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중형조선 속 태우는 RG에 주목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로 조선업은 어려움을 겪는다. 금융위기 직후 전세계 발주량은 1708만cgt로, 199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다. 경기불황의 직격탄을 받은 한국 조선업계는 2009년 11월, 2000년 일본을 앞지른 이후 10년 동안 내준적 없던 1위 자리를 중국에게 내주고 만다.

이에 금융권은 규모가 크고 위험부담이 높아져 중소조선소에 RG발급을 미루게 된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했을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 주기로 약정한 일종의 지급보증이다. 선주는 RG발급 확인 후 대금 지급을 시작하고, 조선사는 이 자금으로 원자재 확보에 나서기 때문에 원활한 선박 건조를 위해서는 RG발급이 매우 중요하다.

어렵게 수주를 하고도 RG발급 지연으로 속을 태우게 되는 조선소는 까다로워진 RG발급 조건을 맞추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이에 한국해운신문은 현재 조선업계가 겪고 있는 RG발급 문제의 현실을 알아보고자 한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소 관계자는 영업하기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채권단은 저가수주는 안된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원가보다 높은 선가로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계열 조선소는 저가수주로 많은 일감을 가져간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당장의 일감을 가져올 수 있는 저가수주를 할 수 없으며 대기업을 등에 업은 조선소와는 경쟁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금융권이 조선사들의 저가수주로 인한 경쟁을 막고자 수주가격이 원가보다 높아야 RG를 발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저가수주에 대해 엄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시스템적으로 저가수주를 막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RG발급을 위한 금융권의 요구

어렵게 수주를 하고 조선소는 RG발급을 위해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진행하게 된다. 지난 5월 그리스 선주로부터 11만5000dwt급 원유운반선을 수주한 성동조선해양에게 수은은 ‘경영 정상화 및 선박건조에 노조가 적극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긴 노사협약서를 요구했다. 노조는 사측과 협의 끝에 노사협약서를 전단했으며 선주 측은 건조 계약 후 60일 내에 RG발급을 요구했고 기한 마지막 날인 7월 17일 가까스로 RG를 발급받았다. 앞서 STX조해양 역시 4월 수주한 1만1000dwt급 탱커 4척에 대한 RG를 수주 7주만에 발급받은 바 있다.

이처럼 RG발급이 까다로워진 것은 금융위기 이후이다. 조선업이 부흥기 시절 은행은 무분별하게 조선소에게 RG를 발급해줬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에는 외국 은행들도 찾아와서 자신들의 은행에서 RG를 발급받으라고 영업을 하기도 했다"며 회고했다.

실제로 해운산업의 호황과 더불어 조선업도 호황을 누렸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에 처하면서 RG발급은 까다로워졌다. 지난해 11월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글로벌무역통상학과 이정선 교수 발표한 '선박건조계약에서 독립적 은행보증으로서 선수금환급보증에 관한 연구'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 금융권의 경쟁적인 RG발급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금융위기 전까지 해운·조선업의 호황으로 시중 은행들은 계약금의 0.3~0.4%에 달하는 RG보증료를 챙기기 위해 경쟁적으로 RG를 발급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당시 중소조선사의 경우에는 신용도에 따라 보증금액의 0.5%~2%라는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받으면서 RG를 이용했으나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체의 계약 불이행으로 시중은행은 선수금을 반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에 시중은행을 포함한 국책은행, ECA(수출신용기관)인 무역보험공사 또한 선수금환급보증 신규 발행 축소 및 중단하는 조취를 취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아울러 현재 조선업 경기불황이라는 조건 속에서도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에 성공하고 있으나 RG발급을 꺼려하는 시중은행이 제때에 RG를 발급해주지 않음으로써 계약체결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RG발급을 받았더라면..”

지난 2015년 12월 SPP조선소 근로자들은 사천시청 브리핑룸에서 RG발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SPP조선은 최근 호주 2척, 그리스 4척 등 총 6척을 수주했다"며 "국내 조선소 가운데 유일한 흑자를 기록한 SPP조선이 RG발급이 되지 않아 해체될 위기에 놓여있다"고 금융권에게 지원을 호소했다. 실제로 SPP조선은 2015년 3분기에 영억이익 744억원으로 상반기에 이어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2015년 3월 4850억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한 뒤 4월 SPP조선의 추가 수주를 금지시킨다. 4월 선가 기준으로는 수주를 할수록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수주물량이 소진되는 2016년 하반기까지 수주를 막아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자회견에서 밝힌 총 6척 외에도 8척의 탱커를 수주했던 SPP조선은 RG발급 안건이 채권단 회의에서 부결처리 되면서 수주계약이 취소되게 된다.

