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상선 김문호 대표

▲ 김문호 사장
소운 형,

강원도 평창 땅 봉평에 왔습니다. 오대산에서 치악, 계룡, 칠갑으로 분기되는 차령산맥 초입의 흥정산록, 구르듯 흘러내린 물줄기가 가까스로 숨을 돌리는가 싶은 두메입니다. 소만도 훌쩍 넘긴 절후건만 산협 가득 아카시아 꽃이 한물입니다.

가산(可山) 이효석의 문학관에 그의 생가를 이전 복원해 둔 마을입니다. 마을이래야 여남은 민가에 밭뙈기란 뙈기는 하나같은 메밀 농사입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을 주제로 조성된 소위 테마 빌리지인 셈입니다. 이름 하여 봉평 문화마을, 국내 제1호의 문화마을이라 자랑이 대단합니다.

이효석의 출생지라 전하는 면소재지 마을(창말)에도 가로마다 메밀식품의 간판 숲입니다. 묵, 전병, 국수에 저배기 등, 갖은 식단으로 외래의 미식가들을 줄 세우면서 성업 중입니다. 향토 출신 작가의 짧은 소설 한 편이 첩첩산중 두메산골을 명승지로 승격 시키면서 일원을 먹여 살리는 셈입니다. 작가의 연고라곤 유년의 열두 해가 고작일 뿐, 당초 인근으로 들었던 그의 유택조차 외지로 이장된 지 오래면서 말입니다.

형, 이곳에서 머잖은 운두령(雲頭嶺)을 기억하는지요. 해발고도가 천 미터를 넘으면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국도가 구름 속으로 쉬어 넘는, 언젠가 형과 내가 영마루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내던 바로 그 고개입니다. 그날 밤에도 고갯길 비탈마다 한물 메밀꽃 위로 달빛이 흐붓했고 형이 독백처럼 말했지요. ‘메밀꽃 ...‘의 허 생원 일행이 워낭소리를 달랑이며 넘나들던 고개가 바로 이곳일 거라고.

그랬을 겁니다. 장돌뱅이가 지역 내의 어느 장터를 마다했을 것이며, 우리네 삶이 여전히 드높은 엥겔지수에 대롱이던 그때의 메밀꽃이 이효석의 그것에 별로 다를 바는 없었으리니 말입니다.

하늘만 쳐다보는 농사로 생존이 모질던 시절, 하지를 지나고도 볏모를 꽂지 못 하는 천수답이나, 서속(黍粟)을 파종하고도 씨를 세우지 못 하는 밭고랑에 절망으로 흩뿌리던 최후의 대파작물이 바로 메밀이었습니다. 그러자니 가을 길섶에 흐드러진 메밀꽃은 눈앞에 다가설 보릿고개의 맛 배기였고, 그것의 붉은 대궁은 춘궁을 예감하는 농부들의 눈 핏발에 다름이 있었을 런지요.

바로 그 메밀이 시절을 만나 대접받고 있습니다. 쌀이나 다른 곡식들처럼 근기가 실하지 않아서 식욕대로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소위 웰빙식품의 각광입니다. 일등호답 논농사보다 손쉬우면서 수익성 높은 것이 바로 돌밭의 메밀농사입니다.

