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교수(고려대 로스쿨, 해사법정·중재 활성화 추진위원장)

▲ 김인현 교수
1. 필요성

해운업이나 조선산업을 영위하다보면 각종 분쟁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런 분쟁해결수단을 영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왔다. 해운 세계 6위, 무역 10위 그리고 조선 1위를 달성한 현재에도 이러한 경향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해운회사 보험법무팀 업무의 90%는 영국 등 외국의 재판이나 중재와 관련된다. 그 결과 우리는 해마다 많은 법률비용을 외국에 유출하여 커다란 법률수지적자를 낳았다. 그 결과 해상법은 발달하지 못하고, 해상변호사의 숫자는 늘어나지 않았고, 다시 영국에 분쟁해결을 의존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어왔다.

급기야 2016년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사태에서 외국 선주들과 용선료협상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변호사가 아닌 미국 변호사를 채용하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상법 교수의 숫자는 날로 줄어들어 서울의 25개 로스쿨에는 1명의 해상법 교수만이 존재하는 상태로까지 악화되었다.

이런 악습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다. 2004년 해수부와 KMI는 우리나라에 해사중재원 설치 타당성 연구용역을 실시하였다. 한국해법학회는 대한상사중재원과 공동으로 2006년 해사표준계약서를 작성하였으나 그 사용은 미미하여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한국해법학회는 2011년 Kore P&I와 함께 “한국해상법의 밤”을 개최하여 우리 법과 우리 법정과 중재의 사용빈도를 높이는 캠페인을 벌린 바 있었다.

2. 해사법정 활성화 추진위원회의 결성과 역할

2014년 12월 당시 한국해법학회 수석부회장이었던 필자는 해사법정과 해사중재를 활성화하기 위한 작업을 더 강하게 추진하기 위하여 선주협회, 한국해법학회 그리고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가 공동으로 “한국해사법정·중재활성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해사법원설치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하여 2016년 2월 그 전단계인 해사전담재판부를 설치하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후 2017년 3월 해사법원 설치에 대한 법안이 4개가 국회에 제출되었고 현재 법사위에서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금년 6월 지방선거가 종료되면 본격적인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7년 8월 말 대한상사중재원은 부산시의 지원하에 해사중재부분을 부산으로 이관하는 작업을 펼쳤고 부산에 “아태해사중재센터”를 설치하려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이에 추진위에서는 과연 대한상사중재원의 계획이 영국의 LMAA나 싱가포르의 SCMA와 경쟁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될 것인가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부정적으로 판단하였고,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해사중재제도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 중심적인 역할은 기존에 활동해온 해사법정 중재 활성화 추진위가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위원장인 필자가 해사중재제도 도입 추진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3. 10인 소위의 활동과 총회개최

지난 2017년 9월 11일 3차 회의에서 추진위원회는 10인 소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위원에는 김인현 교수(위원장), 정병석 변호사(김&장), 최종현 변호사(세경), 이석행 사장(시마스타), 손점열 부사장(테크마린), 이광후 변호사(세창), 문광명 변호사(선율), 조성극 변호사(지현), 김종현 실장(팬오션), 강종구 변호사(태평양)이 지명되었다.

위원회는 먼저 수요자인 업계가 얼마나 임의중재의 도입을 원하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설문조사를 하였다. 응답자의 95%에 해당하는 분들이 현재의 기관중재보다 더 효율적이고 전문적이면서도 저렴하고 객관성이 보장되는 해사중재를 원하였다. 이에 위원들은 더욱 힘을 얻었다.

위원들은 중재문구·중재인 명부작성·중재규칙의 작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2017년 10월 31일 정성한 씨(전 동남아해운이사)를 사무국장으로 초빙했다. 임시거처는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에 두었다. 조직은 사단법인으로 하기로 하고, 정관도 마련하였다. 37명의 전문가들이 회원으로 입사의사를 밝혔다.

위원회는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쳐 2018년 2월 28일 드디어 해운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임의해사중재를 지원하는 서울해사중재협회를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회장으로는 정병석 변호사(김&장, 전 한국해법학회 회장)을 추대하였고, 감사에는 김창현 사장(한리손해사정)을 선임하였다. 5명의 부회장과 15명의 이사 총 20명중 소위원회 위원들과 관련업계(선주협회, 해운조합, Korea P&I, 조선해양플랜트협회 그리고 KMI)에서 총 16명을 선임하고 4명은 회장에게 위임하였다.

