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정동국제 서동희 대표변호사

▲ 서동희 변호사
선하증권상의 관할합의조항, 예를 들면 선하증권 아래에서 발생되는 분쟁은 ‘대한민국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한다’라는 규정은 우리나라 법상 유효하다. 다만 대법원 판결은 유효하기 위해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하고 있기는 하다.

선하증권상의 관할합의조항이 유효하다고 하면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과 선적항에서 그 선하증권을 교부받은 송하인 사이에 그 관할합의조항은 원칙적으로 유효할 것이며 나아가 그 선하증권을 소지하게 된 수하인에게도 유효한 것임에 별 이의가 없다.

이에 대비해 선하증권상의 중재합의도 역시 송하인은 물론 수하인에게도 효력을 미칠 것인가의 문제이다. 소송에 관한 관할합의 요건 보다 중재합의가 유효하기 위한 요건이 더 엄격하다. 그 이유는 소송에 관한 관할합의는 소송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보통의 해결방법을 유지하되, 다만 어느 나라 법원 혹은 어느 나라의 어느 법원이 그 사건을 담당하는 것으로 합의하느냐의 문제이어서 중재합의의 경우에 비교해 훨씬 덜 중요하다.

이에 반해 중재합의는 당사자 합의로 소권(訴權)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 달리 표현하면 재판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효력을 가지기 위해 보다 엄격한 요건이 요구되고 있다. 중재합의가 효력을 갖기 위해는 당사자간의 명확한 서면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한다.

이와 유사한 문제로 용선계약 조건을 편입한 선하증권 아래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중재조항이 편입되었는지 여부가 왕왕 문제된다. 영국법원이나 우리나라 법원은 일관되게 중재합의는 다른 일반적인 조건과 성격이 상이한 것이고, 중재합의가 가지는 중요한 위치를 감안해 단순히 용선계약상의 모든 조건이 편입된다고 하면 중재조항(용선계약에 규정되어 있는 중재조항)이 자동적으로 선하증권에 편입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적 견해이다.

중재조항이 편입되려면 “용선계약의 조항 및 중재조항이 편입됨”이라고 명확하게 기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재조항과 다른 일반 조건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에 관해 우리나라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디케이 1호(DK No. 1)는 본래 파나마 회사인 나카하라 쉬핑 에스에이(피고2)의 소유였는데 윤스마린 주식회사(피고 1)가 용선해 사용하던 중이었다. 윤스마린은 동 선박을 이용해 일본 회사인 동국 코포레이숀이 동국제강주식회사(원고)에게 철제 슬랩 348개를 수출하는 화물을 일본 항만에서 우리나라 항만으로 해상운송하는 과정에서 황천을 만나 그 중 99개가 해상에 유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국제강의 입장에서 보면 동국제강은 디케이에스앤드(DKS&) 주식회사에게 위 운송을 의뢰했고, 디케이에스앤드가 윤스마린에게 재차 운송의뢰를 했던 것이다. 위 사고를 이유로 동국제강이 피고 1, 2를 상대로 약 14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부산지방법원에 제기해 시작된 사건이다.

그런데 윤스마린이 일본 회사인 동국 코포레이숀에게 발행해 준 선하증권 양식은 SHUBIL-1994(B)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하증권 이면에 일본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조항과 일본 해운집회소의 Tokyo Maritime Arbitration Commission(TOMAC)에서 분쟁을 해결하기로 하는 중재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윤스마린이 중재항변을 제기했고, 부산지방법원은 그 항변을 인용해 소 각하 판결을 내렸다.

이에 원고는 항소했는데 부산고등법원 역시 원심판결과 동일한 견해를 취하고 항소를 기각했다. 달라진 점은 부산고등법원 판결에 이르러 일본법에 의거해 이 사건 중재조항이 수하인인 동국제강에게도 효력이 있는지가 판단되었으며, 종국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되었는데, 대법원은 부산고등법원의 판결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판단하며 상고를 기각했다(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9다66723 판결).

여기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니라 대법원에서 선하증권상의 중재합의가 수하인에게도 효력을 가지는가에 대해 판단을 내린 적이 한번 있었다. 그런데 준거법이 일본법인 경우에 내려진 판결이므로 우리나라 법 아래에서의 효력 여부에 대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나라 법, 특히 1999년에 대폭 개정된 현행 중재법 아래에서 판단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본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법원은 국제관할합의 규정을 인정할 때 매우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 인정하는 것과 비교되게 중재조항을 인정할 때에는 그러한 제한 없이 호의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사족을 붙인다면 이 사건에서 등록선주인 나카하라 쉬핑도 공동피고로 제소되었으며, 나카하라 쉬핑 역시 하밀라야 조항을 근거로 중재항변을 했고, 부산지방법원 이래 대법원까지 동 중재항변은 타당한 것으로 인정했다. 이 부분은 별도로 하나의 쟁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언급하지 않았음을 알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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