 지원을 위해 12억 달러 상당의 기금을 조성, 선박 건조자금으로 배정하고 건조된 선박은 BBC 형태로 선사에 제공할 것이며 공적기금 사용의 기본원칙은 이른바 시장논리에 기반을 둔 ‘Market based solution’임을 강조하고 개별회사가 상응하는 책임의 몫을 수행하지 않는 한 그런 회사를 구제하기 위해 공적기금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한국의 경제사령탑이 해운시장을 향해 시장논리를 내세운 최초의 발언이었다. 그 이후 2016년 8월 31일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한 직후 윗선(?)에서 나온 메시지는 상사베이스에서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어 9월에 개최된 국회 청문회에서도 오너가 있는 기업의 구조조정은 오너의 책임하에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원칙이라고 주무장관이 답변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한국의 해운정책은 철저하게 민간베이스, 상사베이스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10월에 발표된 정부의 해운ㆍ조선산업 지원책의 내용을 보면 무언가 혼란스럽다. 재경부에 의하면 11조원을 조성해 2020까지 250척의 선박을 건조하고 해운산업을 위해 6조 5천억을 조성, 선박을 매입해 리스백 해준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본금 1조 규모의 가칭 한국선박주식회사를 설립하는데 더해 캠코가 추가로 1조 9천억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것. 이 말대로 실천된다면 19조 4천억원이라는 사상초유의 거대 자금을 동원해 조선과 해운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의 국정혼란 사태에 비추어 볼 때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해 질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기조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위기에 처한 해운산업을 두고 시장논리를, 오너의 전적인 책임을 거론하며 한마디로 민간분야의 일로 선을 그었던 것이 불과 몇 주전이었는데 사상 초유의 거대자금을 동원해 위기의 해운을 지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이번 한진해운 사태를 통해 확인된 것 중 하나는 정부의 해운정책 기조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정부가 처리한 한진해운 사태는 전세계의 Customer들과 협력업체들의 실망, 공분과 함께 한국해운의 신뢰도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정책부재와 준비 안된 구조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한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실패한 정책이었다면 국영정기선사를 단일화 시킨 중국, 일정표에 의거 시간을 두고 Japanese trio를 하나로 묶기로 한 일본의 민간베이스 결정은 글로벌 공급체인이 환영하는 가운데 정기선해운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모범사례였다.

7. 마무리
2016년 4월 당시만 해도 4대 얼라이언스의 정식 멤버 자격으로(CKYHE와 G6) 태평양, 유럽항로에서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했던 한국의 양대 컨테이너 선사가 2017년 4월에는 정책의 침묵과 금융당국의 실수로 제 7위의 한진해운은 사라지게 됐고 그 후유증으로 당시 16위의 나머지 선사도 개편된 3대 얼라이언스의 경쟁대열에서 밀려나게 됐다. 본래의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위기관리의 실패로 야기된 한진해운 발 먹구름이 잔류해야 할 다른 선사에게까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부담을 초래해 입지를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

선두주자들도 ULCs→공급과잉의 심화→운임경쟁 과열→시장의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병폐를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ULCs 를 고집하는가? 이제 그들은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ULCs를 준비해놓았기 때문에 이제 후발주자들이 따라올 수 있는지 없는지를 주시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약체선사들이 탈락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돌발 변수가 없는 한 2017년 4월이 되면 글로벌 얼라이언스의 명단에서 한국선사의 자취는 사라지게 된다. 한진해운 사태가 초래한 일파만파의 종점이 한국 컨테이너 정기해운사가 글로벌 선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싹을 스스로 도려낸 결과가 됐고 결국 한국 컨테이너 선사는 역내선사(Regional Carrier) 혹은 틈새시장(Niche)으로 만족해야 하는 2급 선사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 같다. 더구나 그것도 정책의 실수에서 비롯됐다면 이는 한국해운계의 장래를 위해서도 불행하기 짝이 없는 사태다.

문제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장자를 사지로 밀어 넣었더라도 적통을 이어갈 수 있는 강건한 대타가 있으면 한때의 불행으로 접어 둘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지 못할 경우 문자 그대로 그 가문이 소멸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대를 이어온 조상들로부터 부여받은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세계 컨테이너 선사 모두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 시장에서 유독 해운대국이라고 자부해왔던 한국의 양대 컨테이너 선사를 이처럼 참담한 상황으로 내몬 한국정부의 결정에 대해 국내외에서 모두가 비판적인데도 금융당국자는 여전히 원칙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결과가 과연 한국 정부가 택한 원칙의 소산인가? 과연 이런 결과를 보고도 그것이 정부가 지향하는 시장논리이고 구조조정의 원칙이라고 강변할 것인지, 어떤 원칙이 어떻게 지켜졌으며 그 원칙을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지 궁금하다.

역사에 만약(if)이란 없다고 하지만 2016년 7월 당시만 해도 한국의 양대선사는 정책은행의 주도하에 자연스럽게 합병의 수순을 밟을 수 있었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대주주가 사실상 경영권을 포기했고 외견상 한국정부의 기본 정책은 국적 컨테이너 선사를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타국이 했던 것처럼 Korea Champion을 태동시켰더라면 세계 제6위의 강력한 컨테이너 선사로 부상할 수 있었고 후일 정산을 해보아야 알겠지만(가능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며 이 엄동설한에 수백명의 가장을 길거리로 내모는 가슴 아픈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구조조정이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기 위한 창조적 파괴라야한다. 과연 우리는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무엇을 얻어냈고 한국 해운의 미래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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