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학교 교수(한국해법학회 회장)

▲ 김인현 교수
2016년 9월 한진해운 물류대란에서 하역회사가 하역작업을 거부함으로써 하역작업이 지연돼 화주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이는 한진해운의 채무를 증대시켜 한진해운 파산의 한 원인이 됐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정기선운항에서 정시성확보에 대한 화주들의 신뢰도 하락을 초래했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지난 9월부터 하역비 지급을 보장하는 보험이나 기금제도를 만들자고 주장해 왔다. 그렇지만 진척은 아주 느리다. 그간 일간지에 두차례, 전문지에 두 차례, 각종 학회(3월 10일 제2회 항만물류법세미나에서 다시 발표함) 등에서 이의 필요성을 강조해왔지만 관련 당사자들은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THE Alliance도 자체에서 회원사가 법정관리시 얼라이언스 자체에서 화물의 인도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보장제도를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정기선사는 얼라이언스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진해운 사태로 정기선 운항시 정시성확보에 대한 신용이 떨어진 것에 더해 얼라이언스 내부의 자체보장체제도 갖고 있지 못하므로 화주로부터 우리 정기선사는 더 선호되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이런 낮은 신용을 만회하기 위해는 운임을 낮추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가 경쟁력을 잃는다는 의미가 된다.

정기선은 부정기선과 다르다. 정기선사는 선박의 출발·도착일을 미리 공표한다. 즉, 정기선사는 운송물이 정시에 출항하고 정시에 도착하는 것을 화주들에게 미리 약속하는 것이다. 운송인은 운송계약상 약정된 의무를 이행해야한다. 하역작업도 운송인의 의무중의 일부이다. 운송인은 불가항력적인 사항을 제외하고는 인수한 운송물은 안전하게 약속된 장소에 수하인(수입자)에게 인도해주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한진해운 사태에서 불행히도 이러한 정시성은 깨어졌고 한진해운은 운송계약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됐고 한국 정기선사의 신용은 훼손되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정기선사들은 이러한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을 화주들에게 해주어야 한다. 화주들은 한진해운 사태 이후 정기선사들의 재정 상태를 운송인 선택의 중요한 요소로 본다고 한다. 이러한 화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보장장치를 만들자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마지막 항차의 운송물 하역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수출자, 수입자는 물론 무역 및 제조업 관련자들에게 불측의 큰 피해를 야기하므로 이는 공익적인 성격을 갖는다. 회생절차개시 이후의 하역비는 공익채권이 돼 회생절차에서 처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역회사가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으면 하역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운송인으로서는 현금을 내는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다른 정기선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갈 때 마지막 항차의 하역비는 우리 정기선사들이 마련한 기금제도를 통해 그 지급을 보장해주자는 것이 필자의 아이디어이다. 법률에 의해 하역회사는 기금운영자에게 직접 하역비를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기금으로 하역비를 대신 지급한 기금운영자는 회생절차에 하역회사를 대신해 공익채권을 가지게 된다(지급금액을 상당부분 회생절차에서 회수할 것임).

기금을 얼마나 미리 모아 두어야하는 지가 관건이 된다. 앞으로 정기선사의 회생절차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5000teu 선박 50척을 운항하는 경우에 하역비는 한 항차에 200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산된다. 200억원 모두 적립시켜두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법률로서 기금을 갹출해 운용할 의무를 정기선사들이 부담하도록 하면, 먼저 기금운영자가 하역비를 차입해 지급하고 사후적으로 회원사인 정기선사들에게 배당되는 몫만큼만 갹출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기금(IOPC FUND)의 추가기금 제도에서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추가기금에 가입했지만 아직 추가기금이 적용되는 사고는 없었기 때문에 기금을 갹출당한 적은 아직 없다. 기금의 운용방식은 대통령령에 근거를 두어 회원사들이 규약을 만들고 기금갹출에 대한 의무를 부담하는 형식이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법안은 아래와 같다.

해운법 제27조의 2

① 외항정기화물운송사업자는 회생절차개시 마지막 항차의 하역비 지급을 보장하는 보험, 공제 혹은 기금제도에 가입해야 한다.

② 하역회사는 제1항의 하역비에 대해 보험자, 공제업자 혹은 기금운영자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다.

③ 하역회사는 제1항의 제도에 가입한 자가 하역작업을 요구한 경우 이전의 미지급 하역비에도 불구하고 지체없이 하역작업을 해야 한다.

④ 제3항에 따라 하역업자에게 체불임금을 대신 지급한 보험업자, 공제업자 또는 기금운영자는 그 지급한 금액의 한도에서 해당 운송인에 대한 하역회사의 하역비청구권을 대위(代位)한다.

⑤ 제1항의 운영에 대해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 제도의 도입에는 몇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마지막 항차 이전의 항차에서도 밀린 하역비가 있을 터인데 이것도 보장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공익적인 성격을 찾기가 어렵고 정기선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이는 포함시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항차를 제외한 밀린 하역비는 정기선사들이 회생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현금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회생이 어렵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이런 조치는 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보험제도로 하면 되는 것은 아닌지? 책임보험이나 이행보증보험으로도 이론 구성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기금에 비해 보험자의 면책이 가능할 수 있고 보험사고가 없음에도 보험료가 매년 지급돼야하는 점이 불리하다. 기금제도는 사고가 없으면 기금이 갹출될 일이 없기 때문에 정기선사들에게 현실적인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외국의 하역회사들에게 마지막 항차의 운송물은 반드시 하역하라는 의무를 부과시킬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이 제도를 국제조약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제도를 국제조약으로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마지막 항차의 하역비가 보장이 된다면 그 선박을 이웃의 부두에 접안시켜 하역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도가 없는 것 보다는 화주들에게 우리나라 정기선사들의 신용을 회복시켜주는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다.

현 단계에서 완벽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 정기선사들의 신용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이 제도의 도입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를 업계에서 하루속히 시작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공익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므로 한국해법학회가 이 작업을 주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2017.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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