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이메일 5세대

염원했던 5세대 이메일이 날아왔다. 2017년 3월 12일이다. 영롱한 보석을 만지작거리듯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했다. 내 생전에 5세대 이메일을 받을 수 있었으면 했는데 이렇게 빠를 줄이야.

Dear Grandpa

I miss you very much. I wish that I could go to Korea. I hope you have great time. What is Grandma doing now? I love you and Grandma so much!

Love, Daham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요. 한국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 즐겁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할머니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합니다.
다함 올림>

나는 즉시 답장을 했다.

Dear Daham

Your email is first time to me. It is great great great!!! I wish I could go to America to see you at once. I love you and miss you very much. I and grandma, we are greeting Spring in Korea.

Love, Grandpa

<사랑하는 다함아!
너의 첫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을 너무너무 잘 썼다. 당장 미국으로 달려가 너를 보았으면 좋으련만. 너를 너무 사랑하고 보고 싶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국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다.

할아버지>

다함이는 미국에서 태어난 셋째 손녀다. 유치원에 다닌다. 다함이 이메일을 받아 너무 기쁘다. 꽃보다 예쁜 게 꽃처럼 예쁘게 이메일을 하다니!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일곱 살 손녀가 한국어를 몰라 여든 살 할아버지와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다함이는 이메일을 점점 놀랍게 잘 쓴다. 나는 기억에서 점점 흐려가는 단어들을 찾느라, 헝클어진 스펠링을 바로잡느라 한영사전과 영한사전을 번갈아 뒤적이며 이메일을 쓴다.

다함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또 이메일을 보냈다. 2017년 9월 22일에.

Dear Grandpa

I lost my first tooth. It didn't hurt and even bleed! I was so scared. I put the tooth under my pillow when I went to sleep. Tooth Fairy came to collected my tooth!!! She left me a note and ten dollars. I am so happy. In the note, the Tooth Fairy said I was an amazing girl and she loved me. Can you believe it? How old were you when you lost first tooth? Did Tooth Fairy come visit you?

LUV Daham

<사랑하는 할아버지께!
첫 젖니가 빠졌어요. 아프지도 않고 피도 나지 않았는데 많이 놀랐어요. 젖니를 베개 밑에 두고 잠을 잤는데 이빨요정이 가져가면서 쪽지와 10달러를 남겨두었어요. 너무 기뻤어요. 쪽지에 저를 훌륭한 소녀이라며 사랑한다 했어요. 제 말을 믿으세요? 할아버지는 몇 살에 처음 젖니가 빠졌지요? 이빨요정이 할아버지를 찾아왔던가요?
다함 드림>

나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사랑하는 다함아!
이빨요정이 너의 첫 젖니를 가져가면서 쪽지와 10달러를 두고 갔다고? 정말? 네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나도 첫 젖니가 일곱 살에 빠졌어. 내 어머니가 젖니를 지붕에 던졌는데 까치가 물고 갔어. 일주일 후 내가 잠자는데 까치가 새 이를 물어다주었어. 내 이야기를 믿니? 할아버지는 너를 많이많이 사랑하고 보고 싶다.
할아버지>

이렇게 손녀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영어공부도 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메일 1세대는 아들이다. 외아들이 서울에서 석사학위까지 하고서 군복무를 마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도 마치 어린애를 물가에 보낸 듯 기우杞憂를 했다. 숙식에 어려움이 없는지 학업에 지장은 없는지 궁금해 이메일을 했다. 그때가 1996년 9월쯤이었으니 꼭 21년이 됐다.

아들이 결혼을 하고서는 며느리가 이메일 2세대가 됐다. 신랑이 학교에 가고나면 집안일을 정리해놓고 신랑이 수강하는 강의실에 몰래 들어가 뒤에 숨어서 청강하던 일, 첫째 손녀의 육아일기 등등 소소한 영국생활까지도 이메일로 알려주었다. 아들이 학위를 마치고 귀국해 모교에 3년간 출강을 하다가 가족과 함께 미국대학으로 갔다. 다시 며느리와 이메일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주고받은 이메일을 복사해둔 파일이 다섯 권이다.

이메일 3세대는 첫째 손녀 다슬이다. 다슬이는 영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초등학교 4개월을 다니다 미국으로 갔다. 떠나기 며칠 전, 둘이서 뒷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너를 보내고 내가 어찌 살고!”라 말했는데 다슬이가 보이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울고 있었다.

떠나고서 2년 후에 내가 미국에 갔다. 다슬이가 우리말은 하는데 우리글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안타까웠다. “한국어를 모르면 너는 껍데기 한국인이다”라 타이르며 컴퓨터를 사주고서 “너는 영어로, 나는 한글로 이메일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글을 깨우쳐주고 싶었다.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뒷산을 내려오며 눈물 지웠던 장면, 전 과목 A+를 받아 최우수상 수상, 병약자를 위한 봉사활동, 학교방송 앵커로 발탁되어 능란하게 방송을 진행하는 유튜브 동영상, 고교 4학년이 되어 수능시험SAT을 보고서 유수한 대학을 지원하는 등의 이메일이 왔다. 나는 장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안했다.

이메일 4세대는 둘째 손녀 다해다. 다해는 한국에서 태어나 첫돌을 갓 지나고서 미국으로 갔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책을 술술 읽었고 초등학교 때 두터운 해리포터 시리즈를 독파한 수재다. 머리는 예리하게 차갑고 마음은 비단결처럼 따뜻하다. 동생에게 요령있게 책을 읽어주고 온갖 동생의 비위를 다 맞춰준다.

금년 9월에 중학생이 됐다. Build-on 클럽에 가입해 노인 복지시설에서 병약한 노인들을 돌본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UNICEF 등 복지단체 여섯을 도왔고 오는 11월 12일에는 <나환우 돕기 30년 상>을 받는다고 했다.

자랑할 목적이 아니다. 손녀에게 자애심을 길러주고 집안에 대한 긍지를 높여주기 위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큰 관심을 보이며 할아버지가 이렇게 자랑스러울 줄 몰랐다며 그 외에도 할아버지가 하는 일들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처럼 1세대로부터 시작된 이메일이 21년 만에 5세대에 이르렀다. 다섯 자손子孫들과의 이메일은 사랑과 그리움을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무변대해 태평양과 광활한 북미대륙을 건너 구만리장천의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는 자손들과 이메일이 없었다면 사랑과 그리움을 어떻게 나누었으랴!

끊임없이 이메일을 하였기에 눈 감으면 그들이 사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척인들 소통이 없으면 머나먼 천리만리인데… 우편으로 편지를 하려면 번거롭다. 봉투에 주소를 기입하고 우체국을 찾아가 우표를 붙여 보내야한다. 시간과 돈을 드려가며 매일 우체국을 찾아갈 수도 없고.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에 ID를 기입하고 편지를 써 손가락으로 단 한 번 클릭을 하면 곧바로 이메일이 그들에게로 날아간다. 현대문명의 이기利器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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