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하(한국항로표지기술원 前이사장)

▲ 류영하
이탈리아 크루즈선사인 코스타 크루즈를 타고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을 출발해 일본서안(西岸)으로 5박 6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이 여행을 마치고 난 후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것은 “왜 우리나라는 크루즈선이 한척도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이었다.

조선(造船) 세계 1위, IT강국,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조그만 나라지만 높은 근면성과 교육열로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열어 나가고 있는 나라, 그럼에도 크루즈는 커녕 한일간, 한중간에 운항중인 카페리선 중에 국내 건조된 선박이 단 1척에 불과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오늘날 지구 5대양 6대주를 누비면서 세계 곳곳의 뛰어난 명승지 투어를 하고 있는 크루즈선은 약 230여척이나 되며, 크루즈 관광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국산 카페리를 1척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크루즈 타령이냐는 질타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선 크루즈산업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정부차원에서도 그 중요성과 시급성을 감안해 크루즈산업을 적극 육성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크루즈 나라 건설’을 제안해 본다.

우선 크루즈는 돈 많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소형 크루즈는 생각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일출과 일몰을 보면서 자신만의 힐링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지구촌 각국 사람들의 제각각 다른 문화와 국민성도 접할 수 있으며 지금껏 고생만 하신 부모님에게 효도관광도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크루즈 상품이다.

필자도 평생 바다와 관련된 일만 하다가 은퇴 후 처음으로 경험한 것이 코스타 크루즈의 네오 로만티카호다. 이 선박은 5만 7000톤급 중소형 크루즈로 15층 규모에 승무원만 620여명, 여객정원은 1800명이다. 이 배에는 약 1000여명의 승객이 승선할 수 있고 세계 17개국에서 선발된 승무원들이 선박운항과 객실관리, 레스토랑 운영, 스파·수영장·카지노·헬스장 등 시설 운영에 투입되고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승무원들이 유창한 영어 실력과 일본어, 중국어를 구사하면서 활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일행은 설레임으로 가득 찬 고향친구 부부 7쌍, 14명이었다. 동해바다를 건너 일본서안의 후쿠오카와 마이즈루, 가나자와, 사카이미나토에 기항할 때마다 선장을 포함한 승무원들과 여행객들은 현지 지자체와 관광업계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또한 아주 편안한 일정과 배려 속에 주요 명승지를 답사하고 현지의 명품 식사, 쇼핑을 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필자도 모처럼 아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고향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너무 행복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부모님에게 이렇게 좋은 효도관광을 한번 못해줬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승무원들과 친숙해지고, 댄스도 서로 배우고, 함께 어울려 어깨동무도 하면서 우리들은 가까워졌다. 이런 것이 사람들 사는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 크루즈 자체가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나라’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탈리아 선사의 크루즈선이지만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크루즈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크루즈선을 국내조선소에서 건조해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물론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다니는 날이 빨리 와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작은 대한민국 크루즈 나라’가 하나하나씩 늘어 나가게 되면 국위선양은 물론이며 외화가득과 해양영토의 확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국내조선소의 크루즈선 건조 신기술 개발은 물론 고급기술자, 다양한 인테리어 기술 인력 등을 양성할 수 있고 관광산업, 조선기자재 산업, 선용품 공급업 등 크루즈 연관산업도 발전하게 돼 엄청난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전세계 크루즈 관광객을 싣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도를 한바퀴 돌고 동서남해의 절경과 제주도, 강화도 등지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 한정식과 전통주도 소개하고 한복 패션쇼, K-POP, 트롯트, 민요 등이 어우러진 공연을 하거나 팔만대장경 등 우리나라의 자랑거리를 전시하는 이벤트를 한다면 너무나도 훌륭한 행사가 될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크루즈산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해양수산부도 몇 해 전에 크루즈산업육성법을 제정해 추진했지만 현재는 외국 크루즈 유치와 포트세일즈, 크루즈 터미널 건설 등에만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크루즈선 건조 등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우선 크루즈선을 건조하려면 초기에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회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문화관광부, 행정안전부, 지자체 등이 혼연 일체가 되어 범국가적으로 지원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고 만다.

꼭 명심할 것은 ‘정권이 바뀌거나 장관이 바뀌어도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크루즈 나라’를 건설한 선진국들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자세히 파악한 다음 국가 주요정책과제로 선정해 경험있는 선사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서 착실하게 추진해 나간다면 우리도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막대한 건조재원은 국민주로 조달하거나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자본가와 선사, 조선소를 연결하고 정부의 정책 금융 세제지원시스템의 지원을 받아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약 1조원 내외의 재원이 소요되는 대형 정통 크루즈를 건조하기 보다는 그 이전 단계로 동북아, 동남아항로에 적합하고 건조비가 저렴한 신개념의 한국형 친환경 크루즈페리를 건조하도록 했으면 한다.

여객 외에 선저(船底)에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하면 운항적자를 커버할 수 있으며 크루즈 운영 실적과 경험을 쌓게 한 다음 면밀한 평가와 검증을 거쳐 정통 크루즈 건조 단계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크루즈 나라’는 우리나라의 해양 영토이고, 국민 모두가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크루즈 나라’는 선장이 왕이며 ‘크루즈나라’에서 만든 규범에 따라 다민족이 어우러져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열어가는 작은 ‘행복왕국’이다. 법과 제도를 만들어 놓고 왕이 바뀌어도 흐지부지 되지 않고, 전임자가 했던 훌륭한 업적이 계속 이어지고, 담당자들은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일은 서로 나서서 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일을 계속 찾아 신일신(新日新)하면서 자기가 맡은 일에 끝까지 책임지는 왕국을 건설해 나갔으면 하는 것이다.

21세기 신해양시대에는 선원과 항만근로자, 해양과학기술자, 해양문화예술인, 해양관련 산(産)관(官)‧학(學)‧연(硏)에 종사하는 모든 해양인들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모두 해양인이 되고 싶어하고 바다에서 먹거리를 찾아가는 그런 ‘해양부국’이 돼야만 한다. “자유인이여 그대는 바다를 사랑하라!”는 보들레르의 말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 신개념 한국형 크루즈페리·에코쉽 표준 선형 조감도(2만 5천gt, 승객 700명, 화물 240teu, LNG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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