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사태 불똥 튄 근해항로>

한진해운 파탄의 후폭풍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요즈음 우리 국적선사들은 해외 거래선들에게 전화를 하기가 겁이 날 정도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외국의 파트너들 조차 “코리아 선사들은 믿지 못하겠다”며 아예 비즈니스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한진해운으로 인해 무너진 신뢰가 우리 국적선사들에게는 물론, 연관 산업계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대한민국-코리아’의 신용도 추락 사태에다가, 대통령 탄핵과 내수경기 침체 등의 마이너스 요인들이 엉겨 붙으면서 ‘한국해운’호는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예상은 한 것이지만, 한진해운 사태의 불똥이 최근에는 근해선사들에게까지도 튀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근해선사들이 취항하는 아시아역내항로는 원양항로 선사들의 침범과 취항선박의 대형화로 인해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한진해운이 파탄상태에 빠지자 이같은 움직임이 더욱 노골화 되어 근해항로 선사들은 더욱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지난해 8월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파국으로 치닫자 여기에 놀란 우리 정부는 서둘러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는 것을 내놓았고, 그 중에는 ‘근해선사들의 대형화를 유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정부가 모두 11개의 근해항로 컨테이너 선사들을 3~5개의 중견선사로 집약화 하여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이같은 ‘방안’에 부응이라도 하듯, 지난 1월 3일 현대상선과 근해항로 2개선사가 아시아역내항로에서 협력하자는 얼라이언스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것이 업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얼라이언스에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근해선사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향후 한진해운의 일부 서비스를 물려받은 SM상선도 근해항로 서비스를 강화할 것이 틀림없는 상황이라 아시아역내항로에서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혼란한 양상이 연출되는 것은 상당 부분 우리 정부당국이 제대로 된 정책방향을 제시하지 않은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지난해 10월말 해양수산부가 기재부, 산업부, 금융위 등과 함께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해운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좋은 방안임에도 불구하고 서둘렀기 때문인지 미흡한 점이 여기저기 발견이 되고 있다.

이 중에 가장 큰 문제점은 해운산업을 정기선해운과 부정기선해운으로 나누어 보지 않고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고 대책을 세웠다는 점이다. 정기선해운만을 따로 떼어내어 문제점과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한진해운의 파산이라는 큰 아픔을 겪고 난 후임에도 불구하고 정기선해운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이 명확하게 세워지지 못한 것이다. 사실, 정기선해운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이 제대로 세워졌더라면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해운정책의 문제점을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부당국이나 심지어 해운업계까지도 정기선해운과 부정기선해운을 나누어 보지를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정기선해운을 부정기선해운과 동일시하여 대처함으로써 큰 낭패를 본 것이 바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사태였다. 정부가 먼저 원양컨테이너 정기선항로의 중요성을 좀 더 명확히 파악만 했더라도,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대한해운이나 STX팬오션의 법정관리와 비슷한 것으로 오판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라도 정기선 해운정책에 대한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다시 짜고, 그에 따라 구체화된 로드맵을 새로 그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의 정기선해운을 어떤 모습으로 발전시켜서 이 대한민국을 세계 톱 클래스의 해운강국으로 부흥시킬 것인지 명확한 방향 설정이 먼저 돼야만 한다.

물론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 5위권 초대형 원양선사를 육성하고, 근해항로에서는 3~5개의 중견선사를 집중 육성한다”는 큰 방향이 제시되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것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모호한 목표였다. 더구나 한진해운이 북미항로 서비스를 개별 매각하는 상황에서 현대상선이 아닌 대한해운이 인수자로 결정돼 정부의 방침과는 애초부터 크게 어긋나는 사태가 전개되고 말았다.

이런 것을 생각해서라도 정기선해운에 대한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새로 시급히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깡그리 무시하고 새로 세워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당국이 이 방안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정기선해운 부문만을 떼어내어 보다 구체화되고 실현 가능한 계획으로 새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기선해운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정한 다음에, 그에 맞게 선사들을 어떤 식으로 육성해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정기선항로별로 원양항로와 아시아역내항로, 한중항로, 한일항로 등 근해항로가 어떤 식으로 정립이 돼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정기선해운 정책은 물론 한국의 정기선해운 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을 근간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원은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의 자구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전제 조건으로 해야 할 것이다. 선사들이 하주나 조선소와의 상생 협력을 밑바탕으로 해서 지원하는 방안도 물론 강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정기선항로 별로는 명확한 구분을 하고 각각의 항로별로 맞는 정책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얼라이언스나 M&A는 강요된 것이 아닌, 자발적이어야 하고, 개별적이 아니라 전체의 큰 로드맵에 따라서 이뤄져야만 한다.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의 혼란양상이 빨리 종식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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