당시 SPP조선 관계자는 "채권단이 손익금을 따져 저가수주가 아닌 것을 검증했음에도 RG발급을 해주지 않았다. 채권단 내부에서도 일부는 RG를 발급하자고 했지만 일부는 반대했다. 그 당시 수주한 선박에 대해 RG발급을 해줬다면 조선소 가운데 가장 빠르게 흑자 전환한 SPP조선은 보다 나은 안전경영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확인된 바로는 2015년 SPP조선이 수주했던 선박 가운데 단 한건의 RG발급은 없었다.

지난해 말 마스텍중공업도 해수부가 발주한 1534억원 규모의 어업지도선 6척(1500톤급 4척, 1470톤급 2척)을 조달청의 국제입찰과 10일간의 적격심사를 통해 최종 낙찰 받았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0조 3항에 장기계속계약의 경우 제1차 계약체결시 총 제조 계약금액의 100분의 10이상을 계약보증금으로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의 계약이행보증을 받지 못해 정부 발주 계약이 취소됐다.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은 헤비테일 결제방식이 일반화되면서 조선소는 선박 건조 초기에 자금확보가 필요해진다. 그러나 금융권으로부터 자금확보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소조선소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일본·중국 국수국조 정책

일본과 중국은 국가가 주도로 자국내 선박발주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国输国造(국수국조)정책으로 중국 수출입 화물을 중국 선박으로 수송하고 선박을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도록 하는 조선산업육성책으로 조선업과 해운업의 유기적인 상생을 추진하고 있다.

KMI가 발표한 동향분석에 따르면 중국 교통운수부는 폐선보조금 제도를 통해 조선기자재 분야 일자리 창출로 조선업 발전에 기여하고 자국 선박의 자국 조선소 발주를 통해 저가수주 방지 효과를 보고 있다.

일본은 조선해운이 포함된 해사 클러스터 구축을 통해 상호간의 경쟁력 재고를 도모하고 있다. 일본 해사 클러스터는 결합 강도가 높아 극심한 경기변화에도 밀접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며 내부에서 우선적으로 수요를 모색하는 국수국조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도 상호간 자본투자 연계 추진, 클러스터 협력 강화, 정책 당국의 참여 등 조선해운 상생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건조선의 75%를 자국에 발주하고 조선소는 건조의 필요한 기자재 95%를 자국 기자재 업체에 발주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해결책은 정부 정책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내려가고 있다. BIS비율이 내려가 있으니 건전성에 의심을 받고, 정부도 국책은행에게 건전성을 올리기 위해 압력을 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조선소에 대해 익스포저(위험 노출액)을 늘려가기는 어렵다. RG발급에 대해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시중은행은 조선소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상황으로 신용등급이 상승한다고 해도 당분간은 다시 조선업 시장에 다시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며 "결론적으로 정부가 요건을 만들어 줘야한다. 정책적인 지침이 있다면 국책은행에서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국책은행에 대한 자본비율 개선이 이뤄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저가수주에 대해서 금융권 관계자는 "대형 조선소에 대해서 저가수주를 눈감아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엄격한 원칙하에서 심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질적인 정부의 대응 정책 필요

정부는 지난달 21일 일감부족으로 인해 가동 중단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관련 지역경제 충격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확정된 정책은 선박 신조 수요발굴과 지원, 조선협력업체 및 근로자 지원, 지역경제 충격완화 및 지원 등이다.

24억달러의 선박펀드를 활용해 국내 해운사의 신규 선박 발주를 유도하고 중소조선사 금융애로 해소반을 설치, RG발급을 원활히 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대책에 대해 업계는 부정적인 반응이다.

군산시의회는 "정부가 발표한 정책에 대해 우는 아이 달래기 식의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가동 중단을 기정사실화 하는듯한 실질적인 알맹이가 없는 임시방편적인 대책이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군산시민들의 희망이고 심장과 같은 소중한 기업이다. 30만 군산시민과 200만 전북도민 그리고 조선업 종사자들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조속한 정상가동이다"라며 "정부는 임시방편적인 대책들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조속한 정상가동의 핵심적인 지원 대책으로 확정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도 “조선소 가동중단은 일감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이다. 현재로서는 일감이 회복인 된다고 해도 과거 호황기 시절만큼 일감이 증가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일감이 생겨야 RG발급 지원도 가능한 것이 아니냐, 군산조선소는 RG발급의 어려움으로 가동중단 한 것이 아닌 일감이 없어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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