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추모사

배순태 인천항 도선사 1주기 추모식과 묘비제막식에서 추모사를 했다.

『존경하는 해봉 배순태 선장님 영전에 삼가 고합니다.
떠나가신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그립고 뵈옵고 싶습니다.
지금 무얼 하고 계십니까?
생전에 못하셔서 아쉬워했던 북극항해를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북극성에서 대한민국의 해운과 항만을 내려다보고 계십니까?
떠나신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나 닫신께서 해운과 항만을 위해 헌신하신 공적이 너무나 크고 많아 빈자리를 메우고도 남을 것입니다.

광복직후, 해기사 초년병일 때 금천호에 게양되었던 일장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셨습니다. 대한해운공사 동해호의 선장으로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두루 횡단하고 파나마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며 세계일주 항해를 최초로 성취하여 한국의 마젤란이 되셨습니다.

영광 뒤에는 뼈를 깎는 고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호머의 대서사시에서 오디세이가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고서 10년간 바다에서 갖은 모험을 하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듯, 당신께서도 망망대해에서 일엽편주에 불과한 동해호를 집어삼키려고 달려드는 성난 파도와 사생결투 끝에 승리하여 당당하게 귀항하셨습니다.

조석간만의 차이가 10미터이고, 협수도의 긴 뱃길인데다가 도크항만이라 도선여건이 어느 항구보다 어려운 인천항에서 34년간을 하루같이 도선을 하셨습니다. 한겨울 파도는 거칠고 북풍한설은 몰아치는데 로프 줄다리에 매달려 까마득한 본선갑판으로 올라가려면 손발은 얼어붙고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습니다.

도선 여건이 최악일 때 후배 도선사들이 두려워 도선을 기피하면 스스로 핀치히터를 자청하셨습니다. 고난도의 곡예를 하듯 선박을 아슬아슬하게 부두에 접안시키는 광경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은 당신을 도선神이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도선을 하셔 인천항 운영의 위기를 극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도, 당신의 유지와 유업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또 흘러 빈자리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당신께서 떠나신 후에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장남 동진씨가 ‘해봉 배순태상’을 제정하여 작년 연말에 세계 바다대통령 임기택 국제해사기구 IMO사무총장께 해봉 배순태상을 수여했습니다.

또 하나는, 다음 달 5월에 당신께서 동북아 관문인 부산항 영도에 위치한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십니다. “돌아가시면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모시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씀 들렸더니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투박하게 ‘뭐들라고!’라 말씀하셨지만 얼굴에는 싫지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약속을 지켜드려 뿌듯합니다.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는 한국해운의 기라성들이 모셔져있습니다. 5대양 6대주를 제패했던 대영제국으로부터 세계 모든 선원들이 경의를 표했던 Extra-Mast자격을 수여받고 영국해운에 봉직하다 귀국하신 신성모 국무총리님. 로이드 보험이 조선과 일본을 통틀어 최고의 선장으로 인정했던 박옥규 해군참모총장님. 황무지이었던 한국해운을 세계5위의 반열에 오르도록 주춧돌을 놓으셨던 황부길 대한민국 초대 해운국장님. 조선 사람들이 감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제강점 초기에 일본 동경고등상선학교에 입학하셨고 총독부의 민족차별 정책을 뛰어넘어 한국인으로 최초의 도선사가 되셨던 유항열 선각자님 등 열세 분이 모셔져있습니다.

황무지의 한국해운을 일구었던 기라성 열셋 분과 함께 오대양으로 출항하는 선박들을 바라보며 담론하시어 한국해운이 나갈 방향을 후배들에게 알려주시옵소서.

인간은 영적이고 정신적 존재입니다. 살아서 대의를 위해 헌신하면 육신은 죽어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부활합니다. 당신께서도 해운과 항만을 위해 헌신하였기에 부활하시어 생전에 못 다한 과업을 완수하시옵소서!

끝으로 평생 내조를 아끼지 아니하셨던 요조숙녀 이영희 여사님께서 지난해 영결식 때 제 손을 붙잡고 “아이고! 영감께 좀 더 잘 해 줄 것을”이라고 눈물 흘리시며 곧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들딸과 며느리의 극진한 봉양으로 기력이 회복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제 모든 근심걱정 내려놓으시고 후손들이 유지와 유업을 받들어 가문이 융성하도록 길이길이 보살펴주시옵소서!

2018년 4월 11일
해운계 후배 김종길 올림

▲ 耕海 김종길 前부산지방항만청장이 故배순태 회장을 기리는 추모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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