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터치웰(Peter Tirschwell) IHS Markit 전무

▲ 피터 터치웰
에너지 사업을 매각하고 컨테이너 운송업에 사활을 건 머스크(Maersk)는 그 누구보다 해운업의 혁신을 원하고 있다. 세계 최대 해운선사인 머스크는 가족지배 구조이지만 상장 회사이기 때문에 철저한 감사와 실적에 대한 압박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해운업의 순환구조에 단순히 수동적으로 대응하거나 지금까지 해운업이 수년 동안 해온 것처럼 과잉공급 및 손실에 손 놓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해운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만성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이 필요하다. 투자자의 기대를 뛰어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만족시키려면 수입 및 수익의 지속적 증대가 필요하다. 따라서 머스크를 비롯한 해운선사들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운업이 만성적인 순환구조와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이러한 혁신 방안은 묘연하기만 하다. 올해 만약 수익이 난다면, 이는 합병이나 가격 정책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빠른 성장 덕일 것이다.

해운업에도 기술도입이 이루어졌지만 주변부에서만 비효율성을 조금 걷어내는 데 그쳤다. 해양 운송은 첫 단계에서 마무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복잡한 절차들과 비효율성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이는 결국 비용 문제로 이어진다. 현재 기술 도입이 왜 화제일 수밖에 없는지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국제 무역 플랫폼이 시도되고 있다. 블록체인은 분산화된 거래방식으로 안전한 거래 및 정보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해운업의 근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맞춤 설계가 가능한 기술로 평가된다. 정확한 개념 파악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블록체인과 관련한 논의가 2017년 재계를 강타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블록체인의 도입을 1990년대 중반 인터넷 확산에 견줄 만큼, 시장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머스크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해운 생태계 구축을 위해 IBM과 협력하여 합작사를 출범했다. 머스크와 IBM과의 인연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머스크 맥키니 몰러(Maersk Mc-Kinney Moller)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IBM 이사로 활동했으며, IBM은 2004년 머스크 데이터를 인수한 바 있다. IBM의 기술력을 등에 업은 머스크는 해운업에서 블록체인의 잠재성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적임자로 보인다.

머스크와 IBM이 설명하듯 블록체인은 컨테이너 운송업에 종사하는 참여자들 간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거래 및 정보교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동시에 화물이동 추적 및 도착 예상시간 파악 등 대형 화주들이 오랜 기간 풀지 못한 난제들을 해결해줄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 도입은 효과적인 자원 분배를 가능하게 하여, 작업 효율성 증대를 추구하는 항만청부터 국경 간 화물이동 및 추적 파악이 필요한 관세청에 이르기까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머스크에 의하면, 이는 "공개표준에 의해 구축되고 국제 해운 생태계 전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는 공동 개발 국제 무역 디지털 플랫폼이 될 것"이다. 즉, 해운업을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데 이보다 더 야심 차고 포괄적인 솔루션을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머스크와 IBM이 부딪히게 될 난제가 숨어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비트코인의 핵심은 거래 플랫폼이 전면 분권화로 이루어지며 모두가 소유하되 그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블록체인 기반의 무역 디지털 플랫폼 구축을 위해 머스크는 IBM과 합작사를 만들었다. (머스크가 합작사의 주식 51%를 보유하고 있다) 합작사의 목표는 "선사를 포함해 공급망의 모든 참여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중립성 및 개방성을 강화하는 것"이고 "플랫폼은 모두에게 개방될 것이며 따라서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머스크는 주장했다.

수년 동안 컨테이너 선사들은 상호 간 서비스 판매에 있어 여러 저항에 부딪혀왔다. 해양항만 서비스, 정보기술시스템, 혹은 심지어 포워딩 화물 예약 등 조금이라도 민감한 정보 교류와 관련된 것이라면 어떤 서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사 간 가격경쟁이 너무나 치열한 나머지, 상대 업체를 업계에서 퇴출하려는 목적이라고 해석할 정도로 상호 신뢰가 부재한 상황이기도 했다.

"선사가 주도하는 솔루션에 업계가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우려된다. 중립적인 상거래 솔루션이거나 정부 주도 혹은 산업계 주도의 솔루션이라면 모를까.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채택하는 업계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데, [선사 주도형 솔루션은] 그 규모를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디파인드 로직(Defined Logic)의 마이크 시몬(Mike Simon) 수석 컨설턴트가 지적했다. 그는 머스크 데이터와 IBM을 포함 화물 수송 분야에서 기술책임자로 오랫동안 근무한 바 있다.

"기술은 '상대적으로' 간단한 문제다. 이 기술을 시장에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 이러한 가치를 모든 구성원에게 빠르고 동등하게 실현하여, 기술 도입을 신속하게 확산할 방법이 무엇인지 보다 확장된 비전이 필요한 때"라고 그는 덧붙였다.

또 다른 난제는 블록체인 도입에 있어 핵심 역할을 맡고자 하는 것이 머스크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산업이든 혁신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은 진정한 "성배"를 손에 쥐는 일이다.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해운업에서는 현재까지도 대형 업체들조차도 달성하지 못한 과제이기도 하다.

국제 무역의 25% 이상을 책임진다는 예약 및 문서화 포털 INTTRA는 지난해 발간한 백서에서 "해운업계의 핵심적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이자 정보 제공업체"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다. 현재 GE와 협력 중인 로스앤젤레스 항만과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만은 항만 주도의 체계를 구축하려고 계획 중인데, 이는 머스크가 그리는 해양운송 생태계의 혁신과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다. 매우 가치가 높지만, 아직 소유권이 정해지지 않은 부동산과 같은 상황이랄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지 여부와 관계없이, 해운업의 미래에 기술이 중점적인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저작권자 © 한국해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