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재건 5개년 계획 발표를 보고>

정부가 드디어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 4월 5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를 개최하고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확정하여 이를 발표했다. 향후 한국해운 재건의 방향은 첫째, 경쟁력 있는 서비스와 운임에 기반하여 안정적인 화물을 확보하고 둘째, 저비용, 고효율의 선박을 확충하며, 셋째. 지속적인 해운혁신을 통해 경영안정을 추구해 나간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 국적 외항선사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경영안정 지원’ 부문에서는 자금난을 겪는 선사들에게 선박의 ‘세일즈 앤 리스 백’으로 유동성을 적극 지원하고, 해양진흥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중심이 되어 선사의 재무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미 추진되고 있는 것이지만, 한국해운연합(KSP)을 통해 경영혁신을 추진하고, 향후 협력 범위를 더 확대한다는 계획도 잡혀 있다.

정부당국의 고충은 이해를 한다. 작년 말부터 관계부처 합동 T/F팀을 가동하여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고민하고 준비해 왔다고 하는데, 관계부처들, 특히 금융관련 부처들의 협조를 얻기가 매우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번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은 우리 해운업계에 희망을 주기 보다는 실망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한국형 화물 우선적취 방안’과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도 군데군데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과거에 발표된 정책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를 다시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 5개년 계획이 종전 정책들의 나열처럼만 느껴지는 것은, 한마디로 위기의 해운산업을 정말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그 간절함, 정말 꼭 살려내고야 말겠다는 그 강렬한 의지 같은 게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운산업이 어렵게 된 원인은 무엇이고, 선사들의 현재의 상태는 어떻고, 그리고 앞으로 전망, 그러면 정말 어떻게 해야만 살아날 수 있을까” 등등에 대한 절치부심의 心苦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제일 큰 문제가 마스터 플랜이 없다는 점이다. 큰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매년 어떤 계획을 짜고, 실행해 나갈 것인가가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뚜렷한 목표가 정해져야 한다. 단순히 ‘해운의 재건’이라고 하면 막연하다. ‘외항해운’, 또는 해운전반이면 ‘해운전반’이라고 명확히 하지 않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계획이 되고 만다.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니 재건의 대상도 명확하지 않고, 지원의 대상은 더 감 잡기가 어렵다. 큰 그림을 우선 그려야 한다. 앞으로 가져가야 할 한국해운의 모습은 어떠 해야 하며, 정기선해운은 어떻게, 부정기선 해운은 어떻게, 그리고 원양항로는 어떻게, 또는 근해항로는 어떻게 정책을 가져가야 할지, 큰 그림 속에서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정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마스터 플랜을 짜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한국해운이 어렵게 된 이유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먼저 해야 하고, 현재의 외항해운선사들의 정확한 현황을 우선적으로 명확히 살펴봐야 한다. 한국해운. 그 중에서도 한국의 외항해운이 붕괴하게 된 원인은 한마디로 ‘실력 부족’이다. 관련된 모든 관계자들의 실력 부족으로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 금융위기나 해운의 장기불황은 사실은 외적인 요인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는 해운경영자들, 협회나 단체 관계자들, 해운언론들, 해운당국자들 모두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실력 기르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잘잘못을 따지고 단죄하는 것은 후차적인 것이 돼야 한다. 우선 한국해운산업을 살려놓고 볼일이다. 그런데 외항해운산업은 지금 10년의 빙하시대를 만나 완전히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직도 일부 선전하고 있는 선사들이 있으니까 별 문제 없다는 식으로 대처해서는 한국해운의 중병을 치료할 수가 없을 것이다.

현재 외항해운업체들의 실태는 대부분의 원양항로 부정기선사들의 파산, 원양항로 정기선사들의 파산 내지는 경영위기, 근해항로 컨테이너선사들의 경영 악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진해운이 파산함으로써 어찌 보면 우리 외항해운산업은 그야말로 종언을 고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심각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특히 원양 정기선사들의 경우 살아있다고는 하나 그 內傷의 정도가 심각하여 앞날이 심히 걱정이 된다. 이번 5개년 계획은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외항해운선사들의 부실을 어떻게 처리하여 앞으로 이들이 다시 뛸 수 있도록 만들 것이냐 하는 점이다. 우리는 여기서 여러 번 주장해 왔던 ‘새판 짜기’를 다시 주문해 본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외항선사들의 부채 문제를 그대로 둔 채, 한국해양진흥공사다 고효율, 친환경 선박 건조다 얘기해 봐야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부실화 된 선사들까지 한데 묶어서 새판을 짜라는 얘기가 아니다. 부실한 회사는 내버려 두고 정부의 정책 목표에 맞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여 거기에 우수한 인력과 경쟁력 있는 선대를 공급해 줘야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클린 컴퍼니 새판 짜기’이다. 물론 KSP처럼 통폐합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또한 통합된 클린 컴퍼니에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도 당연한 수순이다.

한국해운은 폐허상태이니 이제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헌집은 버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집주인과도 작별해야 한다. 새로운 대지에 새롭게, 새 모습으로 100년이 갈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지어야만 한다. 이런 면에서 ‘해운재건 5개년 계획’도 새 집짓기를 지원하는 쪽으로 대폭적으로 수정해 주길 우린  바란다. 우리는 참으로 다행히도 이번에 능력 있고 패기 넘치는 해양수산부 주무 국·과장을 만나게 되었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해운 관련 모든 관계자들이 일심 협력하여 멋진 한국해운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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