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일본에서 ‘선하증권’은 종종 ‘BL’이라고 한다. ‘Bill of Lading’의 약칭 ‘B/L’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해운실무 대부분이 영국과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선하증권’이라고 하면 즉시 ‘Bill of Lading’ 또는 ‘B/L’이라고 하고, 다른 호칭은 전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선하증권을 ‘Bill of Lading’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지중해 연안계통의 용어에 속하는 것이고, 이것과 전혀 다른 대서양 연안계통의 호칭이 있다.

1) polizza di carico(지중해계) : 이탈리아(어원), 지중해 연안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등 - polizza di carico(이탈리아어)는 영어로 직역하면 policy of charge, policy of load; 따라서 bill of lading

2) conocimiento(대서양계) : 스페인(어원), 대서양 연안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스칸디나비아 국가, 기타 - conocimiento(스페인어)는 영어로 직역하면 acknowledgement(승인, 인증, 인증증서)

역사적으로 보면 중세 해상무역에서 선박서기(scribanus ; escriva)가 작성했던 선박장부(cartularium; cartolari)가 선하증권의 전신이라고 한다. 선박장부를 작성하고 선내에 비치하는 관행은 11세기에 시작하여 14세기까지 지중해 전수역에 보급되었다. 이미 1063년의 Trani 해상법에서는 자신의 성실성을 선서하는 선박서기를 승선시켜야 하는 의무를 선장에게 부과하고 있다. 당시 선박장부의 기입은 선박서기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의무였던 것이다. 왜 선박장부 제도가 시작되었을까?

해상무역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항로가 길어지고 더불어 화물의 종류 및 수량이 증가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화물감독(supercargo)이 화물과 더불어 동승하던 관행이 더 이상 필수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화주 중에는 선장에게 화물의 판매를 위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러한 경우 선주 또는 선장으로서는 화주를 위해 적화물의 종류, 수량 등을 기록한 서류를 나중의 증거로서 공정하게 작성하여 보관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목적에서 증거서류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 선박서기이고, 따라서 선박서기는 선내에서 공증인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선박서기는 항상 자신의 성실성에 대해 선서를 해야 했고, 때에 따라서는 선적항의 관청으로부터 임명되었다. 12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행해진 해사 상관습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Consolato del Mare에서는 선박장부에 허위로 기재를 한 선박서기는 오른손을 절단하고 얼굴을 인두로 지지며 또한 소지품을 모두 몰수해야한다는 규정이 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해상무역은 예를 들어 화물감독이 없는 판매위탁일지라도 모두 화물에 입각하여 화물을 활용하는 현물거래여서 선박서기가 작성한 선박장부는 ‘book’ of lading이지만 ‘bill’ of lading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음 단계에서 신용거래의 흐름을 보면, 화주(갑)가 화물을 화주(을)에게 보내는 경우 갑은 화물을 발송 또는 선적과 동시에 혹은 발송선적에 앞서 해당화물을 담보로 금융업자(병)로부터 자금을 융통하고 병에게 해당화물 대금의 징수를 위임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징수 위임을 받은 병은 적화 명세와 더불어 수화주의 주소, 성명을 알아야 했다. 수화주 측도 선박의 도착에 따라 받아야 할 해당화물의 명세에 대해 파악을 해야 하며 송화주로서는 금융업자로부터 자금을 융통하고, 수화주에게 적화 발송을 통지하기 위해 선적에 관한 적화목록을 입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단순한 적화목록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현재 화물이 선적, 발송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낼 수 있는 적화목록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요청에 응하기 위해 제출되었던 것이 ‘사본’으로 선박서기는 적화명세를 기록한 선박장부에 근거하여 사본을 몇 부 작성하여 이것을 송화주에게 교부했다. 1397년 제정된 Anacone 해상법에 의하면 선박서기는 선주 또는 선장이 반대하더라도 선박장부 사본을 작성하여 청구자에게 교부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당시 해상무역이 선박서류의 사본을 필요로 했던 객관성 정도를 이해할 수 있다.

선하증권은 이러한 과정, 즉 ‘book of lading에서 Bill of Lading으로의 변천 과정’을 거쳐 생성되었다. 이러한 지중해 사본 시대의 성격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 영어 ‘Bill of Lading’으로 직역하면 ‘선적증서’(선하증권)이다. ‘Bill of Lading’은 용어로서는 ‘화물이 선적되었다’, ‘화물이 적화물로 수령되었다’(shipped on board …by the shipper)는 객관적 또는 수동적인 표현으로 본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이에 반해 선하증권의 다른 호칭, 즉 대서양 연안계 호칭인 프랑스어 connaissement(선하증권), 독일어 Konnossement(선하증권), 네덜란드어 cognossement(선하증권) 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connaitre(인정하다), bekennen(인정하다)를 원뜻으로 하고 있다. 단순히 ‘화물이 선적되었다’, ‘선장이 하물을 수령하였다’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선적된 화물에 대한 수량, 종류, 기타 사항에 대해 선장이 화주에게 대해 인증한다는 주관적이고 능동적인 표명인 것이다. 독일어 선하증권의 약관에서

Ich Schiffer……………bekenne,
(선장인 나는……………을 인증한다)는 표현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선박장부 사본의 작성 및 교부하는 관행은 대서양 연안에서는 상당히 늦게 생겨나서 1552년 카를 5세(Karl V, 합스부르크 왕 재위 1519-1557)의 법률에 겨우 보이고, ‘인증’도 1600년경의 법률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 같다.

단, 해상무역의 발전과 더불어 선하증권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으면 선적화물의 인도를 청구할 수 없다는 물권적(物權的) 성격도 나타내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렇지만 물권성은 선하증권에서 매우 중요한 특성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나중에 부가된, 즉 부수적 성격이었다.

선하증권은 원래 단순한 적화수령증 또는 선적확인서였다. 이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현재의 호칭 polizza di carico(이탈리아), polices de chargement(지중해안 프랑스), Bill of Lading(영국, 미국), ‘선하증권’(일본), 또는 conocimiento(스페인), connaissement(대서양 연안 프랑스), cognossement(네덜란드), Konnossement(독일) 등이다.

아울러 ‘lading’을 ‘적화물’의 의미로 쓰는 것은 ‘Bill of Lading’ 이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이전 영국에서는 ‘lading’이 오히려 일반적인 것이었다. Shakespeare의 희곡에서도 실제로 ‘lading’이 종종 사용되었다. 그 일례로,

Antonio hath a ship of rich lading wracked on the narrow seas.
in Shakespeare, The Merchant of Venice, Act III, Scene 1,3.
“적화물(lading)로 가득한 안토니오의 배가 해협에서 난파되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벽보, 작은 종잇조각’을 ‘삐라’라고 하는 것은 영어 ‘bill’에서 비롯한 것이다.

(佐波宣平, 김성준,남택근 옮김, <현대해사용어의 어원>, 문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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