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동경憧憬, 그리고 성취

내가 중학생 때, 국어교과서에 모윤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란 시가 게재되었다. 읽고 또 읽었다. 구구절절이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내 가슴에 애국심이 꿈틀거리기도 했다.

가슴에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달라 일러다오.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1950년 8월 그믐, 시인이 6‧25전쟁 중에 광주 외딴 골짜기에서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대한민국 육군 소위의 죽음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시詩다.

시인은 1948년 달빛 교교한 광릉수목원에서 UN한국위원회의 크리슈나 메논 단장에게 대한민국 건국의 당위성을 설득했다. 시인은 건국의 모퉁이돌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고서 시인은 파리UN총회에서 대한민국정부 대표단장인 장면을 비롯하여 조병옥, 정일형, 김활란과 더불어 신생독립국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그리고 「렌의 애가」 등 많은 문학작품을 발표하며 한국문단을 이끌었고, 국제PEN클럽 한국본부를 창립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 그분을 흠모했고 그분의 시를 흠송하며 PEN을 동경하는 문학 소년이 되었다. 고교생일 때 국어시간이 너무 좋았다.

허나, 태평양전쟁과 6․25 전쟁의 상흔傷痕이 가시지 않아 가난에 허덕이던 때라 문학계열로 진학하지 못하고 국비로 상선사관商船士官을 양성하는 대학으로 갔다.

문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음이지 전공과목을 제쳐둔 채 대학 교양 국어를 탐독했고, 「현대문학」을 구독하며 박경리의 ‘표류도’와 ‘불신시대’를 감명 깊게 읽었다.

하늘의 별을 관측하며 대양을 횡단하는 항해학, 잔인한 태풍 진로를 알려주는 해양기상학, 망망대해서 일엽편주에 불과한 거대선박의 안전을 위한 선박운용술 등 전공과목도 이제 와 돌이켜보면 문학과 무관하진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공무원으로 발을 내딛어 격무를 감당하느라 문학은 깜박 잊고 살았다. 은퇴하고서, 적막강산을 홀로 외롭게 방황하는 나에게 글쓰기가 나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35년간 해운행정을 하면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몇 권의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서, 지나간 내 인생을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수필교실을 찾아 문학적 소양과 기법을 배웠다.

2011년 수필로 문단에 등단했다. 2013년 ‘저녁노을 바라보며’란 해양수필을 발간했다. 이어 금년 2월에 ‘인생은 지구별 항행이다’란 수상록을 발간하고서 곧바로 PEN클럽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2017년 5월 2일 국제PEN클럽으로부터 클럽회원증이 나에게 송달되었다. 65여년 만에 동경이 성취되었다. 자랑스러웠고 크나큰 영광이다. 더욱이 80세를 넘긴 늦깎이로 국제PEN클럽 회원이 되었으니 더욱더…

‘PEN회원은 인종, 계급, 국가의 대립이나 편견과 증오를 배제하고 상호존경과 이해로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란 숭고한 PEN헌장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문학은 문학 동네 선비들의 전유물일까? 아니다. 나 같은 사람들,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노도怒濤와 대결하는 선원들, 오뉴월 뙤약볕에서 콩밭 매는 아낙네들, 전국 방방곡곡 시장을 활동무대로 행상을 하던 보부상들, 그리고 난장에서 육자배기를 질퍽하게 부르던 장돌뱅이들에게도 문학이 있을 것이다.

하여, 문학은 역사와 철학, 종교와 예술, 더 나아가 전쟁과 혁명까지 세상 모든 것을 품은 인류의 바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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