창립총회에서 유기준 국회의원, 김현 대한변협 협회장, 김영무 선주협회 부회장, 한홍교 해운조합 이사장 대행, 전준수 서강대 명예교수, 최장현 위동항운 사장, 정용상 한국법학교수 회장의 축사가 있었다. 축사에는 “영국을 능가하는 해사중재가 되자”, “우리나라에 또 하나의 해운을 위한 인프라가 탄생되었다”, “우리나라 해운에서 역사적인 날이다”는 등 긍정적인 내용이 포함되었다. 특히, 한홍교 해운조합 이사장 대행은 본 협회의 중재에 의할 수 있도록 해운조합의 선박공제 약관의 개정이 이루어져 올 4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4. 임의중재의 특징

중재에는 기관중재와 임의중재가 있다. 대한상사중재원(KCAB)은 대표적인 기관중재이다. 기관이 중재인의 선정에 개입하고 중재절차도 기관이 주도한다. 중재인 보수도 당사자로부터 수령하여 중재기관에서 지급한다. 이에 반하여 영국의 런던해사중재(LMAA)이나, 싱가포르의 해사중재(SCMA)는 임의중재(ad hoc)이다. 이들은 기관의 개입은 최소화하면서, 당사자들이 직접중재인을 선정하는 대단히 효율적인 중재로서 해사분쟁에서는 압도적으로 선호된다.

본 서울해사중재협회의 중재도 임의중재이다. 협회의 개입은 최소화된다. 본 중재규칙에 따르면 중재통지서를 신청인이 피신청인에게 송달함으로써 중재절차가 개시된다(중재규칙 초안 제7조). 중재절차는 당사자들과 중재인이 자율적으로 진행한다(동 제7조, 10조, 17조), 협회에서 추천하는 등재된 전문중재인 명부에서 당사자들이 중재인을 직접 선택한다(동 제10조). 중재인 보수는 당사자가 직접중재인에게 지급한다(동 제10조, 55조). 당사자는 본 협회에게 전혀 행정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동 45조). 협회의 사무국은 국장 1인만 존재하여 비용이 적게 소요되는 구조가 된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기관중재를 행하는 대한상사중재원과 임의중재를 하는 서울해사중재협회가 양립하게 된다. 싱가포르도 SIAC이라는 기관중재와 SCMA라는 임의중재가 있다. 해상사건을 년간 각각 40건 정도를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양 기관은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발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해외홍보나 해사표준계약서의 한국화 작업은 공동으로 협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5. 효과와 결론

본 중재도 원칙적으로 단심으로 종료되고 법원에 항소가 허용되지 않는다. 중재인의 중재판정은 중재법에 의하여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제35조). 중재판정으로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중재판정문을 가지고 해외에서 집행을 하고자 할 때에도 뉴욕협약에 의하여 가입국은 그 효력을 인정해준다. 1억원 이하의 소액분쟁에 대하여는 1인중재, 서면심리에 의한 중재가 가능하다(중재규칙 초안 제6장). 또한 선박충돌과 같은 손해배상에 대한 중재도 특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동 제7장).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해사분쟁, 조선분쟁, 선박금융분쟁을 우리나라에서 해결하자는 운동은 선주협회가 매진하고 있는 “선화주 상생” 프로젝트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화주들이 우리 선사를 이용하고, 우리 선사들이 장래운임수입을 바탕으로 선박을 건조하여 조선소를 도와주고, 분쟁이 생기면 우리나라에서 처리하여 해상법이 발달하고 법률비용을 낮추어 경비를 절감하여 우리선사는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운임이 낮아지고 우리 수출업체는 또한 상품경쟁력을 가지고 수출량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우리는 달성해 나가야하는데, 본 중재는 그런 기능을 다 할 것이다. 결국, 서울해사중재협회의 창립은 이러한 해운, 무역, 조선, 물류산업의 선순환구조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해사임의중재 제도가 성공하기 위하여는 수요자인 선주, 화주, 조선, 해상보험, 물류 업계들의 동참이 필수적이다. 해사관련계약서에서는 한국준거법에 서울해사중재협회의 임의중재에 의한다는 중재문구를 넣어야한다. 국내 당사자들끼리의 분쟁은 필수적으로 본 중재에서 처리하도록 하고, 관행적으로 외국으로 가는 것은 피해야한다.

협회는 공정하면서 객관성이 담보되고 전문성을 갖춘 해사중재가 잘 발달할 수 있도록 중재인의 전문성과 객관성이 보장되도록 중재인등재선정기준을 확보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제도도 마련해야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설립추진위원장의 임무를 완성하였음을 해운인들에게 보고 드리면서,그동안 본 협회의 창립을 위하여 노력하신 회원여러분과 10인소위 위원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초대 회장이신 정병석의 리더쉽 하에서 본 협회의 중재가 크게 발전하여 우리나라 해사산업의 경쟁력을 갖추는데 일조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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