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굿(Nicola Good), 페어플레이 편집국장

▲ 니콜라 굿 국장
한국 조선업의 생존을 둘러싸고 내려지는 쉽지 않은 결정들이 안전을 무시한 것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날의 커피 맛, 평소 시끄러운 직장 동료의 목소리 크기, 사무실 난방상태 등은 나와 같은 사무직 직장인에게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매주 화재 훈련을 한다. 하필이면 온종일 기다리던 전화가 왔을 때 훈련용 화재 경보가 울릴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안전요원 조끼를 입은 사람들의 안내를 받으며, 그동안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가 지정장소에 모인다. 대피 시간을 측정하고,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는 상자는 모두 표시한다.

이처럼 매주 해야 하는 화재 훈련에 대해 불평을 하지도 않고, 의문을 갖지도 않는다. 직장 내 안전은 당연하여서, 무언가 잘못되면 제대로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물론, 사무직 근로자가 부딪히는 일상의 위험은 바다에서 일하거나 중장비로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마주하는 위험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직장이 어디든 간에 모든 근로자는 자신이 속한 산업에서 안전 상태가 지속적으로 모니터 되고 꾸준히 개선되고 있음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고용주는 고용인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안전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재정상의 이유로 안전 점검 및 유지를 위한 작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재정상의 이유로 안전을 등한시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달에 지출이 많았다는 이유로 가족이 타는 자동차의 타이어 교체를 미루거나, 헐거워진 마룻널을 고치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이달 초까지 노사의 자구계획안을 제출해야 했던 STX조선해양은 수년간 재정 위기를 겪어왔고, 비용 감축은 결국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지난해 8월 방폭 등 글라스 기능 저하를 간과한 것이 폭발사고로 이어져 7만 4000dwt급 유조선을 건조 중이던 노동자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소 작업은 전면 중단되었다. 해경수사본부의 조사 결과 잔유 보관 탱크에 설치된 네 개의 방폭 등이 모두 수준 미달인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자들은 적절한 절차에 따라 처분을 받았다.

한국은 조선소 노동자의 안전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 고용노동부의 2013~2017년 자료에 따르면 한 해 20명 이상의 사망자(하청 및 직접 고용 노동자 모두 포함)가 발생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 총사망자 수는 12명이었다.

불과 한 달 전 법정관리가 철회돼 신규 발주 확보 후 재정적 안정을 겨우 찾아가려던 참에 사고가 발생했고 이는 STX조선해양이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한때 한국의 4위 조선사였던 STX조선해양은 현재 재정적인 문제로 옛 모습을 찾기 어려운 처지다. 지난 4월 11일 산업은행이 이끄는 채권단이 자구계획안을 받아들이면서 STX조선해양은 두 번째 법정관리 위기를 간신히 피하게 되었다. 자구계획안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임금 대폭 삭감과 무급휴직 등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에도 좋은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려되는 점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감수할 것이냐는 점이다. 연합뉴스 기사에 의하면 한 노조 관계자는 “고용만 보장된다면, 복지 혹은 임금 삭감도 기꺼이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절체절명에 놓인 한국 조선업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안전을 간과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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