형, 시절의 변천을 짐작할 리 없는 오늘의 청년들에게 ‘메밀꽃 ...’은 과연 어떤 감흥일까요? 과도한 영양섭취가 초미의 관심사인 풍요의 시절에 말(馬)도 못 되는 나귀의 등짐장사란 행여 현대판 돈키호테로나 갸웃거릴 런지요. 서정주의 ‘국화 앞에서’를 두고 하필이면 장례식에나 쓰는 꽃이냐고 시답잖아했다는 어느 서양인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작가 이효석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국어책의 ‘산(山)’이었습니다 ‘중실은 산으로 들어오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는 구절만으로도 갓 진입한 사춘기의 고적을 축이기에 족했습니다. 그러고는 고등학교 때의 ‘낙엽을 태우면서’였습니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가제(갓) 볶아낸 커피 냄새가 난다.’는 구절이 황홀했습니다. 가루로 된 커피를 볶는다는 의미가 어린 식견에 의아했지만, 소위 양옥집에 살면서 정원의 낙엽을 쓸어 모은다는 그가 부럽고 멋있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메밀꽃 ...’과의 만남은 한참 뒤였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자연적 심미주의 작가라는 세평에 거부감 없이 동조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근래에 심심파적으로 그를 들추면서 꼭 그렇지는 않은 것도 같습니다. 초기 작품인 ‘도시와 유령’, ‘깨뜨려지는 홍등’, ‘마작 철학‘, ’프레류드‘ 등은 앞의 작품들과 판이하거든요. 창녀들이 합세하여 포주의 횡포를 잠재우거나 정어리 기름공장의 여공들이 사장을 굴복시키며, 자살을 계획하던 룸펜 청년이 반체제 지하활동에 가담하면서 생존의 보람을 느낀다는 이야기들은 민중 내지 진보주의 분위기가 농후합니다. 그가 동시대의 카프, 즉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의 일원이었던가 싶기까지 합니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메밀꽃 ...’의 평가만 해도 그렇습니다. 인간 본성의 순수를 자연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세밀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가 명망에 손색이 없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기껏 여남은 페이지의 짧은 이야기를 이 나라 소설문학의 백미로 추켜세우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허한 것 같습니다. 사건의 서사 대신 분위기의 묘사에 치중하는 필치 또한 수필에 흡사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소설 ‘산협’은 이처럼 빈약하지 않습니다. 작가 자신의 경우가 그렇듯, 조부 때 창말(지금의 창동)로 이주해 온 공 씨 일가가 천하 성인의 후손이라는 자존심으로 가업을 일구고 이를 지키기 위해 핏줄과 땅에 집착하는 이야기지요. 소 한 마리에 임신한 계집을 내어주는 대장 쟁이, 소처럼 자식내기를 잘 하라고 외양간에다 신방을 차리는 풍습, 인근 흥정산의 곰과 산삼까지 등장하면서 소설의 품격은 물론 당시 강원도의 토속을 충실히 대변한다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분량 또한 40여 페이지에 달합니다. 작가 자신의 죽음을 꼭 한 해 앞둔 시점에, 그동안 외면했던 고향에의 향수 내지 수구초심의 발로라 할 만한 ‘산협’이야말로 ‘메밀꽃...’에 앞서는 대표작이 아닐 런지요? 이 나라 국어문학의 어느 누구보다 이효석을 꼽던 형이기에 감히 무례를 들이댑니다.

 

형, 또 한 번 실없는 수다였습니다. 어차피 욕계며 색계를 벗어나지 못 하는 미망의 견식으로야 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 장님 코끼리만지기가 아닐 런지요. 소위 동아리의 문학기행을 따라왔다가 철 늦은 아카시아 꽃 더미를 만나면서 문득 형을 떠올린 탓입니다. 그때 우리 사범동산의 아카시아 꽃 숲은 정말 대단했지요. 해마다 5월이면 한겨울의 폭설이라도 내리 듯 뒷산을 하얗게 뒤덮곤 했으니까요. 연초록 이파리 속에 순백으로 피는 꽃. 여자 반 학생들의 목 칼라를 닮은 청순의 자태와 맑은 향내만으로도 고만한 소년들의 정서를 휘몰기에 넉넉했거든요.

지금 이곳에는 미증유의 굉음이 드높습니다. 낙낙한 금강 장송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산과 강이 헐리고 파헤쳐지면서 죽죽 뻗은 시멘트 길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내년의 겨울올림픽에 손님맞이 채비라 합니다.

‘메밀꽃...’의 허 생원 일행이 대화 장터로 가는 길에 쉬어 넘던 장평에는 초특급열차의 역이 생기면서 서울에서 강릉 나들이가 한 시간대로 좁혀든답니다. 소설 ‘산협’의 주인공 공재도가 남한강 가항종점인 문막 나루로 소금을 받으러 갈 때면, 재를 넘는 데만 하루가 걸리는 양구더미(봉평과 둔내 사이의 태기산 자락의 고개)를 지나면서 편도 나흘이 소요된다던 시절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격변이라 하겠습니다. 자칫 한반도의 산소통이라는 강원도의 명망이 부실해질까 두렵습니다.

중학교 3학년 국어책에 알퐁스 도떼의 ‘별’과 함께 실렸던 ‘창랑정 기’를 기억하는지요. ‘그 댁의 을순이가 내 손을 조몰락거리는 것이 부끄러워서 “저 강물은 왜 저렇게 푸를까?” 하면서 손을 뽑던’, 어릴 적의 창랑정을 지팡이 둘러 짚고 찾아갔더니, 정자는 간 곳이 없고 강심의 비행장에서 최신식 제트여객기가 굉음과 함께 치솟더라는, 유진오 선생의 소설이었지요. 이곳 또한 그만한 변혁의 현장인가 합니다.

그러고 보니 형, 우리들 또한 어느새 이 땅에서의 시간이 그만큼 수월찮은 것도 같습니다. 건강을 주로 챙기소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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