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회한悔恨

「회한悔恨」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뉘우치고 한탄함’이라 했다. 또 한탄恨歎을 찾아보았다. ‘원망을 하거나 뉘우침이 있을 때에 한숨을 쉬며 탄식함’이라 했다.

하여, 회한은 인생의 장강長江을 건너와 되돌아갈 수 없는 황혼의 노령老齡에 잘못을 뉘우친들 소용없고, 남을 원망한들 소용없어 탄식이 절로라는 것일까?

연부역강年賦力强하다면 지난 과오를 훌훌 털어버리고, 각오를 새롭게 하여 재출발하면 될 걸 인생 황혼기에 그렇질 못해 뼈 절인 회한의 탄식이 절로 나오리라.

온갖 영광을 다 누렸던 지혜의 솔로몬왕도 ‘헛되고 헛되도다’라 탄식했다. 가슴 속에 맺힌 회한을 먼지 털듯이 훌훌 털어버리지 못해서였을까? 강물이 아무리 흘러도 바다를 채울 수 없듯 그의 욕망을 채울 수 없어서였을까?

나에겐 종교적 심성이 있었는가보다.

철없을 때, 사월초팔일이면 어머니 따라 절에 가 줄줄이 매달려있는 수많은 연등 밑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놀았다. 어머니께서 매달아둔 연등들 중 하나를 가리키며 ‘이 연등은 네 연등이다’이라 하셨다. 나는 내 연등으로 어두움을 밝히고 극락세상을 찾아가리라 생각했다.

가족 모두가 정성을 다해 명절차례와 기제사를 모셨다. 일주일 전부터 집안을 청소했다. 재로 놋그릇을 뻔적이도록 닦고 제기를 물수건과 마른수건으로 닦았다. 어려운 살림에도 제수祭需를 성대하게 차려놓고 유교전례에 따라 모셨다.

큰 형님은 일찍 일본으로 갔고 둘째형님은 지원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됐다. 어린 내가 장손長孫 역할을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서 나는 제례를 지내며 조상님 혼령이 우리 집을 돌봐주시리라 믿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고사리 같은 내 손을 꼭 붙잡고 성묘하러 다녔다. 증조부모님의 묘와 다른 조상님들의 묘에 앞에서 재배를 하며 우리 집에 복을 주십사고 빌었다.

친구 따라 개신교회에 갔다. 새벽기도를 다니며 어려움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며 눈물로 기도했다. 고등학교 때는 광주에서 작은 개척교회에서 학생신앙운동 단체 SFC(Student for Christ) 회장을 맡아 신앙운동을 했다. 내 신앙이 평가되었음인지 목사님과 장로님이 나에게 신학교에 진학해 목사가 될 것을 권유했다.

만일 내가 고향에서부터 성당을 다녔었더라면 광주에서 꽤 규모가 있는 성당에서 돈독한 신앙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신부님과 수녀님이 나를 가톨릭신학교에 보내 사제가 되었을지 모른다.

사제는 보이지도 않는 그분만을 믿고 끝없는 길을 걸어간다. 영원한 사제인 예수님을 본받아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진 피붙이 없는 고독한 삶이다. 사제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그분의 시종侍從이다. 거룩하고 성스럽다. 내가 사제가 되었다면 지금과 다른 차원의 인생을 살았을 것을…

나는 결혼하고서야 가정의 일치를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주관이 확립되지 않아 주변 환경에 따라 4대 종교를 전전했다. 불교와 유교, 개신교와 가톨릭의 속내는 드려다 보지 못하고 겉치레만 보았다. 하여, 나의 종교적 심성은 기복신앙祈福信仰에 불과했다.

공무원의 봉급이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절에 가장家長이 되었다. 가족부양과 자녀교육의 임무가 힘겨웠다. 가슴에 맺힌 교육에 대한 한이 있었기에 자녀교육은 본인이 원하는 데까지 뒷받침하려고 했으니 더욱 힘들었다.

공무원은 돈 버는 직업이 아니다. 공무원은 나라와 겨레를 위한 소명을 받았다. 영예롭다. 어쩌면 수도자와 비슷하다. 공무원의 소명과 가장의 책임과의 사이에 모순이 있다. 그 모순을 극복하려고 고뇌했다. 현실과 타협하는 속물이 되지 않으려고 나 자신에게 엄격했다. 가족에게도 절제를 요구했다.

은퇴했다. 힘이 빠져 허약해졌다. 마지못해 따라오던 가족들한테 이렇게 저렇게 들어 받힌다. 허약해진 내가 그들에게 의지하고 싶었었는데 한탄스럽다. 갈기를 휘날리며 정글을 호령하던 수사자의 위엄도 힘이 빠지면 무리에서 밀려나 쓸쓸이 홀로 떠돈다.

 신학神學연구와 사제양성에 평생을 바친 노사제와 친교를 가진지 오래됐다. 그분이 부럽다. 회한이 밀려온다. 탄식이 절로 난다. 탄식이 불꽃으로 훨훨 타올라 내 몸은 재가 되고 내 영혼은 그분께로 훨훨 날아가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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