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사태 1주년에 부쳐>

오는 8월 31일이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死地로 들어선지 꼭 1주년이 된다. 모든 해운인, 아니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마치 우리 한국해운 전체가 망한 것인 양 슬픔을 삼키며 안타까워했던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한지 벌써 1년이 다 된 것이다.

국제적인 물류대란을 불러일으키고, 나중에는 최순실 사태와도 연관지어져 우리 경제를 뒤흔든 한진해운 사태는 많은 피해자들과 국가경제적인 손실만을 남기고 지난 2월 한진해운에게 최종적으로 파산이 선고됨으로써 점차 잊혀져가는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다행히 한진해운 사태 1주년을 맞아 한국선주협회를 중심으로 한진해운 사태가 남긴 교훈과 앞으로 유사한 사건 발생시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白書(백서)’를 만든다고 하니, 그나마 우리 해운업계 長子의 제삿날을 챙기는 열의가 가상하기만 하다.

한진해운 사태는 우리 한국해운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지 한국해운신문이 먼저 사용한 말이지만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2016년 8월 31일은 한국해운이 망가진 海運 國恥日(국치일)”이라고 부를 만하다. 부끄럽게도 잘못된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死線(사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던 해운인들 조차도 그저 빤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정황이었다. 결국 한진해운은 올해 2월에 청산이 결정됐고, 이제 그 海運 國恥日 1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우리 해운인들은 다시 슬픈 弔詞를 읊지 않을 수가 없다.

실로 한탄스러운 것은 이제 한진해운을 다시는 부활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 사태를 분석하고, 그 원인과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이런 사태를 일으킨 세력들을 발본색원하여 벌을 준다고 해도 결국은 이미 ‘사후 약방문’일 뿐이다. 백서를 작성하고 이 같은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할지라도 그것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진해운 사태에 대한 바른 이해를 추구하고 잘잘못을 따져 보는 것은 이 사태의 중대성에 비추어 이것이 결국은 한국해운의 발전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사태는 한진해운의 부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한진해운이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은 정부, 특히 금융당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금융정책 당국, 특히 청와대와 금융위원회가 잘못된 잣대를 적용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양정기선항로 사업자인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내몰아 결국은 파산시킴으로써 국제물류대란을 일으키고, 국민경제에 많은 피해를 입혔으니 그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해운산업의 주무당국인 해양수산부는 한진해운 사태 해결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바보처럼 허송세월만 보냈으니 책임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공통된 이해이다. 결국 해운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정책적 판단 미스를 범한 금융당국과 이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해운정책 당국이 한진해운 파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금융위와 해수부 등의 정책 판단 미스가 제일 큰 문제라는 지적이 있지만, 한진해운 사태를 막지 못한 데는 해운업계의 책임도 일부 있다고 본다. 한국선주협회를 중심으로 한진해운 사태를 막아야 한다며 세미나 등을 통해 목소리를 높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노력들은 그다지 파급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한진해운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한진해운을 부활시킬 수 있는 방안은 마련되지 못했고,  그저 안타깝게 한진해운의 최후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반 경제신문은 물론이고 해운관계 전문언론들 조차도 한진해운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여론을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해운 관련업계의 나약한 모습이 결국은 장기불황에 찌들어 자신도 모르게 관습화 되어버린 ‘패배의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해운업계는 2008년말부터 시작된 해운업체들의 파산 도미노 현상으로 인해 스스로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뭘 해도 잘 안 된다는 ‘패배의식’이 내부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해운업계가 패배의식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정황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2008년부터 지속된 장기 해운불황은 1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국적 벌크선사들은 거의 대부분 회사 문을 닫거나 법정관리나 분사 등을 통해 간판을 바꾸어 달수밖에 없었다. 전통의 벌크선사 가운데 아직도 변고가 없이 명맥을 유지하는 선사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게다가 세월호 사태, 김영란법 발효 등으로 위축에 위축을 거듭했고, 지난 보수 정권 10년 동안 정책적으로 철저히 소외당함으로써 업계는 폐허처럼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대 선사들이 하나 둘 무너졌고, 결정적으로 한국 대표선사인 한진해운까지 패망하면서 우리 해운업계는 정말 해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로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해운산업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을 끊임없이 요로에 요청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우리 업계가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제대로 된 정책 건의나 제대로 된 궐기대회 한번 해보지 못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패배의식을 계속 가지고 있는 한 ‘한진해운의 부활’이나 ‘한국해운의 재건’은 이뤄질 수가 없다. 과거의 잘못과 지난 정책 판단 미스에 대한 원망만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한국해운을 건설해 나가기는 어렵다. 해운업계는 한시라도 빨리 패배의식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업계 의식을 고양해 나가야만 한다. 마침 새 정부가 출범한지 3달밖에 안된 상태이므로, 이제 폐허상태를 정리하고 새롭게 城을 쌓아나가야 할 때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도 과거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쪽 보다는 해운산업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쪽으로 초점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한진해운 사태 1주년을 맞아 이제 해운업계도 새로운 정신운동을 시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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